노동법은 구닥다리 규제가 아니다!
노동법은 구닥다리 규제가 아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8.16 00:00
  • 수정 2020.10.22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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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탈 쓴 플랫폼 기업 … 노동법 바깥의 ‘플랫폼 노동’ 양산
플랫폼 시대 새로운 노동법 필요? … 노동법의 사회적 기능 주목해야

[책에서 만난 노동]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Jeremias Adams-Prassl),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이영주 역, 숨쉬는책공장(2020).

“타다는 이 법이 통과되고 공포되는 순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타다금지법입니다. 모빌리티금지법입니다. 혁신금지법입니다. 붉은 깃발법입니다.”

지난해 12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후 플랫폼운송업체 ‘타다’의 창립자 이재웅 쏘카 대표는 SNS를 통해 여론전을 벌였다. 그는 타다를 규제하는 입법을 붉은 깃발법이라고 비판했다. 붉은 깃발법은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법으로 자동차 시속을 6.4㎞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이를 감독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주요 운송수단이던 마차산업을 보호하려는 법으로, 현재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꼬집을 때 사용한다.

‘혁신 기업가’의 눈에는 붉은 깃발법 같은 구닥다리 규제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는 노동법이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이 필요한데 노동법은 민첩한 대응을 불가능 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이영주 옮김, 숨쉬는책공장, 2020)의 저자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Jeremias Adams-Prassl)는 노동법에 대한 편견을 다잡는다.

저자는 이재웅 대표와 같은 혁신 기업가가 말하는 ‘혁신’이 노동의 관점에서는 19세기 외주 노동이나 항만 노동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저자는 노동법이 ‘진정한’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한다고도 지적한다. 요컨대 노동법은 ‘공정한 경기장’을 지향한다는 이야기다.

서비스로서 인간 Human as a service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의 원제는 ‘서비스로서 인간’(Human as a Service)이다. 책의 역자인 이영주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은 제목의 번역을 고심했다고 전했다.

‘as a Service’는 IT 기술용어로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번거로운 설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원제 ‘서비스로서 인간’의 의미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인간을 상품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과 같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ur is not a commodity).’ 이영주 정책국장은 다음과 같이 책의 원제를 번역한 이유를 밝힌다.

“플랫폼 기업들은 혁신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노동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개인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하며, 더 이상 낡은 법과 경직된 제도로 시장을 옭아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의 노동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에 상품처럼 자유롭게 거래돼서는 안 되며 특별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중략) 그 노동이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플랫폼 노동 역시 상품이 아니다.”(옮긴이 해제 p.275)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술 진보나 혁신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노동법의 본질이 호도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노동법의 본질이 호도될 경우 노동자 보호가 불가능해짐은 물론 기업가 정신조차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혁신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지 말자

저자는 플랫폼 기업이 말하는 혁신이 ‘진정한 혁신’보다는 노동법의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에 가까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저자는 ‘플랫폼은 혁신’이라는 주장만큼이나 ‘플랫폼은 규제회피 수단’이라는 단편적인 주장에도 거리를 둔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플랫폼 기업들을 일괄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혁신이냐 혁신이 아니냐’가 아니다. 이영주 정책국장은 “‘혁신인가, 아닌가?’ 허망한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그동안 쌓아 올린 가치와 질서를 양보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오랜 신뢰와 합의를 허물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할 만큼 그 혁신이 가치 있는 것인가?”라고 되묻는다.(옮긴이 해제 p.287)

그보다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에게 노동을 시키면서 관련 책임을 회피하는지 혹은 기업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위험성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한 ‘얼마나 혁신적이든 상관없이’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야 말로 공유경제 감언이설의 궁극적인 목표다. 바로 일반적인 법,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법의 규제가 플랫폼 기업들과 그 이용자 그리고 그들의 노동력 사이에 형성된 계약 관계를 규제하기에 여전히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중략) 결과적으로 플랫폼 기업들이 이러한 충돌로부터 얻은 교훈을 파괴적 혁신의 성공에 관한 서사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 주문형 경제 기업들은 훨씬 규제가 덜한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감언이설 p.108)

4월 29일 강남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2020 라이더유니온 정기총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4월 29일 강남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2020 라이더유니온 정기총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사용자의 기능적 개념

노동법을 적용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일견 불가능해보이기도 한다. 최근 라이더유니온 및 서울플랫폼드라이버유니온의 활동으로 배달의 민족, 요기요, 타다 등에서 일하는 ‘독립계약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의 구조 또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가령, 고객과 플랫폼이 사용자성을 일부 나눈 경우나, 플랫폼이 노동자의 자율성을 크게 인정한 경우 등 단일한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어떤 플랫폼 기업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모든 측면을 완전히 통제하는 반면에 다른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들에게 상당한 재량을 준다. 태스크래빗에서 태스커들은 자신들의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정할 수 있고, 아마존 M터크 요청자들은 각 과업에 허용되는 작업 시간을 명시하고 있으며, 업워크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고객들은 종종 자신이 의뢰하는 작업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명기한다. 달리 말하자면, 노동자와 고객들 모두 전통적으로는 사용자의 특권에 속했던 영역에 대해서 때때로 통제할 수 있다.”(혁신가들을 혁신해 보자 p.197)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저자는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플랫폼을 통해 여러 당사자들로부터 통제받는 노동은 진정한 기업가 정신(진짜 사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단일한 주체가 아닌 복수의 주체에게 사용자성을 묻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기능적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용자성이 사용자 1인에게 귀속돼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기능을 하는 주체에게 일정정도의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법, 자유와 안정의 교환

그렇다면 사용자성과 그에 따른 책임이란 무엇일까? 또한 노동자성과 그에 따른 보호란 무엇일까? 저자는 알랭 쉬피오(Alain Supiot) 교수를 직접 인용한다.

“복지국가의 모델에서 노동은 경제적 의존과 사회적 보장 사이의 기본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고용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권위에 복종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조건들이 보장되었다.”(Alain Supiot, Beyond Employment : Changes In Work and the Future of Labour in Europe(Oxford University Press 2001), 10, Simon Deakin and Frank Wilkinson, The Law of the Labour Market: Industrialization, Employment, and Legal Evolution(Oxford University Press, 2005), 14에서 재인용.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p 252)

직업 선택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의 권리다. 하지만 노동법에서는 본질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노동자는 약정된 시간을 들여서 사용자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된다. 그 대신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보장받는다. 일정 수준의 자유를 희생하는 대신 경제적 안정을 얻는 셈이다. 이러한 노동법의 본질은 플랫폼 노동자라고 해서, 혹은 ‘혁신’을 표방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노동법은 혁신과 대립항이 아니다

또한 저자는 기업가들이 추구하는 유연성을 노동법이 막는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노동법이 “왠지 경직되고 유연성 없는 노동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통해 “근무 패턴과 예측 가능한 근무시간에 대한 경영상의 유인”이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법 내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서부터 간주 근로시간제”까지 노동 유연성을 부여하는 장치들이 있다.(혁신가들을 혁신해 보자 p.224)

더 나아가 저자는 노동법이 기업가의 혁신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부과되는 책임이 오히려 기업가에게 혁신의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법이 공평하게 적용되고 일관성 있게 시행되어야만 기업들은 공정한 경기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진짜 부담해야 할 경우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플랫폼 기업이라면, 오히려 파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다른 기업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더 효율적인 기업들에게 자원이 재할당되기 때문이다. 불량 사업자의 종말은 새로운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공간과 소비자의 수요를 열어준다. 슘페터가 말했던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p.256)

경제의 이면에 있는 노동

노동법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말하는 혁신의 실체를 까발리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평소 우리가 생각했던 ‘경제활동’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경제는 단순히 사용자의 활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활동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수칙들을 적시한다.

‘혁신’을 표방하는 플랫폼 기업의 과오는 경제활동에서 노동법으로 정해져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상호 의무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은폐하려고 한 점이다.

노동법은 노동자 보호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조세 납부’라는 사회적 역할도 부여한다. 국가가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사용자가 ‘법인격’을 통해 보호받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의 책임이다. 즉, 노동법은 사회계약의 산물이다. 노동법은 단순히 기술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나 기업가의 혁신을 위해서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2018년 출간 당시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때문에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와 다르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영주 정책국장은 해제를 통해 용어 정리를 자세히 해두었다. 본문을 읽기 전에 해제를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진정한 기업가 정신은 노동법을 구닥다리로 만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