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외치는 이들이 꼭 봐야 할 책
‘혁신’을 외치는 이들이 꼭 봐야 할 책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1.09 00:00
  • 수정 2020.11.0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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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생활 4년 시시각각 변하는 배달산업 ‘본질’ 담아
배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제도·입법 필요

책에서 만난 노동_≪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최근 배달산업의 구조를 설명하는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2020, 빨간소금)을 썼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안녕하세요, 배민라이더스지요? ‘배달은형제들’과 라이더유니온이 단체협약을 맺었다고 해서요?”

“네? 어디요? ‘배다른형제’들이요?”

“네! ‘배달은형제들’이요. 배민라이더스가 우아한형제들 자회사 아닌가요?”

“맞는데요! 일단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좌충우돌. 기자의 첫 라이더유니온 취재였다. ‘배달은형제들’은 강서지역 배달대행업체다. ‘배민라이더스’는 ‘우아한청년들’이 운영하는 배달대행서비스의 이름이다. ‘우아한청년들’은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주문앱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즉, ‘배달은형제들’은 ‘우아한형제들’·‘우아한청년들’과 이름 빼고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배민라이더스’ 홍보팀과의 전화통화는 민망함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의 배달산업은 외국과 비교할 수도 없이 복잡하다. ‘소비자-배달주문앱-음식점-배달대행앱-배달대행업체-배달원-소비자’로 이어지는 산업구조를 누구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는 처지다.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2020, 빨간소금)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였다. 박정훈 위원장을 만나 책과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쓴 계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계기는 서문에도 나와 있어요. 처음 쓸 때는 더 노골적으로 썼다가 이렇게 출판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살짝 고쳤어요. 하하. 라이더유니온을 저희가 시작하고 나서 똑같은 질문을 기자분들한테 진짜 1년 반 정도 계속 들었어요. 같은 답을 계속했고요.

배달의민족과 배민라이더스는 다른 서비스고요~. 배달 라이더는 늘찬 배달업으로 분류되어 퀵서비스 특고산재가 되고요~.”(p.4)

그래서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와 통화하셨던 모든 기자님들이 사주셔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하하하. 초창기까지만 해도 제가 친절했어요. 그런데 이게 반복되면서 요즘에는 까칠하고 재수 없는 사람으로 저를 기억하시는 분도 꽤 있을 거예요.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제가 만약 연봉을 5천만 원 받는 마케팅 담당자였다면 늘 웃음을 짓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요. 저도 인간이잖아요? 그런데 주말, 밤 8시, 아침 7시 반, 진짜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오는 거예요. 이게 주요한 이유가 아니긴 한데 제가 울분이 있어서 말이 계속 나오네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냐면, 전화로 설명을 했는데 그 기자가 ‘그런데 누구세요?’라고 묻는 거예요.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나고. 그러면 어떻게 전화했는지 물었는데, 사실은 시험 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사회초년생한테 욕은 못했죠. 이런 일이 쌓이니까 불친절해졌어요. 너무 많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써놓고 보니까 ‘책 읽고 쓰세요’라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왜요?

너무 재수 없어서요. 하하하. 사실 그게 목적이었는데. ‘어디 몇 페이지 읽으세요!’

두 번째 이유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주로 국회, 정부, 언론을 상대해서 그들의 시각으로만 플랫폼 배달이야기가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배달일을 4년 정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현장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해서 많이 변했나요?

제가 맥도날드에 입사했을 때 직고용 라이더만 20명이었어요. 2017년이었거든요. 주간·야간 합쳐서 20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 정도밖에 안 돼요. 버거킹은 다 없애 버렸고요. 대부분 배달대행으로 돌리고 있죠. 맥도날드에서 대행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2018년이에요. 불과 1년 만에 그런 변화가 있었죠. 제가 일하는 현장이 아니더라도 요즘 주말에는 전동 퀵보드, 자전거를 타는 배민커넥터·쿠팡이츠 분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2018~2019년만 하더라도 배민커넥터나 쿠팡이츠가 눈에 잘 안 띄었는데 1년 만에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류가 된 상황이에요. 해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른 산업이죠.

그러면 책을 쓰면서도 출간 시점에서는 배달산업의 현안이 다소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겠네요?

예상했죠. 책이라는 건 항상 과거의 일을 담고 있잖아요? 책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에요. 과거를 정리하고 본질을 설명하는 정도죠. 사실 책에서는 알고리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책 출간 하자마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알고리즘 시스템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죠.

배달노동자로 근 5년간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손님과의 일화가 좀 크죠. 페이스북에도 쓴 내용인데, 손님이 주소를 잘못 썼어요. 주소를 알려달라니까 ‘어딜 찾아와!’ 고함치고 욕을 하더라고요. 그럴 때 관두고 싶죠. 사실 일 자체만으로도 너무 피곤해요. 저는 노조 활동을 평일에 5일 하고 주말에 배달을 이틀 해요. 이렇게 살다 보니 너무 피곤해서 관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특히 퇴근하고 나면 몸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아요. 모든 라이더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거예요. 사람이 무력해져요. 배달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누워있어야 돼요.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라이더 분들이 그렇게 살아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라이더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절하돼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이더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노동시장 전체의 문제인데, 대면서비스 종사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구매자들이 인간의 감정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샀으니까 그러한 태도를 취하라는 거요. 두 번째는 요즘 공정을 명분으로 한 차별이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별이 있어야 공정한 거다’, ‘너와 나의 차이에 따라 대가가 달라야지 공정한 거다.’ 공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었으니까 시대정신이기도 하겠죠? 여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좋지 못한 대우를 받는 이유가 그 사람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 돼요. 평등과 배치되는 공정의 개념이 시대정신처럼 나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라이더 보고 그냥 양아치 이렇게 불렀는데, 요즘에는 세련된 느낌의 정당화된 차별이 많은 것 같아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라이더를 비롯해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들이 정당하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 것 같나요?

사실 라이더는 수입 측면에서는 직업일 수 있어요. 그런데 수익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정보, 문화적 자원, 네트워크를 어떻게 가지는가. 이거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요. 수입 말고 다른 측면의 차이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문제죠. 또한 지속가능성과 안전이 중요하다고 봐요. 라이더 역시 사회보험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신호가 있어야지 하나의 직업으로 안착되겠죠?

업계에서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직업으로서 안착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배달업계는 어떤가요?

그러긴 힘들어요. 경력을 크게 쳐주지는 않아요. 완전 생초보보다는 경력직이 났죠. 그런데 2년 경력이랑 5년 경력 중에 5년 경력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그리고 2년 경력이랑 10년 경력이랑 누가 더 낫냐고 하면, 최근 업계 트렌드를 더 잘 아는 2년 경력이 더 나을 수 있어요. 이건 택배업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배달 장인이라는 게 신호 잘 까면(무시하면) 장인이 되니까. 빠르게 정확하게 배달하면 장땡이잖아요? 그래서 제도적이나 입법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봐요. 배달대행업체는 진짜 아무나 할 수 있으니까요. 산업적 정비와 규제가 필요해요. 어느 정도 안전조치를 통한 진입장벽도 필요한 거죠.

본문에서 플랫폼의 우리말 번역을 ‘정거장’이라고 했어요. 현재 플랫폼기업이 마치 인근에 지하철이 깔리면 땅값이 오르는 건물주처럼 지대이익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는데, 그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음식점 사장이 그동안 건물주에게만 월세를 냈다면, 플랫폼으로 오면서 광고 노출이 잘 되게 배달주문앱업체한테도 디지털 임대료를 내는 거죠. 플랫폼기업이 일종의 디지털 건물주라고 보면 되겠네요. 지대 추구와 비슷한 건데 다만 다른 점은 플랫폼기업은 수수료만이 목표가 아닌 거예요. 기업 공개 이후 주식가치가 높아졌을 때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는 목표가 더 크죠. 그러니까 당장의 이윤보다는 투자 가치가 더 중요해요. 이윤보다는 성장이 더 중요한 시장이라고 볼 수 있죠. 플랫폼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막대한 쿠폰과 보조금을 뿌리는 이유죠.

현실의 기차역, 버스정류장 등 정거장들은 공익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플랫폼기업에게 이러한 공익적 성격을 부여할 수는 없을까요?

플랫폼기업이 보유하는 데이터 중에서 공공적 성격을 띠는 것을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죠. 가령 사회보험 징수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라이더의 월수입, 운행시간 등이요. 사실 라이더들은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없어요. 플랫폼기업이 제일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플랫폼기업들은 그 정보를 자기들 필요할 때마다 선택적으로 공개해요. 최근 쿠팡이츠에서 라이더 연봉 1억 원이라고 홍보했잖아요? 말이 안 되죠. 현재 고용보험법에는 플랫폼기업이 협조해야 된다는 정도의 문구가 들어가 있어요. 의무는 아니죠. 이번에 경사노위 합의에서도 근로복지공단이랑 플랫폼 회사가 정보공유 하는 정도로 합의한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위원장님한테 연락한 기자 말고도 누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나요?

하하하. 기자 분들 괜찮아요. 저는 특히 정부 관료, 입법기관 노동자들, 국회의원. 이런 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는 혁신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라이더 분들은 어차피 저보다 현실을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