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수해 복구 현장, “물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천안 수해 복구 현장, “물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8.17 12:00
  • 수정 2020.08.18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군구연맹-인사혁신처, 천안 수해복구 현장 지원
“사회가 함께한다는 거 자체가 농민들에게 위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한 농민의 뒷모습. "얼마동안 농사를 지으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농사 안 해요"라고 답했다. 이후 농민은 기자의 질문에 아랑곳 않고 한동안 강물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한 농민의 뒷모습. "얼마동안 농사를 지으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농사 안 해요"라고 답했다. 이후 농민은 기자의 질문에 아랑곳 않고 한동안 강물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의 마지막 문장처럼 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이번 장마는 6월 24일 시작해 8월 16일 드디어 끝이 났다. 총 장마 기간 54일로 역대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장마는 끝이 났지만, 전국은 재해복구 작업으로 여념이 없다. 특히 천안시는 지난 7일 극심한 수해 패해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잠정 피해액만 225억 원으로 특별재난지역 지정 기준 피해액(105억 원)을 두 배 이상 넘겼다.

전국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노동조합도 천안 수해 복구에 동참했다. <참여와혁신>은 8월 14일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위원장 공주석, 이하 시군구연맹)의 도움을 얻어 천안시 병천면 수해 피해 농가 현장 지원을 함께했다.

장마로 폐허가 되어버린 농가. 천안시 병천면은 지역 내에서 수해피해를 비교적 약하게 본 곳이라고 한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장마로 폐허가 되어버린 농가. 강물이 범람하면서 비닐하우스가 폭삭 주저 앉았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시민들이 실의에 빠져있어요. 1년 농사인데요”

천안시는 이번 장마로 수해를 크게 입은 지역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전 총리는 8월 12일과 13일 천안시 수해 피해 농가를 찾아 실의에 빠진 농민을 격려하고 확실한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과 인사혁신처는 8월 14일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소재 농가 2곳을 찾아 현장 지원에 나섰다. 지원에 나선 인원은 총 43명으로 ▲공주석 시군구연맹 위원장 등 15명 ▲이근수 천안시청노동조합 위원장 등 8명 ▲김우호 인사혁신처 차장 등 20명이었다.

14일 시군구연맹은 병천면에 수해 성금 100만 원을 기부했다. 인사혁신처도 병천면에 마스크, 장화 등 재난복구 지원물품을 전달했다.
(오른쪽부터) 이근수 천안시청노동조합 위원장, 김형묵 병천면장, 공주석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조충성 서울특별시동대문구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병천면 공무원들은 재난복구업무로 눈코 뜰 새 없었다. 병천면은 ‘병천순대’로 유명한 지역으로 천안시에서 비교적 외곽에 떨어져 있다. 병천면의 주력 산업은 농·축업으로 오이가 40%, 쌀이 40%, 축산 및 양돈이 20% 비율로 차지하고 있다. 이번 장마로 특히 오이 농가에 피해가 집중됐다.

김형묵 병천면 면장은 “시민들이 1년 농사를 망친 실의에 빠져있다”며, “지난주까지 수해 피해 접수 건수가 500건이 넘는다. 이번 주까지 접수를 마치면 1,000건 이상은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필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어 실질적인 피해는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물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김형묵 면장의 말처럼 현장은 처참했다. 비닐하우스를 받치는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어있었고 농작물은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온전한 곳에서도 작물은 무사할 수 없었다. 밀려오는 물 때문에 땅이 진흙이 되어버려 농작물의 뿌리가 모두 썩었기 때문이다.

수해을 입은 고추. 김재경 씨는 강물이 불어넘치는 당일 "어서 빨리 수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엄두가 안 났다"고 전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오랫동안 주말농장을 운영하다 5년 전 천안으로 완전히 귀농했다는 김재경 씨는 “물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김재경 씨는 비닐하우스 2동과 노지에 고추 1,500포기, 포도나무 50그루, 대추나무 20그루가량을 기르던 중이었다. 이번 장마로 거의 모든 수확물을 잃었을뿐더러 거센 물결에 상당량 흙도 유실돼 밭 자체를 쓰지 못하게 됐다.

구체적인 피해를 물어보자 김재경 씨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보다 피해는 덜했지만 2017년 수해 피해가 다시 기억 난 것이다. 김재경 씨는 “2017년 수해 때는 나무는 괜찮았는데 고추 1,200포기 정도를 잃었다”면서, “당시 정부지원금으로 150만 원 나왔다. 솔직히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폐허가 된 오이 비닐하우스. 한 차례 수확도 하지 못하고 오이는 그대로 죽어버렸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순옥 씨도 12년 전 귀농해 천안에 정착했다. 김순옥 씨는 비닐하우스 5동에 모두 오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번 수해로 김순옥 씨는 비닐하우스 1동이 완전히 망가지고 상당수 오이를 버리게 됐다.

김순옥 씨는 “얼마 전 오이를 심어서 막 올리는 단계였다. 비가 많이 오면서 비닐하우스 하나가 완전히 망가졌다”면서, “나머지 비닐하우스에서 수확은 하고 있지만, 물이 찼다가 빠지면 나무가 죽어버린다. 땅이 습해서 뿌리가 썩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함께해서 위로받을 것 같아요”

수해복구 작업은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는 공무원들이 현장 실사를 통해 피해액을 산정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수해로 황폐해진 땅을 깨끗이 치우는 작업이다.

밭에는 이랑과 고랑이 있다. 두둑하게 튀어나온 이랑에는 비닐을 씌우고 상대적으로 움푹 꺼진 고랑에는 부직포를 깐다. 작물이 비바람을 잘 견딜 수 있게 땅으로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강물이 범람하면 이랑과 고랑은 소용이 없다. 강물의 흐름대로 땅을 흩트려 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엉망이 된 땅에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기존에 깔려 있던 비닐과 부직포, 농작물을 모두 치우고 땅을 개간해야 한다. 복구의 마지막 단계다.

복구 작업에 여념이 없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시군구연맹과 인사혁신처가 현장 지원을 나간 농가 2곳은 현장 실사를 마친 상태였다. 비닐하우스 철골과 땅속에 파묻혀 못쓰게 된 농작물, 산더미 같이 쌓인 비닐과 부직포, 각종 쓰레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해 농민이 홀로 치우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오랜 장마에 땅은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이 돼 있었다. 한 걸음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다. 폭염경보가 내린 당일은 습도도 높아 더위 먹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이근수 천안시청노동조합 위원장은 “솔직히 농민들이 얼마나 크게 피해를 봤는데 저희가 하루 자원봉사 한다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겠나”라면서, “그래도 혼자서 하면 엄두가 안 나는 일이 2시간 만에 얼추 진척됐다. 사회가 함께한다는 거 자체가 농민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지원에서 별미는 지칠만하면 찾아오는 새참이었다. 식사 이외에도 농민들이 준비한 수박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북돋아 주기 충분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순옥 씨는 “치워주신다고 해서 금방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동안은 못 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솔직히 하루 오셔서 도와주신다고 해서 일이 모두 끝나는 건 아니지만 도와주시는 것 자체가 농민들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다”고 밝혔다.

'우리 함께'라는 노동조합의 역할

노동조합이 수해복구 사업에 나선 건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 사업장을 넘어 지역사회로 노동조합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 즉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nion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는 것이다.

특히 이날 노동조합 측 참가자에는 천안‧아산시뿐만 아니라 서울 동대문구, 경북 의성군, 전남 보성군 등 전국 시군구에서 일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함께했다. 모두 ‘내 고장 같은 마음’에서 한걸음에 수해 지원에 나선 이들이다.

현장 지원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수박을 먹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특히 정하명 아산시청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이번 수해복구지원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정하명 위원장은 “아산에서도 수해 피해를 많이 봤다. 일단 정리가 돼 시간적 여유가 생겨 지원을 나왔다”면서, “천안과 아산이 천안역사 때문에 분쟁이 좀 심했는데 노동조합이 화해의 물꼬를 틔운 면이 있다. 지금은 천안과 아산이 다른 지역이 아니라 같은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띤 작업의 흔적이 보이는 공주석 시군구연맹 위원장의 옷.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누군가는 단 하루 농민들의 일손을 돕는 일이 뭐 그리 큰일이냐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사진 찍고 생색내기’ 위해서 수해복구지원을 나선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냉소적인 시각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루의 지원도 농민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 함께’라는 연대 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