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
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예민해져야 하는 이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9.02 00:00
  • 수정 2020.09.01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4일’ 역대 최장 장마, 전국 피해 극심 … ‘기후위기’ 경각심 증가
기후위기 대 고용안정? … 선택 아닌 ‘접점’ 찾아 함께 가야
ⓒ 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

리포트_노동자와 기후위기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올여름, 최장 장마기록이 경신됐다.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6월 24일 시작해 8월 16일 종료했다고 밝혔다. 총 장마 기간은 54일로 직전 2013년도 기록을 5일이나 늘렸다. 올여름 비는 확실히 예년과 달랐다. ‘추적추적’이라는 형용사는 이번 비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 비는 짧은 시간에 상당량의 물을 쏟아냈다. 장마보다는 ‘기후위기’가 더 적확한 말이었다.

기후위기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구가 뜨겁게 데워진 만큼 여름은 더더욱 더워졌고 비는 더욱더 세차졌다. 겨울은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조금도 안 춥거나 혹은 엄청나게 춥거나 둘 중 하나다. 사계절이라는 말이 점점 무색해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후위기에도 노동자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계라는 무심한 말은 노동자로 하여금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를 ‘날씨타령’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노동자에게도 심각한 생존의 문제다. 또한, 노동자에게 기존의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날씨가 변했긴 변했죠”

“기후가 많이 변했죠. 온난화 때문인지 옛날에 비해서 엄청나게 덥죠. 30년 전에는 더워도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쪄요.”

건설 현장에서 30년간 레미콘 기사로 일했다는 조남순 건설노조 수도권건설기계지부 부지부장은 ‘옛날’에 비해 달라진 여름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국립기상과학원이 1912년에서 2017년까지 한국의 기온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기상관측이 시작된 20세기 초보다 최근 30년간(1987~2017년) 평균기온은 1.4℃ 상승했다. 또한 강수량은 124mm 증가했지만 연간 변동성이 커졌다. 106년 전보다 한국은 더 더워지고, 폭우가 내리거나 가뭄이 드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2007~2017년 10년간 관측치는 서리·한랭일수가 많아지고, 강한 강수가 감소하는 등 최근 30년 관측치와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후의 예측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강익 공공운수노조 한강관리사업소지회 지회장은 한강공원의 녹지를 관리하는 노동자다. 13년 동안 한강공원에서 계절마다 꽃을 바꾸고, 병충해 예방과 가지치기 등 수목 관리를 해왔다. 그는 무더위나 폭우, 가뭄 외에도 한강 생태계에서 기후변화를 감지했다.

“한 4~5년 전부터 부쩍 그런 것 같아요. 못 보던 식물도 생기고, 또 그전에는 없었던 매미나방이 굉장히 많이 번지고 있어요. 왜 방재작업을 안 하냐고 민원이 많이 들어와요. 그런데 여기는 상수원보호구역이라서 무턱대고 농약을 칠 수 없어요. 겨울이 추워야 곤충들도 죽고 그러는데 요즘 겨울이 따뜻하잖아요? 봄부터 해충이 많이 번식하죠. 정말 많이 생겼어요.”

한강공원의 매미나방. 매미나방은 돌발해충으로 수목과 과실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진강익 공공운수노조 한강관리사업소지회 지회장

독나방과에 속하는 매미나방은 돌발해충에 속한다. 매미나방은 특히 수목과 과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돌발해충은 특정 조건에 충족되면 대량으로 번식하고 그 조건이 없어지면 곧바로 자취를 감추는 특징이 있다.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온도가 매미나방의 확산을 이끈 것이다. 그러나 돌발해충의 증가는 비단 한강공원만의 현상은 아니다.

농촌 지역 공무원으로 15년간 일한 오병구 천안시 병천면 부면장은 “외래종 병충해도 많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돌발병해충들이 늘고 있다”면서 “대비하기 어려워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노린재가 많이 늘어났다. 피해가 매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오병구 부면장이 일하고 있는 천안시 병천면은 이번 장마로 인해 수해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피해 정도가 상당해 8월 7일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천안시는 2017년 여름에도 집중호우로 크게 피해를 본 적 있다.

오병구 부면장은 “이전에는 장마 피해라고 해도 일시적인 침수가 많았는데 지금은 전반적인 자연재해로 바뀌었다”면서, “하천제방을 높이고 시설을 예방한다고 하더라도 집중호우가 오면 물이 3~4배 정도 갑자기 늘어나 훑고 가버리니 예방이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가 폭우로 말썽이었다면, 2년 전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문제였다. 오병구 부면장은 양극단을 달리는 기후 때문에 농작물은 물론 지하수까지 메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작물에 살수 분무를 하거든요? 냇가가 있거나 물을 구하기 쉬운 지역에서는 괜찮지만 없는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써요. 문제는 지하수에도 한계가 있다는 거죠. 공공 관정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요. 지하수가 되려면 비가 내려서 암반을 뚫고 내려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이번처럼 집중호우로 물이 다 쓸려 내려가면 고이지가 않아요. 비가 내려도 지하수가 되지 않는 거죠. 지금으로서는 사람들이 마시는 물은 있으니까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쓰는데, 이제 지나다 보면 지하수도 고갈되고 마실 물도 없어진다고 봐야겠죠.”

천안시 병천면 수해피해 현장. 집중호우는 지하수 확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날씨랑 일하는 거랑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진강익 지회장은 매미나방의 알을 치우기 위해 청소 솔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기후변화를 유연하게 대처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옥외 작업이 다수인 건설노동자는 비가 오면 작업 자체를 하지 못한다. 대부분 ‘일당’으로 급여를 계산하는 건설노동자에게 비 오는 날은 ‘일하지 않고 쉬는 날’이자 ‘일당을 받지 못하는 공치는 날’이다.

특히 이번 장마 기간에 시멘트 타설 작업을 하는 레미콘 노동자는 큰 곤란을 겪었다. 타설 작업은 강우에 매우 예민하다. 폭우에 시멘트가 빗물에 씻겨 내려갈뿐더러, 비가 비교적 약하게 내려도 시멘트에 빗물이 들어가면 부실공사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조남순 부지부장의 올해 8월 수입은 예년에 비해서 절반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7월 수입은 예년과 비해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매스컴에서는 6월 말부터 장마가 시작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쏟아 붇듯이 오는 비가 장마였어요. 장마 초기에 비가 오다가 말다가 했는데 그 정도는 상관없이 일해요. 폭염 속에서도 일하는데요.”

비가 오거나 폭염이 내리면 건설현장은 더 위험해진다. 또한 그 위험의 정도는 기후위기로 매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작업을 아예 하지 못할 정도로 큰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일정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일한다. 조남순 부지부장의 7월 수입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다.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하는 건 폭염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워서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폭염이라서 일하다 마는 건 없어요. 특히 요즘은 긴 장마 끝에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차질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도 일해요. 고용노동부에서 물, 그늘, 휴식을 보장하라고 해도 레미콘 치다가 어떻게 끊어요? 하다가 중단하면 균열이 생기는데요. 날씨랑 일하는 거랑 아무 관계가 없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레미콘은 따라서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에요. 사람이 힘들어서 못하는 건 없다는 거죠.”

조남순 건설노조 수도권건설기계지부 부지부장의 모습.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8월 중순부터 일을 재개할 수 있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한강공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마 이후 한강공원 노동자들은 강물이 범람하면서 생긴 진흙과 부유물을 치우기에 여념이 없다. 장마가 거세지면 일거리도 그만큼 늘어난다. 이후 폭염이 찾아오면 똑같은 일을 해도 더욱 고되다. 하지만 진강익 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폭염이 내리고 폭우가 와도 어차피 노동자들은 일을 해야 하잖아요? 밥을 먹고 살려고요. 내가 아니더라도 가족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잖아요?”

노동자에게 기후위기는
감수해야 하는 것?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해 노동조건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고 있었다. 더불어 기후위기로 악화되는 노동조건을 보호하기 위해 인력확충이나 원·하청관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기후위기 자체를 막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제시되는 개인적 실천 방법이 기후위기가 가져다주는 위기감에 비해 괴리감이 크다는 점이 있다. 고기먹지 않기, 일회용품 줄이기 등으로 폭우·폭염·혹한이 초래하는 파괴적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박효경 녹색연합 상상공작소 활동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는 개인이 많다. 그런데 환경부에서 실천으로 제안하는 건 텀블러 사용하기 등이다. 개인의 실천만 강조하는 방법으로는 안 된다”면서, “정부에서 더 강력한 대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도 어떻게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굵직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개인에게 있기보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전체 시스템에 있다. 기후행동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을 총칭한다.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강력한 환경규제,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지지 않은 부품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RE 100’ 같은 기업 차원의 운동, 청소년 결석시위 같은 시민사회 운동을 포함한다.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개인적 실천은 중요하지만 사실상 크게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보통 기후행동은 개인적 차원의 실천보다 조직적인 행동을 지칭한다. 정치적인 운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 기후행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운동은 드물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기후위기와 상관없이 한국의 노동조건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기후위기는 기존 노동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새롭게 추가되는 문제”라면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노동자 개인에게 기후위기를 감내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 노동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와 그린뉴딜을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재삼 전문위원도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비례적이지 않다. 부유한 사람은 회피 수단이 많고 가난한 사람들은 회피 수단이 적다”면서, “기후위기로 인해 취약해지는 계층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과정에서 탈락하는 계층에 노동계급이 많이 포함될 것이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노동계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와 노동자의 접점을 찾아라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노동계와 환경운동계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노동계에서는 고용안정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주장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다가온다. 환경운동계에서는 그렇다고 점점 심해지는 기후위기에 손 놓고 있을 거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노동자 간에 접점은 있다. 이를 위해선 노동 문제의 원인에 기후위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악천후 수당’은 참고할만한 사례다. 2003년 9월 경기도건설산업노동조합은 건설노동자들이 여름동안 잦은 비로 일을 하지 못해 생계곤란을 겪고 있다며, 동절기나 악천후 시기 임금손실분을 별도 수당으로 지급하는 악천후 수당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악천후 수당 요구에 앞장섰던 이영록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법규전문위원은 당시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건설노동자에게 고용안전망이 없잖아요? 1년 이상 일해야 연차유급 휴가가 발생하는데 지금도 1년 이상 일하기도 어려워요. 복지제도가 아무것도 없는 조건에서 현장 노동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악천후 수당을 요구했어요.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가져왔죠. 실제로 겨울이나 여름에 계절적 요인으로 실업상태에 많이 빠져요. 건설노동자에게 맞는 새로운 복지제도를 소개하고 이슈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죠.”

하지만 악천후 수당 도입은 실패했다. 그 이유로 이영록 법규전문위원은 “불법다단계하도급이 핵심적인 중요한 문제라고 봤다. 그게 풀리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악천후 수당은 잠깐 제기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화된 현재, 악천후 수당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기후위기가 심화되기 이전 건설노동자들은 장마철과 혹한기 때만 되면 으레 ‘돈 안 받는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생계위협이 될 정도로 계절적 실업이 길어졌다. 건설노동자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곧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일이 된 것이다.

2019년 9월 건설노조에서 진행한 ‘건설현장 폭염 실태 폭로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현장. ⓒ 건설노조

이영록 법규전문위원은 “고용안정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건설현장의 계절적 실업이 기후위기로 지금보다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제기할 수 있다”면서, “그에 따라 고용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또한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어떻게 건설산업 정책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위기와 고용안정 중 한 쪽만 말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계절적 요인에 의한 실업은 기후위기와 연관된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실업 대책을 마련하면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등 근본적 대책까지 논의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은 고용과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노동조건의 전부는 아니다.

안전, 휴식 등 노동자 주위의 작업장 환경뿐만 아니라 기후까지도 노동조건에 포함될 수 있다. 노동자에게도 기후위기는 중요한 문제다. 또한, 묵혀왔던 노동계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건설산업처럼 기후위기와 노동조건의 상관관계를 찾기가 비교적 용이한 산업이 있는가하면, 다른 산업에서는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기후위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피해가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기후위기를 남의 일로만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