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배송지회, 이제 얼마든지 투쟁할 수 있는 상황됐다"
"온라인배송지회, 이제 얼마든지 투쟁할 수 있는 상황됐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9.07 16:28
  • 수정 2020.09.07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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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조합, 노동자성 인정받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현장 바꿔나갈 것"

마트 온라인배송기사들이 최근 노동위원회로부터 노동조합과 노동자성을 잇달아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대형마트-운송사-배송기사' 계약구조 아래, 운송사와 고용계약이 아닌 위수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지만 사실상 회사에 전속돼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라고 노동위원회가 판단한 것이다. 

올해 2월, 코로나19로 온라인배송 물량이 폭증하던 시기에 준비위원회로 출발한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는 마트 배송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처음 알렸다. 그 과정에서 이수암 지회장은 운송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하기도 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한 노동조합의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당해고 등을 겪으며 정신없이 달려온 이수암 지회장을 만나 온라인배송지회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8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마트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는 지난 2월 준비위원회로 출발했다. 마트 배송기사들의 노동조합 설립 과정이 궁금하다.

대형마트에서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 몰이 더 활성화되고 있지만, 온라인 시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배송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했다. 우리는 하루 10~11시간씩 긴 시간 일한다. 특히 마트엔 중량물 제한이 없어 생수 12묶음, 쌀 등 100kg이 넘는 상품을 한 번에 배달하기도 한다.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비해 처우는 형편 없다. 낮은 운송료에 각종 부담금, 보험료 등을 제외하면 한 달 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현장에서 불합리한 지시, 일방적 계약변경 등 불합리한 노동조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참다 못해 지난해 11월, 이런 현실을 바꿔야 되지 않겠냐고 자주 대화 나누던 동료들과 마트노조에 문의해봤다. 우리가 특수고용직이지만, 노조 설립필증이 없어도 산별노조인 마트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홈플러스 안산점 배송기사 5명부터 시작해 노조 설립 준비를 하게 된 거다.

- 이후 2월 23일 온라인배송지회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물량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1월 22일에 물량이 조금 늘었나 싶었는데, 다음날 물량이 완전 터졌다. 마트에서도 준비를 못 하고 있던 터라 대처가 안 됐다. 매장에서 물건을 담아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피커들도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1시간~1시간30분씩 대기는 기본이었다. 게다가 마스크 지급이 안 되는 건 물론 온도계로 체온 측정 한 번 해주는 사람 없이 우리는 선별진료소, 병원, PC방, 확진자가 나온 장소를 그냥 다녀야 했다. 방치였다.

결국 2월 23일 준비위원회를 출범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처지를 알리기 시작한 거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 우리의 노동환경을 더 알리고자 다른 배송기사에게 부탁해 노조 간부를 조수석에 태우고 업무내용을 촬영하다 고객 컴플레인이 발생했다. 이후 3월 18일 운송사에 업무지시 불이행과 고객 컴플레인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고, 마트노조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하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6월 10일 구제신청을 접수한 거다.

- 지금 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바뀌길 바라는 어려움은 뭔가?

휴일을 많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한 달에 4번 쉬는데 지자체에서 정한 의무휴업일 2번, 의무 휴업이 없는 주말에는 토·일 반씩 나눠 2번 쉰다. 경조사 등 휴가가 없고 만약 쉬고 싶으면 본인 담당 구역을 용차(대신 배송해주는 차)로 대체해야 한다. 용차 비용으로 18~20만 원을 써야해 비용부담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다. 가족 중 누가 돌아가시면 슬퍼하기보다 용차를 어떻게 할지가 먼저 떠오르는 거다.

특히 아파도 쉴 수 없다. 이번 여름에 울산 지역 한 배송기사가 배송 중에 열사병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 마트 배송기사들은 하루에 3차로 나눠 배송을 나가는데, 1차는 마친 상황이었다. 동료들이 물론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형마트와 운송사의 방관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결국 남은 차수는 쓰러진 사람이 병원에서 18만 원을 지불하고 용차를 썼다.

- 노동조합 시작한 뒤, 현장 변화는 없었나?

처음엔 전혀 티가 안 났다. 노동조합을 처음하는 조합원들은 햇볕 가리는 그늘막 하나, 중량물 제한 등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기자회견 하고 여론전 한다면서 바뀐 게 뭐가 있느냐고 따질 수 있는 거다. 그래도 최근 노동위원회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서 운송사의 태도 변화는 느낀다. 코로나 2차 재확산이 시작됐을 무렵 말 없이 배송건수가 늘었는데, 우리가 못 나가겠다고 하니 운송사 측에서 예전 같으면 손해배상 청구하겠다며 강하게 나왔을 텐데 이번엔 본인들이 용차라도 써야지 뭐 어쩌겠냐는 식으로 좋게 이야기하더라.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 최근 온라인배송지회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위원회로부터 잇달아 노동조합과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부당노동행위 관련 8월 10일 경기지노위 심문회의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

주심이 내겐 몇 마디 안 물어봤다. 내가 제출한 서류를 보며 운송사에 주로 계약서상 문제를 짚었다. 계약서에 '노조를 하지 말라', '단체행동을 하지 말라'고 명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계약서에 이런 내용을 적은 이유는 배송기사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주심이 운송사에 묻기도 했다.

- 운송사 측의 주된 주장은 뭐였나?

어떻게 보면 본인들도 '을'이라는 거다. 대형마트에 최저입찰제, 최저가를 제시한 운송사가 낙찰을 받아서 운영하기 때문에 배송기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고생하는 건 알지만 개선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구조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렇더라도 과연 그 자리에서 운송사가 할 소리인가 싶기도 했다.

- 이어 8월 20일 서울지노위에서는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서울지노위 심판회의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계약서는 딱 세 마디로 줄일 수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거다. 그랬더니 내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서울지노위에서도 주심이 배송기사의 현실, 지휘·감독의 주체 등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운송사 측에 조목조목 묻더라. 결국 노동위원회는 노동조합 손을 들어줬다. 이제 온라인배송지회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고, 노조법의 보호를 받기에 이제 얼마든지 투쟁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다.

- 앞으로 온라인배송지회의 계획은?

배송기사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현장을 바꿔나가는 거다. 아무리 기계처럼 일한다고 해도, 심지어 아무리 기계라도 기름 쳐주고 부품 갈아주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배송기사들이 휴식 시간 한 번 제대로 못 갖고, 마트와 운송사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상황은 과도하다.

앞서 말한 열악한 노동환경들을 하나씩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배송기사들 중 생계에 떠밀려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도장 찍고 와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분들이 열심히 일한 뒤 '내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서둘러 움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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