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취재후기]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11.11 14:05
  • 수정 2021.01.25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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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 11월호에서는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해봤다. 

더 나은 일터를 향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때로 조합원의 이익에만 지나치게 집중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일터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노동자들이 일터 밖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면? 시민이자 노동자인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일터 밖 민주주의를 향해 뻗어나갈 순 없을까? 

노동자들이 일터 밖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참여와혁신은 시민단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한국 시민단체가 걸어온 길부터 '참여민주주의 학교'로서 시민단체의 의미, 시민단체의 오늘 등을 담아낸 기자들과 취재후기를 나눠봤다. 

취재후기는 정다솜(이하 ), 이동희(이하 ), 최은혜(이하 ) 기자가 함께했다. 

우리가 시민단체를 들여다본 이유

기사에도 썼듯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일터 안에서만 맴돌아 ‘집단 이기주의' 또는 '조합주의'라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최근엔 '인국공 사태'가 있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을 거다.

 그래서 시민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일터 밖 민주주의를 향해 뻗어 나갈 순 없을까 고민하다 '참여 민주주의 학교' 시민단체에 주목하게 됐다.

그런 비판을 떠나 사실 우리가 기자회견을 비롯해 이른바 '현장'에 가면 노동조합 다음으로 자주 보는 조직이 시민단체다. 우리도 그들의 존재나 노동조합과 여러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깊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미 가까운 두 단위를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문장이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해보자'였고, 그게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로 들어갔다. 
 

우리가 만난 시민단체

시민단체를 취재하며 '시민의 참여' 차원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서울겨레하나의 경우 청년 회원 비중이 높은 배경을 물어봤더니 일단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집회나 활동에서 청년을 상징적으로 불러놓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아이템을 내고 주도적으로 활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거다. 보통 발언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해야 돼'가 아니라 '난 이런 경험을 했는데, 여러분 생각도 궁금하다'라는 식으로 접근한다고. 그래서 청년회원들은 진짜 본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동등한 회원으로 대하는 것 같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또한 지역별, 계층별 소모임을 활발하게 해서 각 단위마다 사업을 만들어 하나씩 활동들을 쌓아가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정치하는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주요 활동 목적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참여적 시민’, 활동가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활동가가 되기 위한 준비나 교육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당사자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보자는 제안을 하면 사무국에서 조금씩 살을 붙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되더라. 

녹색연합도 회원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다. 녹색연합에서 '새 친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하루에 약 2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들이 직접 창문에 '점'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이었다. 회원 80명 정도가 작업했는데, 실제론 하루 2만 마리 중 몇십 마리 새를 구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마리의 새라도 본인 손으로 구했다는 직접적인 효능감을 느껴서인지 만족도가 높았다고 하더라. 

스티커 붙이는 활동은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취재하면서 '이런 좋은 사례가 있구나'보다 '시민단체들이 시민의 참여를 위해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시민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하는 것은 활동가들과 시민단체들의 몫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도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노동조합도 변화된 환경에 대응한다지만 정말 민첩하다거나 변화된 환경에 대한 대응을 우선시한다는 모습을 보진 못했는데, 시민단체의 경우 시민들이 알아서 시민단체 없이 온라인에서 네트워크하고 연대하니까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는 일이 훨씬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시민단체들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SNS 계정 하나 만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하다

우리가 '1조합원 1시민단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시민단체들이 모두 반가워했다. 코로나19로 회원 모집이 정체된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87년 이후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민주화세력들의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가 신생 시민단체들에게 더는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회원모집이나 후원금을 받는 방식에도 고민이 많고.

맞다. 시민이 시민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미 일터에서 목소리를 내본 조합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말을 취재 요청 단계에서부터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이유는 회계의 투명성 등 시민단체 내부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시민단체, 시민운동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기자들도 이번에 시민단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존재나 의의 자체를 알리는 일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에서 회원이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더라. 녹색연합은 '카카오프로젝트100' 플랫폼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지키는 지구, 영어로 기후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기후위기에 관한 영어 문장을 필사하고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만들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기후위기가 곧 나의 위기'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이렇게 시민의 참여를 고민하는 시민단체에 노동조합도 적극적으로 결합해 아이디어를 나누면 시민의 참여가 더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전제는 노동조합도 관심이 있어야겠지. 

맞다. 서울겨레하나에서 우려했던 지점이 1조합원 1시민운동 좋은데, 만약 활동가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한 후원 정도로만 그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였다.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시민단체와 시민이 유리됐던 현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고민을 하더라. 
 

더 많은 신생 시민단체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취재하면서 아쉬웠던 지점이 있나? 

신생 시민단체에 대한 취재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가 총 9개 시민단체를 만났는데 신생단체라고 할 만한 곳은 2017년에 만들어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밖에 없었다. 신생단체이기 때문에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겪는 유일한 단체였는데 그런 신생단체가 조금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동의한다. 한편으론 신생 시민단체가 없는 현실도 문제다. 시민운동에 잔뼈가 굵은 활동가들에게 신생 시민단체를 추천해달라고 물었더니, 다들 답을 잘 못 했다. 5년은 지켜봐야 알 수 있다는 말도 들었고. 기반이 부족해 금세 사라지는 단체가 많으니까. 

오래된 단체들은 보통 운동적 기반이 있는데 신생단체들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가 어렵고. 이제 운동적 기반으로 시민운동을 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한사성처럼 운동적 기반 없이도 시민단체가 커갈 수 있는 지원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사성이 잘 됐으면 좋겠다. '사이버 공간 내 성폭력'이라는 명확한 주제로 운동적 기반 없이 유지되는 조직이 오래가고,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예로 한사성이 남았으면 한다.

공감한다. 참여와혁신도 이번 커버스토리를 계기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그리고 다음 <참여와혁신> 12월호 커버스토리의 키워드는 '노동존중사회'다. 담당 에디터인 백승윤 기자에게 물어보니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존중사회'에 대해 고민한 '썰'을 풀어볼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 4명의 기자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