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단체가 걸어온 길
한국 시민단체가 걸어온 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11.11 00:00
  • 수정 2020.11.3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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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으로 기지개 켠 시민단체들
2000년대 이후 전문화·다양화

커버스토리① 프롤로그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하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확인한 조합원들은 목소리가 없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한편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일터 안에서만 맴돌아 ‘집단 이기주의'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시민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일터 밖 민주주의를 향해 뻗어나갈 순 없을까? 성평등, 복지, 평화, 환경 등 다양하고 삶에 밀착된 사회 영역에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참여민주주의의 학교' 시민단체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2001년 3월 거품 이동통신요금 인하 100만인 물결운동 ⓒ 참여연대
2001년 3월 거품 이동통신요금 인하 100만인 물결운동 ⓒ 참여연대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다. 이중 시민사회는 ‘공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국가·기업 등의 권력 외부에서 활동하는 조직과 비공식 집단’으로 국가도 시장도 아닌 제3섹터, 비영리섹터라고도 부른다. 이런 시민사회를 무대로 시민단체가 활동한다. 비정부기구(NGO), 비영리단체(NPO) 등을 포괄하는 시민단체는 주로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제대로 생산하고 있는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공익을 저해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비판하며 세 개의 톱니바퀴가 균형 있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1987년 6월항쟁,
기지개 켠 시민단체들

한국에서 시민운동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되면서 시민운동이 가능한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박상필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는 “6월항쟁 이후 주요한 과제는 국가의 민주화였던 만큼 국가를 견제·감시하고 정책을 추동하는 시민단체의 주창활동(advocacy)이 활발했다”고 말했다.

기지개를 켠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정치와 경제 권력을 감시하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1989)의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은 정부 정책으로 수용되며 경제민주화에 기여했다. 참여연대(1994)도 부패방지법 제정 운동,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 국민생활최저선 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이외에 환경단체들의 쓰레기 종량제 시행 요구, 여성단체들의 호주제 폐지와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 등 시민단체는 한국사회 변화의 중심에 섰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점에 올랐다. 40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총선시민연대는 부패행위, 선거법 위반, 반인권 전력 등 부적격 후보가 총선에 나설 경우 이들을 시민의 힘으로 심판하자고 했다. 유권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총선시민연대가 지목한 86명의 낙선 대상자 중 59명(68.6%)이 고배를 마셨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위기론
2000년대의 변화

이후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주춤하기 시작했다. 운동가 중심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위기론도 부상했다. 서유경 경희사이버대 후마니타스학과 교수는 “한국 NGO정치는 가장 성공적이었던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이후 하향곡선을 그렸다”며 “2002년 대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조직한 ‘대선유권자연대’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활동 펼쳤던 ‘노사모’의 인기몰이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2004년 탄핵정국도 운동의 주도권이 네티즌에게 있었고, 2004년 2기 ‘총선시민연대’는 시민에게 대체로 외면당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08년 ‘촛불소녀’, ‘유모차부대’로 상징되는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 시민단체와 온라인으로 네트워크화 된 시민 사이 공감대 형성 실패로 인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서유경 교수는 “2008년 촛불시위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주체의식이 비정치적인 계층으로 간주됐던 주부, 여중생까지도 폭넓게 확산됐음을 보여줬다”며 “또한 (시민단체가 아닌) 정치적 소수자들도 온라인 정보통신 환경에 힘입어 스스로 정치 주체화할 수 있는 정치적 잠재력을 갖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시민운동 의제 변화
주제별 전문화·다양화

시민운동의 의제는 변화했다. 박상필 교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국가의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서비스 생산을 담당하는 복지, 교육, 의료, 문화, 여성, 청소년, 소비자에 대한 시민운동이 상대적으로 증대·강화됐다”며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회적 경제와 국제원조활동이 국가정책에서 중시하게 되면서 많은 시민단체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과천, 홍성, 성미산마을 등 지역의 풀뿌리 운동도 주목받았다.

시민단체에 대한 위기론도 잠잠해졌다. 서유경 교수는 “한때 시민단체 위기론이 급부상했지만 현재는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고 본다”며 “한국 시민단체는 한국의 특수한 현대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강력한 정치주체였지만 이젠 아니다. 현재 빠르게 탈정치화하는 중이다. 제도정치가 안정되면 제도권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단체 정치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된다”고 했다.

시민운동은 이제 주제별로 전문화·다양화하는 중이다. 환경운동을 하던 단체가 핵문제, 쓰레기문제, 샛강살리기, 야생화보호 등으로 분화하는 식이다. 서유경 교수는 “한국 시민사회는 1987년 이후 빠르게 재구조화됐지만 여전히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계속 진화해 간다고 볼 수 있다”며 “점차 역사가 오래된 서구사회의 ‘신사회운동’ 형태로 주제별로 전문화되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