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안에만 있기엔 많은 곳에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
공장 안에만 있기엔 많은 곳에서 우리를 필요로 한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11.11 00:00
  • 수정 2020.11.1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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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은 꿈일까?
노동과 시민사회가 함께할 때 사회 변화 체감 가능

커버스토리 ④ 노동조합의 ‘이해’, 그 담장 너머 세상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하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확인한 조합원들은 목소리가 없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한편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일터 안에서만 맴돌아 ‘집단 이기주의'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시민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일터 밖 민주주의를 향해 뻗어나갈 순 없을까? 성평등, 복지, 평화, 환경 등 다양하고 삶에 밀착된 사회 영역에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참여민주주의의 학교' 시민단체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사회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같다. 의제를 설정하고 큰 판을 만들어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목소리에 힘을 싣고자,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누군가는 조직에 전념해야 하는 것 역시 같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목소리와는 달리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공장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조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집단이기 때문이다.

공장 안, 그들의 목소리

노동조합은 집단의 특수한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이익집단의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특수한 이익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기본권 확보 및 조합원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 향상 등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때때로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기본권 확보보다 조합원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에 더욱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대두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들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위 ‘인국공 사태’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마찰 역시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많은 경우 모회사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유도했다.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자회사를 선택할 경우 좀 더 높은 임금과 정년연장이 가능하다며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일부 톨게이트 노동자가 직접고용을 주장하자,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와 함께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기후위기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이 시급한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의 감소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일자리 감소에 따른 생존권 사수로 맞서는 발전노동자들의 목소리 역시 공장 안에서 맴돌 뿐이다.

노동조합 역시 고민하는
이익집단으로서 노동조합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맞지만,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으로서의 고민 또한 노동조합의 고민 중 하나다. 특히 ‘조직된 노동자’라는 울타리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는 노동조합의 숙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동명)은 자체 복지재단을 통해 추석을 맞아 지역 내 소외된 이웃을 위한 생필품을 지원했다. 지난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이상수)는 임금협상 전략으로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을 통해 원·하청 노동자의 임금 격차 해소에 박차를 가했다. 전국전력노동조합(위원장 최철호)은 코로나19와 집중호우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9월 급여 중 일부를 온누리상품권으로 받는 것을 한국전력공사와 합의했다. 다수의 노동조합에서 연말에 연탄 봉사나 김장 봉사 등에 동참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의 이해 실현 너머의 것을 고민하는 노동조합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공공부문 노사가 성과연봉제 강제도입 폐기 이후 이미 지급된 성과연봉을 출연해 사회적 약자들과의 상생과 연대를 위해 만든 (재)공공상생연대기금, 사무금융 노사가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만든 사무금융우분투재단 등 재단을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장기적이고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조합원의 직접적인 참여가 어렵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꼭 노동 현안이 아니더라도 시민단체의 활동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이 이해 실현 너머의 것을 고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매년 여름 양대 노총이 구성하는 통일선봉대가 있다. 통일선봉대를 통해 양대 노총의 조합원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를 사회에 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연대는 시급한 개별 사안에 대한 결합에 그친다. 2016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말했지만,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시급한 개별 사안에 대한 결합만으로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워졌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이 강조했던 것처럼 “개별 사안에 대한 연대가 아니라 선 대 선, 면 대 면의 연대가 필요한 시기”이다.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노동조합이 시민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직접적이고 복합적인 방법으로 대두된 것이 바로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 운동이다. 2013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노무현재단의 주도로 ‘1시민 1시민단체 가입하기’ 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또 2016년 광화문 광장을 밝힌 촛불집회에서는 사회자가 “노동자는 모두 노동조합에, 시민은 모두 시민단체에 가입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1시민 1시민단체 후원하기TF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1시민 1시민단체 가입하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2013년 ‘1시민 1시민단체 가입하기’ 운동에 대해 “‘오늘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지구를 살리겠습니까?’ 이런 문구를 내세우면서 체험 부스를 여는 등 쉽게 접근했다”며 “사람들이 많이 알만한 단체에 가입률은 오르는데 그렇지 않은 단체는 힘만 들었다”고 평가했다.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역시 1시민 1시민단체 후원하기 사업이 효과적이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2018년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의 사업계획으로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가 올라왔다. (자료: 한국노총)
2018년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의 사업계획으로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가 올라왔다. (자료: 한국노총)

2017년, 한국노총은 사회연대공헌상을 제정했다. 노동조합이 사업장 너머의 일에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의 발현이었다. 한국노총은 사회연대공헌상 수여 기준으로 ▲사회적 취약계층, 노동취약계층을 위한 활동 ▲최저임금, 일자리나누기, 비정규직차별철폐 등 활동 ▲한국노총 및 연맹 사회연대사업 지원 및 참여도 ▲사회적 책임 활동 등을 정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2018년 사업계획에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 사업을 포함했다. 2019년과 2020년, 사업 명칭은 달라졌지만,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사업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한국노총의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 사업은 실패했다.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 사업에 대한 참여율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사회연대공헌상에 응모하는 조합원도 1년에 10명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신 해당 사업을 기획했던 권재석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은 10월 15일, 공공노련에 사회연대위원회를 구성, 사회연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총연맹 단위가 아닌 좀 더 작은 단위에서 먼저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 사업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권재석 상임부위원장은 ‘1노동조합 1단체 후원하기’ 사업을 시작으로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다시,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

시드니 베르바, 케이 레만 슐로즈먼, 데이비드 브래디 등은 “단체가 정치참여를 위한 기술, 자원,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다시피, 시민단체는 민주주의의 학교다. 시민단체는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노동조합과 비슷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채로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노동조합과 다르다. 민주주의 학교인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서 조합원이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1조합원 1시민단체 가입하기’ 운동을 제안했을 때, 다수의 시민단체는 “좋은 생각”이라고 답했다.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로서 협력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내부의 이익을 넘어서서 공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사회구조 변화를 위해 어떤 지점에서 무엇부터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닌데, 시민단체 안에서 만의 고민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벽을 넘어가도 희석되지 않는 파워컨텐츠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상상력과 시민단체의 상상력이 칸막이 없이 만나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사회 분위기가 비대면 방식을 통한 연결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박상필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를 떠나 시대적 상황이 기계를 통해 서로 접촉하고 개인적으로 즐기는 시대로 가고 있다”며 “마을 단위에서조차 시민들의 공익적 집단활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윤소영 협동사무처장은 “시민단체의 중요한 역할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더 많은 경험의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면서 시민 스스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이를 위해서는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이 잘 활동할 수 있는 제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는 “노동조합원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이상이나 비전’의 관점을 공유해 본 경험이 있기에 보다 포용적이며 다원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과 시민단체는 자전거와도 같다. 두 바퀴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자전거는 굴러갈 수 없듯, 노동과 시민단체 역시 유기적으로 연대할 때 사회구조 변화를 위한 양분이 될 수 있다. 다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