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그날의 인간 선언을 기억하십니까?”
“50년 전 그날의 인간 선언을 기억하십니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13 16:01
  • 수정 2020.11.13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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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
양대 노총 참석해 “전태일 열사 정신 이어가겠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이소선 합창단이 전태일 추모가를 부르고 있다.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전태일의 ‘인간 선언’ 이후 반세기가 흘렀다. 오늘날의 전태일들이 50년 전 그의 외침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전태일이 지펴낸 불꽃을 꺼트리지 않으려는 다짐이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는 다수의 노동자, 시민들이 참가했다. 노동조합들은 각각 준비한 현수막을 가지고 나왔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한국민족춤협회가 공연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추도식은 임진택 명창·한국민족춤협회·경기민족굿연합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판소리와 풍물공연, 무용을 통해 전태일과 이후 50년을 표현했다.

전태일 열사에게 추서된 국민훈장을 묘역에 전달하는 순서도 있었다.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당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전순옥, 전태리 씨가 무궁화장을 대리로 받았다. 무궁화장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전태일 열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안이 의결됨에 따라 추서됐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발언하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는 전태일의 외침을 다시 외친 뒤 추도사를 시작했다. 그는 “50년 전 오늘, 스스로 불의와 불평등의 억압사회를 태우는 불꽃이 된 전태일 동지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 동안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근로기준법 밖에서 기계처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우리가 전태일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오늘의 우리 현실 속에서 다시 그와 손 잡고자 하는 까닭”이라며 “전태일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다. 불평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혹사당하는 노동자,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있다”고 발언했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발언하는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차례대로 추도사를 이어간 양대 노총은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전태일평전으로부터 탄생했고, 전태일 정신을 자양분으로 투쟁하고 성장했다. 전태일 열사는 민주노총의 출발점이자 든든한 기둥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노동자들은 열사의 기일을 맞이하여 마냥 추모만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했다. 50년 전의 참담한 현실이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라며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지만, 지금은 지킬 근로기준법도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민주노총은 전태일3법 쟁취와 노동개악법 저지를 위한 전면투쟁을 시작하고자 한다. 다시 한 번 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옷깃을 여민다”고 밝혔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발언하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22살의 청년 전태일이 이 땅 노동자의 길에 횃불을 밝히고 가신 지 5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노동을 위협하는 규제완화 논리는 강화되고 있다. 노동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와 국회는 그 책임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는 노동운동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겠다.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법을 위해 조직적 역량을 동원해 투쟁하겠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의 발언도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모두가 약속했던 현장의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 열사의 말씀을 기억하고 서로 존중하고 어우러져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 전 일부 참가자들은 “민주당은 노동개악 중단하라”, “인간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이 지사는 “민주당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가슴 깊게 새기고 노력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가수 하림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문화예술노동자들도 전태일 50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을 진행했다. 가수 하림은 2016년 시인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노래로 다시 만들어 불렀다. 하림은 “이 자리에 모여 계신 여러분을 보니 수많은 예술가 동료들이 생각난다. 예술가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 예술가들도 여러분과 같이 연대해 세상의 많은 가치를 알리고 보호하는 데 힘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림의 공연 이후 이소선 합창단의 '전태일 추모가' 합창도 있었다.
 

11월 13일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전태일 노동상(단체 분야)을 받았다.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한편, 전태일 노동상은 김호철 작곡가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위원장 김태완)이 수상했다. 올해부터 전태일 노동상은 개인·단체·국제 분야로 나눠 시상한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영예로운 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노예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 택배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작곡가는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박준 문화노동자는 “김호철 작곡가와 어제 통화를 했는데, ‘이제껏 오랜 세월 노동현장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문화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당당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는 말을 대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