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 보태려는” 마음 모인 곳, 이소선 합창단
“목소리 하나 보태려는” 마음 모인 곳, 이소선 합창단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9.03 00:00
  • 수정 2023.09.02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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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 힘 받아, 우리 노래도 버틸 힘 됐으면
“하나가 돼라”던 말처럼 하나 돼 합창하는 사람들
[리포트] 이소선 합창단 연습 동행기
박향숙 씨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손 내밀어 안아줘 사랑 되어줘/
우린 슬픈 따로였잖아/

지금 그대가 건네는 손 잡아보니 이젠 알겠네/
믿음으로 내미는 작은 손 마주 잡고 하나 되었네/

<손 내밀어>, 작사 이건범·작곡 이현관

박향숙 씨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담은 곡인 <손 내밀어>를 가장 좋아한다. <손 내밀어>를 노래할 때면 “아릿해지면서 이소선 합창단 초창기가 생각이 난다”고 박향숙 씨는 말했다. 이소선 합창단의 창립 멤버인 그는 알토 파트를 맡아 지금껏 합창단에서 노래하고 있다.

여의도 노동자대회에서 노래할 사람이 필요하단 연락을 급하게 받고 처음 무대에 섰을 땐 마냥 신났다. 무대에서 바라본 지휘자 선생님이 멋져 보여 계속 단원으로 함께하게 됐다. 그러다 “지쳐있는 사람들한테 우리의 노래가 힘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돼 연세의료원 간호사이자 이소선 합창단 단원으로 청춘을 보냈다.

이소선 어머니 12주기를 한 달여 앞둔 8월 9일 이소선 합창단 연습실인 공간소선을 찾았다. 매주 수요일은 합창단 정기 연습이 있는 날로, 단원들은 오후 7시 30분까지 모이려 ‘칼퇴’ 후 걸음을 서두른다. 9일은 해고자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긴 시간 싸우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에게 부를 노래를 연습하는 날이었다. 연습이 시작하기 전 도착한 단원들과 이소선 합창단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상록수>는 장일수 씨가 오디션 때 부른 노래다. 지정곡과 자유곡을 한 곡씩 부르는데 5년 여 전 지정곡이 <상록수>였다. 장일수 씨는 “악보도 못 보는 까막눈”이었지만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걸 즐겨했다. 이소선 합창단은 단원을 선발하려고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정말 어렵겠다 싶은” 몇 분에게 다음을 기약한 적은 있지만 오디션의 이유는 목소리를 듣고 포지션을 정하기 위해서다. 장일수 씨도 오디션 후 테너로 이소선 합창단에 합류하게 됐다.

장일수 씨와 같이 악보 보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임정현 지휘자를 포함한 몇 명이 연습곡을 녹음해 미리 공유한다. 단원들은 녹음 파일을 수시로 들으며 따라 부르고 연습에 온다. 장일수 씨가 처음 섰던 무대는 전태일다리였다. 처음엔 노래를 부르진 못했고, 깃발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합창이 주는 매력이 크다고 했다. 장일수 씨는 “내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남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며 “각 파트가 각각 다른 음성으로 다른 선율을 부르지만 전체 하모니를 들었을 때 되게 멋지다. 그 희열이 있다”고 했다.

김진영 씨, 김유진 씨, 이진희 씨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첫 공연이란 화두를 꺼내니 단원들이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각자의 경험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이소선 합창단에 들어온 지 6개월 차인 신입 단원 장성욱 씨는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 집회에서 ‘데뷔’를 했다. 이소선 합창단엔 배우자의 소개로 들어왔다. 원래는 교회 성가대를 했다.

“기억나죠. 무대에 올라서기 전에 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는데도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노동조합 깃발들은 막 올라오지 가사는 외워야겠지, 심장 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그러다 지휘자 선생님이 딱 보이고 옆에 있는 소리가 들리니까 ‘아! 하는구나’ 싶었어요.”

“어지간하면 긴장 안 하는 깡”을 가졌다 자부하는 김진영 씨도 첫 공연에 “가사 틀릴까” 떨었다. 삼성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해고된 김용희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장이었다. 이소선 합창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묻자 김진영 씨는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고 했다.

“저도 386세대고 계속 직장을 다녔는데 나만을 위한 시간을 좀 가지고 싶더라고요. 자기 긴장감이나 가치관을 놓을 수 있는 게 살다 보니 너무 많아서, 이렇게 나이 들어도 이 가치관을 이런 공간 아니면 공유할 수 있는 데가 없잖아요. 사람들 결이 비슷해서 술을 마셔도 부담이 없는 것도 좋아요.”

소프라노 이진희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갱년기가 오면서 무기력해질 때 여기 오게 된 거예요. 노래로 연대하면서 내가 더 힘을 받고,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는 시간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생활이 활기차졌죠.”

힘이 되는 연대
꿈이 되는 노래 ♬

이소선 어머니는 생전 “하나가 돼라”는 말을 노동자들에게 자주 했다. 노동자들은 그 말대로 이소선 어머니의 영결식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25명씩을 모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 계기로 이소선 합창단이 창단했다. 2014년 창단 공연을 한 뒤론 쭉 투쟁하는 노동자들 곁에서 노래해 왔다.

시간이 흐른 만큼 쌓인 곡도 많다. 이소선 합창단은 자체 악보집을 두 권 가지고 있다. 임정현 지휘자는 “80여 곡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 중 누군가 새로운 곡을 쓰거나 좋은 곡이 나오면 하나씩 추가하고 있다. 이소선 어머니 10주기엔 시민을 대상으로 노랫말 공모를 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기도 했다.

노래는 외워 부른다. 김종아 이소선 합창단 대표는 “책 보고 현장에서 노래할 순 없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노래를 해야 하고, 그래야 가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며 “듣는 사람의 표정도 봐야 한다. 그래서 단원들이 열심히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면 지휘자 선생님이 노래를 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며 웃었다. 이소선 합창단은 공연을 조율하는 일을 하는 대표를 단원 중에서 뽑고 있다. 임기는 2년이다.

현재 이소선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단원은 40명 가까이다. 휴직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적 단원은 50명 정도다. 연령대도 20대에서 60대까지 넓다. 장성욱 씨처럼 부부 단원도 있고, 엄마와 딸이 같이 활동한 경우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연대 공연을 나가자는 내부 공감대도 있다. 공연이 잡히면 단원 중 시간이 되는 사람을 추려 나간다. 직장을 다니는 단원들은 보통 반차를 쓰고 공연에 참여한다. 집회가 많이 잡힌 ‘시즌’엔 덩달아 바빠진다.

김종아 대표는 “현장에 가서 직접 노래하고 노동자들의 반응을 보면 보람도 있고, 계속 가고 싶어지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 경험이 계속 공연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투쟁하는 현장에 목소리로 보태고, 노동자들이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작은 힘이 된다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일수 씨도 “이기는 싸움을 원한다”며 “우리가 노래를 부르면 빨리 일이 마무리되길 원한다. 몸으로 뛰고 싶지만 이미 늙어버려 목소리 하나 보태는 거다”라고 공감했다.

단원들이 임정현 지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동자들이 공연에
힘 받을 때 우리도 힘 나

“공연을 갈 때 현장의 노동자들이 어떤 분위기인지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거든요. 작년인가, 강북구청 비정규직들이 구청장 때문에 싸우는 현장에 갔었어요. 정말 추웠거든요. 밤에 갔는데 어머님들이, 우리 노래가 안 다가올 수도 있는데 굉장히 고맙게 박수 쳐주고 쳐다봐주고 그래서 오히려 저희가 감동이었어요. 엄마 생각도 나고.” (김진영 씨)

김종아 대표의 말처럼 단원들은 노동자들의 반응에 힘이 났던 순간을 공통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진희 씨도 “어느 순간 일상적인 마음으로 공연에 올랐는데 내 공연을 보고 노동자들이 힘을 받으면 ‘아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노동자들도) 우리에게 힘을 받고 우리도 (노동자들에)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유진 씨가 “여기는 이런 마음이 모여 있는 합창단”이라며 이진희 씨의 말을 받았다. 김유진 씨는 “단원들끼리 서로 끈끈한 동지애도 생긴다. 내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늙어가면서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에 양회동 열사 추모 집회에 갔을 때 노동조합 활동하는 분들이 건설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쭉 해 주셨어요. ‘그래 힘들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소선 합창단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아주 작은 힘이지만 그래도 노래로 함께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내 삶을 또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김유진 씨)

어느새 연습실은 단원들로 북적였다. 퇴근과 동시에 연습실로 달려온 단원들은 준비된 김밥을 먹으며 삼삼오오 안부를 묻거나 악보집을 뒤적였다. 연습은 가벼운 몸풀기로 시작해 목풀기로 이어지고, 공지된 연습곡을 합창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날 연습곡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이름> 등이었다. 합창하다 어색한 부분이 임정현 지휘자에게 발각되면 파트별로 불러가며 합을 다시 맞추기도 한다. “파트 따로 시키면 립싱크를 한다”며 깔깔 웃던 익명 단원의 너스레를 떠올리며 연습실을 나왔다. 지휘자의 매서운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립싱크는 불가능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