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1.04 22:13
  • 수정 2021.01.0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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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변경절차 시행·임시숙소 제공 등 동료노동자 긴급구제 필요
이주노동자 故 속헹 씨 죽음은 ‘산재’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월 4일 오전 11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숙소 산재사망 관련,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故 속헹(Sokkheng) 씨의 사망 이후 그의 동료노동자들에게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조립식패널 기숙사에서 지내던 故 속헹 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숨졌다. 농장주에게 고용된 이주노동자였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1월 4일 오전 11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고 故 속헹 씨 동료노동자들의 긴급구제조치를 촉구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주거시설이 원인

대책위는 故 속헹 씨의 죽음이 산재라고 주장했다. 높은 노동강도와 열악한 주거시설,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을 상황 등이 종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장은 ‘월 211시간 노동·4회 휴일’을 조건으로 표준근로계약을 맺었다. 산재보험은 가입돼 있지 않았다. 농·어업 중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산재보험 적용이 제외된다. 그러나 故 속헹 씨가 속해 있던 사업장에는 5인이 고용돼 있었다.

故 속헹 씨가 사망했던 날은 영하 16도의 한파가 닥친 날이었다. 대책위는 故 속헹 씨 동료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故 속헹 씨 사망) 며칠 전부터 전기가 왔다 갔다 해서 난방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의 1차 부검 소견은 간경화로 인한 혈관파열과 합병증이었다. 공식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영섭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라고 10년 넘게 이야기해 왔지만 정부와 사업주는 외면하는 상황이다. 故 속헹 씨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와 서류를 사업자가 가져갔다고 하는데 경찰에서 이 부분을 조사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비닐하우스가 어떻게 집이라고 할 수 있냐”며 “해마다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죽음을 끝내야 한다. 곧 한파가 몰아친다는데,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사고가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대책위는 故 속헹 씨가 본인의 건강상태를 신경쓰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최정규 원곡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농·축산업 노동자들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사업자등록이 안 돼 있기 때문”이라며 “속헹 씨는 본인이 아픈 줄도 모르고 사망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개인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속헹 씨가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료이주노동자들 긴급구제조치 시급

故 속헹 씨 사망 이후 농장주와 정부의 태도도 대책위의 우려를 샀다. 고용노동부가 포천에 다녀간 이후 동료노동자들은 ‘계속근무확인서’를 제출했다. 사업장변경을 원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다.

대책위는 故 속헹 씨의 산재사망을 목격한 동료노동자들 역시 피해자이며, ▲농장주와 즉각 분리 ▲의료서비스 제공 ▲임시숙소 마련 ▲현 사업장에 대한 고용허가 취소와 사업장변경절차 시행 등의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피해이주노동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농장주가 제공한 열악한 기숙사 환경으로 인한 주거권, 건강권 침해에 있다. 동료이주노동자 또한 동일한 피해를 겪은 피해자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주체인 고용노동부가 지금까지 진행했던 조치를 볼 때, 동료이주노동자가 계속 그 위험에 노출될 것이 우려된다”며 “동료이주노동자가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아무런 불이익 없이 사업장변경 등이 진행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후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피력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도 “만약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대우해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산재 사망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정부도 사업주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정신적 고통을 받는 동료노동자들이 있고,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