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대책은 미봉책”
“정부의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대책은 미봉책”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1.07 18:24
  • 수정 2021.01.0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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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 고용허가 불허
이주노동자사망대책위 “비닐하우스 바깥 열악한 거주시설도 전면 금지해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월 4일 오전 11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숙소 산재사망 관련,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와 관련해 정부가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업체의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이주노동자사망대책위)는 “일부 진전된 부분이 있지만 정부의 농·어업분야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대책은 미봉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노동자사망대책위는 지난해 12월 포천 지역 농장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故 속헹 씨의 산재사망을 주장하며 꾸려졌다.

이주노동자 69.6%가 주거권 보호받지 못해

고용노동부·농식품부·해수부는 지난해 9월 2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 496곳의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에는 노동자 3,850명이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이주노동자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사용 중이었다. 그중 69.6%는 가설 건축물에서 살고 있었다. 조사된 가설 건축물은 컨테이너·조립식 패널·비닐하우스 등 다양했다.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설치한 비율은 농축산업에서 12.7%로 나타났다. 일반주택에서 사는 이주노동자가 25%, 고시원·오피스텔 등 공동 주거시설이 2.6% 정도였다. 가설 건축물을 미신고한 사업주는 56.5%로 절반을 넘었다.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에게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주거시설 용도로 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한다. 주거시설에 잠금장치가 없는 경우(농축산업 6.8%, 어업 13%), 소화기‧화재경보기가 없는 경우(농축산업 5.2%, 어업 21.5%)도 있었다.

이주노동자사망대책위는 논평을 통해 “정부는 시설의 질은 따지지 않고 형식적 유무 여부만 파악하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마련돼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무엇으로 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농촌에 흔하게 있는 검은 비닐로 둘러싸인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패널 시설에 창문이 있으면 채광 및 환기가 제대로 되는 것인지, 각종 농자재가 어지럽게 있는 곳에 샤워꼭지가 달려 있으면 목욕·화장실이 갖춰진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가 볼 때 ‘기본적인 생활여건’은 갖춰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현장 실태조사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경기도는 지난 5일 ‘경기도 농어촌지역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농어촌지역 이주노동자 숙소 전수조사 작업에 돌입했다. 경기도는 관련 부서와 시군, 민간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TF를 구성하기도 했다. 2주간의 전수조사는 읍면동과 협력할 예정이다.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던 사업장까지 포괄하려는 의지다. 정부의 설문조사는 전화 응답(노동자), 우편 설문(사업주)으로 이뤄졌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월 4일 오전 11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숙소 산재사망 관련,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1월 4일 오전 11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숙소 산재사망 관련,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사업주가 ‘비닐하우스’만 걷어내면 되는 것인가?”

정부는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제공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고용허가를 불허한다.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숙소 등을 규제하겠다는 의미다. 단 사업주가 고용허가를 신청할 때 ‘가설 건축물축조 신고필증’을 제출한다면 해당 숙소를 허용한다.

또한 정부는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 개정을 추진하는 동안 권익보호협의회를 통해 사업장 변경의 길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지방관서별로 설치된 권익보호협의회는 노·사·외국인지원단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외에도 ▲고용허가 전 기숙사 시각 자료 제출 ▲사업장 모니터링 ▲근로감독 ▲빈집 등 유휴시설 리모델링 지원 ▲사업주의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추진(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을 개선책으로 내놨다.

이주노동자사망대책위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만 금지하겠다는 대안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대책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것은 옳다고 본다. 그런데 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만 불허하는가”라며 “비닐하우스 바깥의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임시 가건물도 실상을 확인하여 문제가 되면 금지시켜야 한다.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불법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 제출 여부로 이를 구별하려는 것은 결국 문제를 미봉책으로 덮으려는 술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더라도, 지금의 절차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각 자치단체에 있는 권익보호협의회가 반기에 한 번 열리기 때문이다. 가설 건축물을 사용하지 않는 사업장을 찾는 것도 어렵다.

정영섭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가설 건축물에 이미 사는 분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낸 것은 긍정적이다. 농어업에서 다른 업종으로도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권익보호협회를 통한 절차를 거치겠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지자체도 나서야 한다고 본다. 전수조사도 필요하고, 지자체의 긴급대피시설을 이주 노동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한파 상황에서의 단기적인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