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이면 좋은 일자리 못 가나요?
고졸이면 좋은 일자리 못 가나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1.07 00:05
  • 수정 2021.01.08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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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전문계·특성화고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 ‘직업계고’ 학생들
​​​​​​​학력인플레? 고졸성공시대? 한국 중등직업교육정책의 명암

특성화고 리포트 X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특성화고

2020년 난데없이 닥친 코로나19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가혹한 시련이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입시’가 아닌 ‘취업’을 목표로 3년간 매진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갈 곳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별개로 특성화고의 문제는 늘 있었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코로나19발 특성화고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특성화고’가 무엇을 하는 학교인지 잘 모른다. 무심하게 ‘공부 못하는 학생들’ 혹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특성화고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특성화고 리포트 ❶ 특성화고 변천사

2020년 12월 13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도보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2020년 12월 13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도보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지난겨울 고3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다. 이 학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지 않는다. 대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2020년 2월 유행이 시작된 코로나19로 취업문이 극도로 좁아지자 반강제로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면서 정부에 ‘고졸 일자리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다. ‘대졸도 취업 못해서 난리다’, ‘공부하기 싫어서 실업계 가지 않았냐’, ‘남들 공부할 때 놀아놓고 징징대지 말아라’는 반응이 다수였다. ‘고졸’에 서린 사회적 주홍글씨 탓에 특성화고 학생들의 주장은 시시비비도 가리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로 치부됐다.

특성화고? 직업계고!

우리에게 특성화고라는 말은 다소 낯설다. 특성화고보다는 전문계고, 실업계고라는 말이 좀 더 친숙하다. 혹은 옛날 농고, 수산고, 상고, 공고, 정보고 등이 지금의 특성화고와 비슷한 학교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회통념상 특성화고는 정확히 말해 ‘직업계고’에 가깝다. 직업계고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 직업계고에는 ▲대안학교를 제외한 직업계열 특성화고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일종으로 ‘산업계의 수요에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마이스터고 ▲일반계고 중 직업계열학과가 포함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20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직업계고는 특성화고(직업계열) 461개교, 마이스터고 45개교, 일반계고 직업계열학과 70개교로 총 576개교가 있다. 전체 2,367개 고등학교에서 24.3%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직업계고는 ▲공업계 ▲농·생명산업계 ▲상업·정보계 ▲수산·해운계 ▲가사·실업계 등으로 세분된다.

한국 산업화와 함께한 직업계고

직업계고는 ‘직업교육’을 목표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체적인 면면을 두고 봤을 때 서로 다른 교육정책에 연원한 학교가 다양하게 공존해 있다. 일반계고와 직업계고의 차이만큼이나 직업계고 내부의 차이가 크다.

1949년 교육법 제정 당시 한국의 중등교육체제는 미국식 모델을 따라 단선형 학제를 지향했다. 다만 독일의 교육체제를 본 땄던 일제교육의 영향으로 고등학교를 대학진학을 위한 일반계열과 직업준비를 위한 실업계열로 나누었다. 이 틀은 현재에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중등직업교육을 크게 강화했다. 국가가 나서 특정 산업에 필요 인력을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기능 인력을 양성한 것이다. 특히 박정희 정부는 실업계고 중 공업고등학교를 기계공고(중공업 고숙련 기능공 육성), 시범공고(해외 건설업체 기능공 육성), 특성화공고(기간산업 핵심 기능공 육성), 일반공고(일반산업 종사 기능공 육성) 등 4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그 중 기계공고, 시범공고, 특성화공고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했다. 소위 ‘직업계고등학교의 꽃’이라고 불리던 시기다. 이 시기 설립된 공업고등학교들은 현재 마이스터고로 다수 지정돼 있다. 비교적 ‘입결’(입시결과)도 높고 교육과정 및 취업률도 탄탄한 학교들이다.

1980년대 한국 중등직업교육은 국가가 기능 인력을 직접 양성하기보다 직업기술인으로서의 기초 소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대학 정원이 대폭 증가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1980년대 후반 찾아온 3저 호황으로 제조업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노태우 정부는 1990년 5월 고교교육개편안을 통해 7:3정도였던 일반계고 대 실업계고 비중을 1995년까지 5:5로 재조정한다. 산업의 필요에 따라 중등직업교육의 방향성이 조정될 수 있었던 시기다.

종국교육에서 계속교육으로 전환
학력인플레의 시작?

이후 점차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중등직업교육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수요에 맞춰 기능 인력을 양성하는 데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을 통해 한국 중등직업교육의 방향성을 종국교육에서 계속교육으로 변화시켰다. 중등직업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이전 시기 직업교육의 목표는 취업으로 한정돼 있었다. 취업을 하면 더 이상 교육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평생직업교육은 취업 이후에도 더 나은 직장생활, 직업개발 등을 위해 계속적으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는 ‘신직업교육체제 구축 방안’을 통해 중등직업교육의 성격을 ▲직업기초교육 강화 ▲직업선택기회 강화 ▲고등 직업교육기회 보장 ▲계속학습기회 제공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방향성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1999년 3월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실업계고교 체제 개편 방향으로 ▲2000학년도부터 진학과 취업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는 통합형 고교 도입 추진 ▲사회적 수요가 없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일반계 또는 통합형 학교 전환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정보고등학교, 디자인고등학교, 전자통신학교 등 특성화고가 신설되고, 동시에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상업계 고등학교는 대거 일반계고 및 통합형 고등학교로 전환됐다.

더불어 실업계열 학생도 대학 진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전문대학·산업대학 특별전형 유지 ▲4년제 일반대학 특별전형 권장 ▲실업고교생 대학 정원 외 입학 허용 ▲대학수능시험에 실업계열 신설 등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도 이 같은 정책기조를 계승했다. 2005년 5월 ‘직업계고 혁신 방안’에서 “직능지향의 열린 직업교육체제 구축”을 위해 특성화고의 범주를 조리, 외식, 관광 등 일반 직업분야까지 확대했다. 또한 기존 실업계고라는 명칭을 전문계고로 변경하고 산업 분야별 기초 직업 인력을 육성하도록 했다.

더불어 노무현 정부는 핵심공약이었던 ‘국가균형발전’과 발맞춰, 2005년 직업계고 예산지원 방식을 중앙정부가 직접 하는 방식에서 시도교육청으로 관할을 이전했다. 또한 2006년에는 정부 부처별로 직업계고에 직접 예산을 투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1996년까지 70%대를 기록한 직업계고 취업률은 2000년대 초 40% 후반, 2000년대 중반에는 20%대를 기록했다. 반면 대학진학률은 2002년 처음 취업률을 앞선 이후 2000년대 중후반까지 70%대를 찍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로 직업교육을 중등교육을 넘어 평생교육·고등교육까지 확장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동시에 대학 학력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 박지영 디자이너 jkpark@laborplus.co.kr

잇따른 현장실습생 사고
무늬만 고졸성공시대?

200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인 직업계고의 취업률 하락·대학진학률 증가는 직업계고의 교육목표가 취업이 아닌 계속교육기관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한 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방향성은 이명박 정부에서 뒤바뀐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한국형 마이스터고 기본계획’, 2010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선진화 방안에 따라 기존 전문계교-종합고-특성화고 등으로 나뉘어져 있던 중등직업교육체제는 현행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체제로 정비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행하던 산학협력, 중소기업 인력 육성정책에 더해 고졸일자리 확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동일한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한 ‘선 취업 후 진학’ 제도를 그대로 유지·계승했으며, ‘일-학습 병행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도입 및 운영,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사업’ 등을 펼쳤다. 또한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NCS) 기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거의 모든 직업교육 사업에 반영할 정도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NCS 도입은 직업교육의 체계를 잡았다는 평가가 있으나 직업교육을 노동시장에서 즉각적으로 활용 가능한 ‘구체적인 스킬’로 한정했다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이 같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따라 직업계고 취업률은 2009년 16.8%로 최하점을 기록한 뒤 2017년 50.6%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2017년 특성화고 학생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면서 높은 취업률 뒤에 있는 열악한 노동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LG유플러스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비극적으로 목숨을 끊은 전북 특성화고 고 홍수연 양 사망사건, 2017년 11월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이민호 군 사망사건이 연이어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양질의 고졸일자리, 정부가 보장하라”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비극적인 죽음이 언론에 널리 알려진 이후 직업계고 취업률 또한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가 11월 27일 발표한 ‘직업계고 취업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직업계고 졸업생 취업률은 27.7%(전체 졸업자 89,998명, 취업자 24,938명, 진학 38,215명, 입대 1,585명, 제외인정 970명)를 기록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2021년은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2020년의 3분의 1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역대 정부의 중등직업교육 정책 혼선 속에 직업계고 학생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직업계고 학생들은 대학을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내몰렸다. ‘고졸’로도 괜찮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고졸성공신화’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일부 상위권 직업계고 학생에게만 한정된 말이었다. 대다수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는 열악한 일자리가 주어졌다. 또한 고졸에 대한 차별은 직장 내에서 건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가 수많은 중등직업교육 정책을 냈지만 양질의 고졸일자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양질의 고졸일자리, 정부가 책임져라!”라는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의 외침이 무리한 요구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