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특성화고 교사, 피해자는 학생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특성화고 교사, 피해자는 학생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1.07 00:15
  • 수정 2021.01.08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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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의 열악한 현실은 교육 당국의 무관심을 비추는 거울
“고졸 취업 위해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특성화고 리포트 X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특성화고

2020년 난데없이 닥친 코로나19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가혹한 시련이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입시’가 아닌 ‘취업’을 목표로 3년간 매진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갈 곳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별개로 특성화고의 문제는 늘 있었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코로나19발 특성화고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특성화고’가 무엇을 하는 학교인지 잘 모른다. 무심하게 ‘공부 못하는 학생들’ 혹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특성화고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특성화고 리포트 ❸ 특성화고 수업, 그리고 정책

“수업을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선생님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런데 교육에 뜻을 품고 학교에 온 선생님들도 현실에 벽을 느끼고 좌절한 경험이 많아요. 어느 순간 적당히 타협한 선생님들이 많을 겁니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에 불만이 많다는 얘기를 전하자 어느 직업계고 교사가 한 말이다. 학생에게 양질의 직업교육을 제공하기에는 특성화고 현장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특성화고에는 교사 개개인의 의욕과 실천만으로는 풀어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식어가는 특성화고 인기,
신입생 모집에서 발생하는 학교와 학생 간 간극

서울 60%, 경기 45%. 전국 특성화고 학생 수 중 약 40%를 차지하는 서울·경기 지역 특성화고의 2020년 신입생 모집 미달 학교 비율이다. 특성화고는 매년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졸업생·재학생이 말한 ‘과잉 홍보’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성화고가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내놓은 자구책은 ‘학과 개편’이다. 최신 트렌드와 학생 선호도에 맞춰 주목을 끌 만한 학과를 신설한다. 미래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관련 학과를 만드는 식이다. 학생에게 새로운 학과 내용을 가르칠 교사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교사가 해당 전공을 가르칠 역량을 미처 갖추기 전에 인기 학과를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계·전자·전기 등 전통산업기술을 익힌 교사로선 학생에게 신산업 분야를 제대로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학생을 가르쳐야 할 교사도, 교사에게 배우는 학생도 불만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한 교육청 관계자 A씨는 “학과를 개편하고 설계하려면 먼저 교사 연수 과정을 개편하면서 교사를 충분히 충원하고, 졸업 후 진로대책을 세우고, 교육과정에 맞는 실습 기자재를 확보해야 한다”며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인기 있는 학과부터 만들어놓으니 교사의 전문성은 낮고, 졸업 후 학생에 대한 진로대책도 안 세워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영화 '언더그라운드' 갈무리.
ⓒ 영화 '언더그라운드' 갈무리

양질의 수업 위한 교사 연수,
특성화고에선 쉽지 않아

잘 가르치는 학교를 위해선 교사에 대한 적절한 연수가 필요하다. 새로운 전공뿐 아니라, 수업방법과 학생에 대한 이해도 및 접근 방식을 길러야 한다. 교사가 일정 기간 산업체에서 직접 근무하며 현장과 산업동태를 파악할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특성화고 교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교사가 전적으로 연수에 참여할 수 있는 기간은 방학이지만 길어야 2개월가량이다. 학기 중에는 야간시간대를 이용해 연수받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과후 수업으로 인해 그마저도 쉽지 않다.

교사가 제대로 연수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려면 교육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연수비용 지원을 비롯해 휴직기간 중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특성화고 교사들이 실질적으로 역량을 기를 기회가 많아진다. 한 특성화고 교사는 “그저 가르치라고만 하면 교사도 굉장히 어렵다”며 “연수를 통해 강하게, 깊게 공부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성화고에선 방과후 수업을 통해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취득이나 추가 실습교육을 한다. 정규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정규수업시간에 학습에 열의가 없거나 기초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적지 않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그렇다고 ‘가르치기 쉬운’ 아이들만 모아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평균적인 수준에 맞춰서 수업하면 심화내용을 수업하긴 힘들다.

실습수업의 경우에는 기자재 문제도 있다. 직업계고 중 특히 공업계열은 기계를 통한 실습이 중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장비가 비싼 경우 필요한 개수를 다 갖춰놓지 못하는 학교가 많다. 학생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실습을 해야 한다. 수업시간 내에 충분한 실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취업 연계에 사업 선정까지,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교사

특성화고의 목적상, 교사들은 학생의 취업에 신경 써야 한다. 학생들의 일자리를 발굴하기 위해 산업체를 돌아다니며 학교와 연계한다. 교육당국은 이러한 업무를 맡길 취업지원관을 도입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취업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전담할 인력을 배치한 것이다. 학생은 안정적으로 취업할 수 있고, 교사의 취업 관련 업무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문제는 취업지원관이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데에 있다. 교사와 전문가들은 취업담당자가 일자리를 발굴하려면 지역 산업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짧은 기간만 일하는 취업지원관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취업지원관들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8개월 정도 일한다. 산업체와 유대를 형성하기에도, 역량을 쌓기에도 부족한 기간이다.

이에 따라 취업지원관을 업무 특성에 맞게 최소한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교육부는 취업지원관 무기계약직 채용에 따른 인건비 지원을 약속했지만, 대부분의 교육청에선 여전히 기간제로 취업지원관을 채용하고 있다. 2020년 8월 기준, 전국 취업지원관 517명 중 75.6%(391명)가 기간제다. 교육부는 2019년부터 취업지원관을 매년 200명씩 늘려 2022년에는 1,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아직 도입 초기 단계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취업지원관 확대가 취업률 증가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취업 활로를 찾기 위해서 여전히 교사들이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ㄱ학생은 “학교랑 취업 연계할 회사를 찾아다니는 어느 선생님은 ‘바빠서 수업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 너희끼리 기출문제라도 풀어봐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선생님이 학교 수업보다도 다른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성화고 교사들은 수업보다 사업 업무가 많은 현실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재원을 마련하려면 각종 특성화고 지원 사업을 따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습 재료·기자재·전기요금 등 특성화고는 일반고보다 수업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방과후 수업이나 보충수업에도 돈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중소벤처기업부의 특성화고 인력양성사업 등 특성화고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 일한다. 경우에 따라 지원 사업과 관련한 일을 하다 잠깐 시간을 내서 수업을 할 때도 있다.

이러한 특성화고 지원 사업은 학교 간 양극화를 심화하기도 한다. 취업이 잘되고 우수한 학교일수록 지원 사업에 선정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청 관계자 A씨는 “오히려 잘하는 학교에는 지원 사업을 줄이고 다소 열악한 학교를 선정해 간극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그렇게 해야 특성화고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성화고의 열악한 현실,
정책 당국의 무관심을 비추는 거울

열악한 실습 기자재,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는 교사 등은 특성화고에 대한 교육 당국의 무관심 때문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현재 직업계고 교육과정을 위한 시설운영과 기자재의 내구연한, 교사 연수의 실질적 개설·운영 주체는 각 시도교육청이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자체 교육에 관한 예산·집행 권한 등은 각 시도교육감에게 있다. 교육연구기관 관계자인 B씨는 “부족한 예산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은 특성화고에 대한 교육감의 관심도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예산 관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교육청 관계자 A씨는 “교육청에서 학교가 예산을 잘 사용하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장학사 2~3명이 맡고 있는 사업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며 “불필요한 사업은 줄이고 교육청 인력을 늘려서 학교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게끔 개선사항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저조한 취업률에도 여전히 관심은 적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특성화고를 비롯한 직업계고 학생의 취업을 위한 대책으로 ‘지자체마다 고졸취업지원센터를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을 위해 지자체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얘기다.

지금도 각 시도교육청은 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지역 산업체와 특성화고 매칭을 지원한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산업별 협의체에서도 풀어가기 쉽지 않은 일자리 문제를 교육청 단위에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담당 인력이 적어 내실 있게 운영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독립적인 고졸취업지원센터 설립’이나 ‘내실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교사와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특성화고 학생의 취업에 적극 힘써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성화고를 비롯한 직업계고 학생이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많은데 지원이 소홀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졸 취업자는 고교 소재지에서 일자리를 구할 확률이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의 고교 소재지 잔존율이 대졸 취업자의 대학 소재지 잔존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가 밝힌 2018년 고졸 취업자의 지역잔존율은 63.8%이다. 5명 중 3명 이상은 졸업한 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에서 취업하는 셈이다.

다만, 추세적으로 고졸 취업자의 고교 소재지 잔존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보고서는 “지역잔존율의 전반적인 감소 경향은 고졸취업률이 낮아지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며 “고졸취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감소가 고졸취업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지역잔존율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교육연구기관 관계자 B씨는 “해당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할 가능성이 큰 아이들에 대해서 지자체가 교육청과 힘을 합쳐서 지원하라는 건 정당한 요구”라고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취업 안내를 위해서라도 고졸취업센터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나이가 어리며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재취업자나 대졸 청년 실업자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청 관계자 A씨는 “현실적으로 사업체들이 졸업하고 1년 뒤에 군대 간다며 허드렛일만 시키니까 3~4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둔 아이들이 상당수”라며 “특성에 맞는 산업체를 발굴하고, 고용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기업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공기업에서 고졸자에 맞는 적합 직무를 발굴하고, 우선 채용하게 해서 특성화고를 졸업하고도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특성화고의 이미지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연구기관 관계자 B씨는 당국의 무관심으로 피해를 당하는 건 결국 특성화고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비정상적인 학력 인플레이션 사회 속에서 일찍부터 취업하려고 진로를 정한 아이들입니다. 최소한의 지원은 해주면서 ‘애들을 보냈는데 선생들이 왜 안 가르치느냐’고 말하면 교사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은 교육 정책을 펴는 사람들이 직업교육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