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오로지 학생에게만 맡겨진 현실일 수 있다
취업, 오로지 학생에게만 맡겨진 현실일 수 있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1.07 00:10
  • 수정 2021.01.08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성화고 교육 수준의 문제, 학생들의 기대 저버리고 있어
교육 수준 담보, 교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성화고 리포트 X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특성화고

2020년 난데없이 닥친 코로나19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가혹한 시련이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입시’가 아닌 ‘취업’을 목표로 3년간 매진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갈 곳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별개로 특성화고의 문제는 늘 있었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코로나19발 특성화고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특성화고’가 무엇을 하는 학교인지 잘 모른다. 무심하게 ‘공부 못하는 학생들’ 혹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닌지. 특성화고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특성화고 리포트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실을 들어보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2020년 12월 13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도보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특성화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역사박물관까지 피켓 행진을 했다. 피켓에는 ‘코로나는 고졸에게 더 가혹하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에 사회적 교섭을 요구했다.

코로나19는 노동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취업이라는 선택지뿐이었던 특성화고 학생들은 곤경에 빠졌다. 실습을 해야 하는데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실습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코로나19는 트리거(Trigger, 방아쇠)였다. 특성화고의 교육문제가 축적돼 코로나19라는 기폭제를 만났던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행진을 마친 후 오후 5시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빠른 취업’을 하고 싶은 학생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한다. 여러 선택지 중 특성화고를 포함한 직업계고도 있다. 취재를 종합해보면 학생들이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빠른 취업’으로 묶어볼 수 있었다. 그냥 돈을 빨리 벌고 싶은 학생,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얼른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학생, 공부는 자기와 맞지 않아서 대학에 가느니 일을 하고 싶다는 학생,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직접 돈을 벌어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학생, 단순하게 일을 먼저 해보고 싶은 학생 등 다양한 이유가 ‘빠른 취업’을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생이 졸업 후 취직을 하려는 보통의 이유와 같다. 단지 보통의 이유를 중학교 3학년 때 좀 더 빨리 만난 것이다.

학생들은 빠른 취업을 원해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그만큼 특성화고도 빠른 취업이 가능하도록 학교생활의 초점을 취업에 맞춘다. 특성화고의 교육과정도 설립목적과 맞게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통 특성화고에 입학하면 2학년 때까지는 보통교과와 전문교과를 함께 배운다. 보통교과는 흔히 말하는 국영수, 사회탐구, 과학탐구, 예체능 교과이다. 전문교과는 전공 학과별 필수 과목과 NCS 관련 과목이다. 2학년 때부터 전공 관련 실습을 시작해 3학년 때 본격적인 실습과 취업을 위한 시험 및 면접 등을 본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방과후 수업을 듣기도 하고 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성화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학교교육에 불만이 꽤나 쌓인 상태다. 외형적으로는 취업을 위해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같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특성화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특성화고 교육의 질에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실제 취업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어 교육수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소위 성적 좋은 학생만 밀어주는 차별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성화고 교육 수준의 민낯

① 교사의 역량

서울시 소재 특성화고에 다니는 3학년 학생 A씨는 “그래픽을 알려주신 쌤도 정확히 모른다”며 “친구가 그래픽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그 친구가 쌤이 모르는 걸 가르쳐주곤 한다”고 토로했다. 교사로서의 자격까지 의심하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전라북도 소재 특성화고에 다녔던 졸업생 B씨는 “SSAT와 같은 직무능력검사나 NCS를 주로 취업하려는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필기시험으로 보는데, 학교에서 그걸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이 없어서 학원에 다니거나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B씨는 NCS를 공부하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의 학원까지 가서 강의를 듣고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

경기도 소재 특성화고에 다니는 2학년 C씨 역시 “선생님들이 저희보다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선생님이 몰라서 저희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수행평가 문제가 오류가 나서 직접 저희가 고칠 때도 있었다”고 했다. C씨의 전공은 ERP경영이고 배웠던 세무·회계 분야의 과목에서 그러한 문제 지점을 본 것인데, 세무·회계 분야의 과목은 이전부터(특성화고로 지정되기 전 상업고등학교 때부터) 있어온 과목이라 더 큰 문제이다. 신산업 수요에 발맞춰 급하게 생긴 과목에 대해서는 교수 역량을 쌓을 기간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미 있어왔던 과목에 대해선 시간적 여유 부족이라는 이유를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② 자격증을 따기 위한 사교육

취업을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 B씨는 “자격증이 15개 이하면 취업시장, 고졸 취업시장에서 크게 메리트를 얻을 수 없다”고 전했다. 대졸 취업준비생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습득한 자격증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는 답변이 많았다. 학생들이 실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은 적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다른 능력을 요하기도 했다.

자격증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다만 당장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는 이유와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자격증을 따지 않을 수는 없다. “취업해서 쓰는 건 잘 모르겠는데, 취업할 때는 필요해요”라는 C씨의 목소리가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취재차 만난 특성화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적게는 7~8개에서 많게는 15개 이상까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7~8개를 가진 재학생들은 자격증을 더 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취업시장에서 의무화되다시피 한 자격증을 따는 데 학교에서 큰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고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사교육 시장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C씨는 “작년까지 학교 수업 시간에 자격증 수업을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실습을 모여서 할 수가 없어서 학원에 갔다”고 설명했다. 결국 비용의 문제까지로 번진다. 따기 쉬운 자격증은 3~4개 묶어서 100만 원 코스, 상위 스펙에 해당하는 자격증은 하나에 100만 원 코스로 특성화고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이외에도 현재 특성화고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상훈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교사의 전문성이나 시대와 맞지 않게 과거에 배운 걸 답습하는 교사의 역량 문제를 학생들이 지적하고 있다”며 “심지어 새로운 교구가 들어왔는데 그걸 조작할 교사가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산업에 발맞춰 만들어진 전공과목에 대한 교사의 역량, 즉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변화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교구 활용 능력을 학교 현장에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영화 '언더그라운드' 갈무리
ⓒ 영화 '언더그라운드' 갈무리

특성화고 안의 계층

특성화고 안에서 나타나는 교육 차별도 학생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공공기관과 은행권 취업이 가능한 상위 성적 학생들에게만 집중적인 교육·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경기도 소재 특성화고에 다녔던 졸업생 D씨는 “공공기관에 갈 수 있는 상위 몇 프로만 잘라서 그 친구들만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한다”며 “(그런 분위기 때문에) 성적이 좀 안 돼도 열심히 해 공공기관이나 은행권에 가고 싶은 친구들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학생 C씨는 취업을 위해 따고 싶은 자격증을 학교에서 수업해준다는 걸 뒤늦게 안 경험도 있다. C씨는 “방과후에 학교에서 자격증 수업을 해주는데, 몇 학생들에게만 따로 공개해서 듣고 싶어도 듣지 못했고 이후에 직접 선생님을 찾아가도 안 된다고 하셨다”며 박탈감을 느끼고 특성화고에 진학한 기대감이 무너졌다고 했다. 이처럼 특성화고 안에서는 소위 공무원·공공기관·은행권의 상위 계층과 중소기업 등의 하위 계층으로 나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취업률 올리기의 피해는 학생에게

특성화고를 비롯한 직업계고는 취업을 위한 학교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률이 중요하다. 많은 특성화고에서 취업률 올리기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취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는 황당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D씨는 학교에서 비즈니스마케팅을 전공했다. 하지만 D씨의 선생님은 D씨가 원하는 직무는 아니지만 회사가 괜찮다는 이유로 우선 취업부터 하라고 권유 아닌 권유를 했다. D씨는 물류팀에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일단 물류회사지만 전산으로 가서 사무직을 할 테니 취업을 재차 권유했다.

D씨는 “담임 선생님이 계속 그러시니까 그런가 보다 해서 갔는데, (말씀과는 달랐고) 담임 선생님이 확인차 몇 번 제가 취업한 기업을 방문했는데, 당시에 제가 힘들다고 해도 ‘이만 한 곳 없으니, 버텨라, 버티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만 이야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D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는 전공과는 전혀 다른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에게 오로지 맡겨진 현실,
다각적으로 특성화고 교육 살펴야

특성화고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빠른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특성화고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교육의 질이 낮다보니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차별적인 교육을 받다 보니 스스로의 능력을 제약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사교육 시장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빠른 취업’이라는 기대는 오로지 학생들에게만 내맡겨진 현실이 된다.

다만 교육을 수행하는 교사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교사가 교육 역량을 쌓기에는 과다한 행정 업무에 둘러싸여 있었다. 특성화고 교사의 업무에는 취업 연계를 위해 지역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렇게 여유가 없는 상황에 더해 장기간 교육 연수를 떠나면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인력의 문제도 생긴다. 이러한 이야기는 특성화고 학생들도 학교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었다.

결국 특성화고의 존재 목적을 부여하고 특성화고를 관리·운영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총체적 역할이 부재한 게 문제일 수 있다. 또한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더 나은 일자리로 갈 수 있다는 뚜렷한 공식이 성립하기에는 학력이라는 사회적 차별로 노동시장의 계층이 나뉘는 문제도 있다. 중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특성화고 진학여부를 선택하는 시기인 중학교 때 자신의 적성에 기반한 직업을 고민해볼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말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기대인 ‘빠른 취업’을 무너뜨리는 원인들을 다각적으로 살펴보지 않는다면 ‘빠른 취업’은 학생들에게만 오로지 맡겨진 현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