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제조업 불공정거래, 당사자는 어떻게 느낄까?
자동차부품제조업 불공정거래, 당사자는 어떻게 느낄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06 08:35
  • 수정 2021.01.0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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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42%, “하도급거래 불공정하다”
하도급법과 함께 표준하도급계약서도 개정해야

[리포트] 한국노총·중기중앙회의 불공정거래 실태조사①

#1.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을 위반한 대우조선해양에 과징금 153억 원을 부과했다.

#2. 2018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는 당시 현대자동차 구매본부장이 출석해 화제가 됐다. 당시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현대차가 “지속적인 단가인하를 통해 판매 부진의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한다”며 자동차부품제조업 불공정거래에 대해 집중 질의했다.

우리 사회에서 원·하청 불공정거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공정거래 해소 방안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늘 있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동명)과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는 2019년에 이 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불공정거래 해소를 위해서는 실태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는 2020년 9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산업의 거래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참여와혁신>은 이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들여다봤다. 실태조사의 대상이 자동차부품제조업체 100곳의 노사로 한정돼 있어, 거래관계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우리 사회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으로서 충분한 의의를 지닌다고 판단해 그 결과를 소개한다. 전반적인 거래관계에서 나타나는 불공정거래 관행은 후속기사를 통해 계속 추적할 예정이다.

디자인 = 박지영 디자이너 jypark@laborplus.co.kr
디자인 = 박지영 디자이너 jypark@laborplus.co.kr

자동차부품제조업 불공정거래, 어느 정도일까?

중기중앙회와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는 매년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와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를 각각 실시한다. 이 조사에는 노동조합이 참여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가 함께 실시한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서는 자동차부품제조사의 사용자와 함께 노동조합의 응답도 들었다. 10월과 11월에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일부 노사 당사자와의 심층 면담도 진행했다.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가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거래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인식했다. 중기중앙회가 2018년 11월 발표한 〈2018년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에서 자동차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81곳의 하청업체 중 4.9%만이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거래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는 하도급거래의 공정성 여부에 대해 ‘그렇다’와 ‘아니다’로만 답할 수 있어 4.9%의 응답자를 제외한 95.1%는 모두 공정한 하도급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이번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의 공동 실태조사는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매우 그렇다’, ‘다소 그렇다’, ‘보통이다’, ‘다소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로 나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거래가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고, “다소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2%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이종건 중기중앙회 상생협력부 부부장은 “중기중앙회의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는 자동차부품제조업에 특화된 기업을 상대로만 실태조사를 하지는 않는다”며 “이번에 한국노총과 함께 진행한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는 응답자에 노동조합 간부가 포함되면서 중기중앙회가 발표하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의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통 중기중앙회의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에는 기업의 임원이나 구매담당자 등이 응답자로 참여한다. 원청업체에 납품해야 생존할 수 있는 하청업체로서는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거래가 불공정하다고 쉽게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혹여 누가 어떤 답변을 했는지 공개되기라도 하면 납품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불공정거래 유형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불공정거래는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거나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해 취급하는 행위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거래 상대방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등으로 규정한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은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를 확립해 원·하청이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법의 전체 내용이 불공정거래 유형에 관한 금지 조항이다.

이번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서 자동차부품업체 노사가 불공정거래 유형으로 가장 많이 지목한 것은 납품단가였다. 이어 부당한 특약 설정, 금형 소유권과 그 대금 지급, 결제조건의 순이었다.

특히 원청업체와의 계약조건 중 “CR(Cost Reduction, 단가인하)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매우 공정하다’고 응답한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소 공정하다’는 응답도 1%에 불과했다. 반면 ‘매우 불공정하다’는 응답과 ‘다소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54%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2월 자동차를 주력업종으로 하는 중소제조업체 51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제조업 납품단가 반영 실태조사〉에서는 모든 응답자가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바 있다.

CR이 불공정한 이유로 응답자들은 “형식적으로는 협의를 거치지만 실질적으로 하청업체가 거부할 수 없다”, “최초 계약 시 CR 규정이 없었지만, 계약 이후 CR 규정을 넣거나 단가를 인하하자고 한다”고 답했다.

‘Worst Of Worst’ 불공정거래 행위는?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서 가장 큰 원·하청 불공정거래 행위로 지적된 문제는 ‘가단가(假單價)’였다. 가단가란 확정되지 않은 임시단가란 뜻이다.

하도급법에 따라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계약서를 서면으로 발급해야 한다. 계약서에는 하도급대금과 그 지급방법 등 하도급계약의 내용,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의 조정요건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하고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대표가 서명해야 한다. 계약서는 하도급법에 따라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에 납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서명까지 완료된 상태로 하청업체의 손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계약서에 기재된 하도급대금이 가단가이기 때문에 납품 후에 확정단가를 정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입찰과정에서 선정된 이후 단가가 바로 확정이 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 원청업체가 계약과정에서 단가를 확정하지 않고 이른바 가단가를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계약서에는 부품 단가를 개당 900원으로 정했다. 하청업체에서는 부품을 납품한 뒤 하도급대금을 계약서에 기재된 단가대로 받는다. 근데 나중에 원청업체에서 “그건 확정단가가 아닌 가단가”라고 하면, 하청업체는 지급받은 하도급대급 중 차액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 A 자동차부품제조하청업체 관계자 심층 면담 中

 

자동차부품제조업체 노동조합 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담에서도 가단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원청업체와의 하도급계약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계약서상의 단가가 확정단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단가가 기재돼있다. 근데 원청업체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면서 “기재된 단가는 가단가였기에 단가를 조정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단가 변경을 통보한다. 근데 계약서에 해당 단가가 가단가라든가 단가가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지도 않고 가단가라면서 일방적으로 단가를 깎으니까 하청업체는 이익을 낼 수 없는 거다.”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 ㄱ 자동차부품제조하청업체 노동조합 위원장
심층 면담 中

“계약서에 기재돼야 하는 내용이 모두 기재된 채로 받지 않는다. 원청업체로부터 받는 계약서는 ‘미완의 계약서’다. 특히 단가는 가단가라고 해서 재협의, 재협상의 여지를 항상 남겨놓는다. 계약서대로 단가나 결제조건 등이 확정돼야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지 않나. 근데 계약서에 기재된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 재협상의 여지를 남겨놓는 거다.”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 ㄴ 자동차부품제조하청업체 노동조합 위원장
심층 면담 中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하려면?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 참여한 자동차부품제조업 당사자들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해 법·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하청이 상생협약을 체결하거나 공정거래 인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높은 편에 속했다. 보완돼야 할 법·제도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꼽은 것은 처벌 강화였다. 뒤를 이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강화와 당국의 직권 조사 강화 등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어느 자동차부품제조업체 노동조합 위원장은 “원청업체가 직접적으로 보복조치를 얘기하지는 않지만, 과거 공정위에 원청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신고했다가 거래가 끊겨서 폐업한 부품업체가 있었고 이를 업계에서 공유하고 있기에 원청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신고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근로감독관처럼 하도급거래에서의 불공정행위를 감독할 수 있는 하도급감독관 같은 행정체계가 마련된다면 좋겠다”고 심층 면담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목한 것은 표준하도급계약서 보완이었다. 응답자 중 99.2%는 원청업체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이용해 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하도급계약서에는 “신제품(초도품) 제작 등과 같이 발주 전에 확정단가를 정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갑과 을이 협의해 정한 임시단가를 우선 적용하되, 추후 확정단가가 정해지는 때에 임시단가와 확정단가의 차액을 정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는 “표준하도급계약서에 가단가를 정하는 사유를 제한하고 확정단가 결정 예정기일을 명시하며 가단가 관련 부당행위 유형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하청업체가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원청업체로부터 계약서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21.2%로 낮은데, 계약서 미교부에 대한 제재 기준을 현행 1점에서 3점으로 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12월 23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만나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간담회를 가졌다. ⓒ 중기중앙회
지난해 12월 23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만나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간담회를 가졌다. ⓒ 중기중앙회

한편,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는 지난해 12월 23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을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하도급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기술유용행위 입증책임 전환 ▲기술탈취 10배 손해배상제도 신설 ▲계약체결 전 단계에서의 기술탈취행위 금지 조항 ▲부당특약 설정 금지 ▲비인격적 행위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하도급법 개정안이 10여 건 발의돼 있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