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제조업, ‘원·하청 뉴 에라(New Era)’ 준비하자
자동차부품제조업, ‘원·하청 뉴 에라(New Era)’ 준비하자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06 08:35
  • 수정 2021.01.0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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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규제만으로는 자동차부품제조업 자립 어렵다
변화하는 자동차산업 … 지속가능한 생산 사슬 고민할 때

[리포트] 한국노총·중기중앙회의 불공정거래 실태조사②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동명)과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두 달간 시행한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는 매년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와 중기중앙회가 발표하는 하도급거래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와 사뭇 달랐다. 대체할 자동차부품제조업체는 많지만 완성차업체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그 배경에 놓여 있다.

경주 모화공단 ⓒ 참여와혁신 포토DB
경주 모화공단 ⓒ 참여와혁신 포토DB

불공정거래 잡을 법은 많은데…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법은 많다. 1975년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해당 법에 불공정거래 행위 억제 기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거세지자, 1980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 제정됐다. 특별히 하도급계약 관계에서의 불공정거래를 염두에 둔 법도 있다. 바로 1984년에 제정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이다. 하도급법은 법 제정의 목적에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 확립’을 명시한다.

이 법들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하도급법은 제정 이후 43번이나 개정됐다. 공정거래법은 그보다 더 많아서 2020년 12월 정기국회에서 61번째로 개정됐다. 61번째 개정은 역대 두 번째 전부개정안이다.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생길 때마다 법 개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고 금지행위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온 결과 이처럼 빈번한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불공정거래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원청업체를 대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서 하청업체를 다른 하청업체로 대체하는 게 가능하냐는 물음에 64%의 응답자가 대체 가능하다고 답했다. 대체 불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3%에 불과하다. 반대로 원청업체와의 거래가 끊길 경우, 다른 원청업체로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 4%의 응답자만 대체 가능하다고 답했다. 59%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원청업체를 대체할 다른 원청업체가 없기에 법이 있어도 불공정거래 행위 신고가 쉽지 않다.

“자동차부품제조업계에 불공정거래 행위는 사실 만연하죠. 부품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를 특정 업체에서 생산하는 것만 쓰도록 강요하는 사례도 있고, CR(Cost Reduction, 단가인하) 협상을 보통 5월에 하는데, CR 협상 이후에 결정된 금액을 그해 1월부터 소급적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청업체는 차액을 원청업체에 돌려줘야죠. 이게 공정거래법, 하도급법에 안 걸릴까요? 다 불법이에요. 근데 공정거래위원회에 섣불리 신고하지 못하는 거예요. 왜? 망할까봐. 그 원청업체는 우리가 아니어도 다른 하청업체를 통해 부품을 납품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원청업체가 아니면 부품을 납품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들 알고도 무서워서 말 못 하는 거죠. 국내 자동차부품제조업체 중에 정말 독점적 기술력을 가진 외국인투자기업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국내 원청업체와의 거래가 끊기면 살아남을 수 있는 하청업체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

한국노총·중기중앙회, 불공정 유형별 개선방안 제안

〈자동차부품제조업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는 불공정거래 유형에 따른 시사점을 도출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불공정거래의 유형에 따라 하도급법 또는 관련 고시를 개정하거나 표준하도급계약서를 개정하자는 것이다.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가 제안한 하도급법 개정안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른 하도급 거래조건의 합의 원칙, ▲CR 약정 예상 못한 사정 발생 시 납품대금 조정 신청 사유로 추가(정부안과 같음)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 상향 ▲납품대금 지급 기한 30일로 단축 및 현금지급 의무화 ▲수급사업자 등에 대한 괴롭힘 금지 ▲하도급감독관제 신설 ▲거래조건 개선을 위한 수급사업자 공동행위 허용을 내용으로 한다.

서면미교부에 대한 과징금 등 제재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과징금 부과기준에 관한 고시 개정안도 제안했다.

또한 ▲가단가 정하는 사유와 확정단가 결정 예정기일 명시 ▲가단가 관련 부당행위 유형 추가 ▲보수용 부품 납품대금 및 금형 보관비 현실화와 멸실·훼손 책임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정안도 불공정거래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제안했다.

 

원청 규제와 함께 수급사업자 역량도 강화해야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가 제안한 개선방안은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해소하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12월 한국노총과 중기중앙회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유발하는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실태조사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산업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원청을 규제한다고 하청의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사업자에 대한 규제와 함께 추진돼야 하는 것은 수급사업자의 역량 강화다. 하지만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됐듯이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게 사실상 종속돼 있는 처지다. 이는 거래선을 변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에는 납품단가 협의를 위한 수급사업자의 공동행위를 허용함으로써 불균등한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교섭력의 차이를 개선하는 방안이 담겨 있지만, 그 외에도 수급사업자의 기술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산업구조 아래서 수급사업자는 낮은 영업이익률로 기술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자금지원이나 세제혜택과 같은 정부의 지원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자동차부품제조업체들이 대부분 일정한 지역에 모여 있음을 감안할 때 산업단지별로 유사 부품제조업체들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센터 등을 설립·운영하고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원사업자가 이를 지원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는 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부품제조업체들의 전기차 부품으로의 전환율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면 부품이 대폭 감소하는데, 그나마 전환율까지 낮으면 부품제조업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연구개발 역량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10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아 “2030년까지 한국을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 청와대
지난해 10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아 “2030년까지 한국을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 청와대

다만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변화의 속도를 함께 조율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정부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김준영 처장의 다음과 같은 고민은 자동차부품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제조업 중에서 자동차산업의 고용 비중이 25%정도 돼요. 쌍용차 정리해고 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었거든요.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원청업체도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이제 하청업체를 더 쥐어짤 수 없는 거죠. 짤 만큼 짰으니까. 이제는 상생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해요. 정말 이제는 원·하청업체가 지속가능한 생산 사슬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