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노동자 보호 대책, “그런데 말입니다”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 “그런데 말입니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1.25 14:35
  • 수정 2021.01.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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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함께 부상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필요성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논의가 논의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가 제정한 한 조례가 큰 반향을 불러왔다. 전국 최초로 성동구가 제정한 ‘서울특별시 성동구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규혁)은 즉각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는 의미 있는 모범 사례”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지난해 9월부터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정부는 필수노동자 보호TF를 구성해 6개월여의 논의 끝에 12월에는 ▲보건·의료 ▲돌봄 ▲운송 ▲환경미화 ▲기타 등 5개 분야의 맞춤형 대책을 내놓았다. 총 24쪽의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 중 환경미화 분야는 딱 두 쪽이다.

환경미화노동자, 그중에서도 가로환경노동자의 시선에서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을 살펴봤다. 최근 6개월 사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논의가 그저 논의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해 12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e-브리핑
지난해 12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e-브리핑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논의
어떻게 흘러왔나

비대면이 필수인 시대, 국민 안전 및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대면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보호와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특히 폐기물 배출량의 증가로 환경노동자의 노동강도가 증가했다. 지난해 8월 30일, 환경부는 2020년 상반기 플라스틱 폐기물의 하루 평균 발생량은 848t으로 2019년 상반기 하루 평균 발생량보다 15.6%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환경노동자의 안전사고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같은 해 11월에는 대구지역에서 환경미화노동자가 근무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필수노동자의 보호와 지원 방안을 처음 문서로 만든 곳은 서울 성동구다. 성동구는 지난해 9월 10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성동구의 조례 제정 이후 같은 달 22일, 제48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으로 “필수노동자”라는 단어를 꺼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과 치료를 담당하는 보건의료 종사자들, 요양과 육아를 담당하는 돌봄 종사자들, 배달업 종사자들이나 환경미화원들, 제조, 물류, 운송, 건설, 통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대면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 필수노동자”라며 “정부 각 부처는 코로나 감염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 달라”고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 이후 10월 6일, 정부는 ‘필수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필수노동자 보호TF 구성이 포함됐다.

정부의 필수노동자 보호TF 구성에 발맞춰 국회 역시 필수노동자법 발의에 나섰다. 가장 먼저 나선 건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민형배 의원은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이름의 필수노동자법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형배 의원 발의안을 포함해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수노동자 보호법안’,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법안’ 등 4개의 필수노동자법이 발의됐다.

지난해 연말, 더불어민주당은 1월 초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한 10대 입법·정책 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필수노동자TF 구성을 약속했다. 필수노동자법을 발의한 김영배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필수노동자TF는 첫 번째 입법·정책 과제로 필수노동자법 제정을 꼽았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유로 필수노동자TF 발족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가로환경노동자인데요,
이번에 나온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은…

지난해 12월 14일, 정부는 같은 해 10월 구성했던 필수노동자 보호TF에서 논의한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방역 강화 ▲건강보호 강화 ▲인력확충 및 처우개선 지원 ▲사회안전망 강화 등의 총괄대책과 ▲보건·의료 ▲돌봄 ▲운송 ▲환경미화 ▲기타 등 5개 분야의 맞춤형 대책이 포함됐다. 환경미화 분야는 ▲인력확충 ▲종사자 보호 ▲처우개선 ▲제도개편 등 4가지가 추진과제로 선정됐다.

인력확충을 위해 생활폐기물 영역에서 3인 1조 작업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안이다. 환경미화노동자를 위한 위생시설 개선을 지원하고 작업 특성을 고려한 건강진단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100ℓ짜리 대용량 종량제 봉투의 사용도 제한하고 민간위탁 환경미화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점검할 예정이다.

환경미화노동자는 ▲생활폐기물 수거 ▲대형폐기물 수거 ▲음식물쓰레기 수거 ▲건설폐기물 수거 ▲가로환경 등의 영역으로 나뉜다. 생활폐기물 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수거, 건설폐기물 수거는 대부분 민간에 위탁한다. 서울시는 가로환경노동자를 직영으로 운영한다. 대형폐기물 수거는 민간에 위탁하기도 하고 직영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서울 강서구는 가로환경노동자가 대형폐기물 수거를 같이하지만, 인근의 서울 양천구는 대형폐기물 수거를 민간에 위탁했다. 그래서 서울 강서구 환경미화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서울시강서구청공무직노동조합의 조합원은 가로환경노동자와 대형폐기물 수거노동자로 나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 참여와혁신 포토DB

김경철 서울시강서구청공무직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 중 환경미화 분야의 맞춤형 대책을 어떻게 봤을까? 김경철 위원장은 “인원확충은 환영할 일이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3인 1조 작업 기준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개선지도하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 만약 같은 조의 누군가 다치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바로 인원을 확충할 수 있도록 대기조를 만드는 등의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김경철 위원장은 “대기조를 만들라는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지자체에서 대기조를 만들지 않으면, 같은 조의 누군가가 다쳐서 자리를 비우면 그 조는 2인 1조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필수노동자의 지원방안 등을 심의·의결할 수 있는 지원위원회를 각 자치단체에 설치하겠다고 했으니 거기서 대기조 구성과 같은 세부기준을 노동자와 함께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의 또 다른 아쉬운 점으로 김경철 위원장은 “집체 안전교육의 부재”를 꼽았다. 종사자 보호 대책으로 샤워실과 휴게실 등 위생시설 개선 지원 및 추진상황 점검은 포함됐지만, 집체 안전교육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봤다. 현재 강서구는 안전관리자만 분기마다 한 번씩 안전교육을 받는다. 안전관리자가 자신이 교육받은 내용을 현장노동자에게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이 마땅히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기억은 거의 없다. 김경철 위원장은 “집체교육과 온라인교육을 병행해서 안전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이 아닌, 현장노동자에게 직접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논의는 불타오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 성동구는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각종 재난발생 시 위험에 노출된 채 대면업무를 수행하는 필수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구민생활 안정과 재난극복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성동구 필수노동자 조례는 구청장의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노력을 규정했다. 이를 위해 구청장은 필수업종을 선정하고 필수노동자 지원계획 수립을 위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고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구청장은 필수노동자 지원위원회를 설치해 재난 상황에 따른 필수업종 지정과 필수노동자 관련 사업추진,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필요한 사항 등을 심의할 수 있다.

성동구가 필수노동자 조례를 제정한 후 현재까지 23곳의 자치단체가 필수노동자 조례를 제정했다. 이들은 대부분 성동구 필수노동자 조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자치단체의 조례 제정도 있지만, 전국에 공통으로 적용하기 위한 법 제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국회에는 필수노동자법이 4개가 발의돼 국회 소관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발의된 4건의 필수노동자법 중 민형배 의원과 송옥주 의원의 필수노동자법은 성동구 필수노동자 조례와 유사하다. 김영배 의원과 이해식 의원이 발의한 필수노동자법은 업무영역별 필수노동자 지원 주체를 지정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법은 해당 조항에 포함되는 필수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 법 조항이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김경철 위원장은 “필요한 흐름”이라고 봤다. 김경철 위원장은 “각 자치단체가 필수노동자 조례를 제정하거나 국회에서 필수노동자법 입법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흐름”이라며 “자치단체는 조례라는 근거가 있어야 실무협의를 할 수 있고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철 위원장이 일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는 아직 필수노동자 조례가 제정되지 않았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서울특별시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조례가 시행됐는데, 강서구도 올해 안으로 필수노동자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다른 자치구의 조례를 검토하는 등 필수노동자 조례 제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철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조례를 제정할 때, 혹은 조례를 제정한 뒤 이를 집행할 때 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이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례가 문서로만 남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 적용했을 때 도움이 돼야 지금의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논의가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김경철 위원장은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 이번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 논의가 시작됐지만, 필수노동자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며 “이번 논의가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논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