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일과 나
[취재후기] 일과 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1.25 17:50
  • 수정 2021.01.25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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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이 새해 첫 번째로 다룬 이야기는 ‘일과 나’의 관계였다.  

물론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말이 상징하듯 일은 나에게 하루치 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이 재밌다는 얼굴들이 있긴 하다. 이들에게 일이 언제 재밌는지 물어봤다. 

목수, 청소노동자, 타투이스트, 칼 가는 장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소기업 대표.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는 평범한 이들은 자기 일의 고유한 얼굴을 선뜻 보여줬다. 일이 재밌는 순간을 분명히 아는 열두 명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자들이 일과 나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후기는 정다솜(이하 ), 이동희(이하 ), 박완순(이하 ) 기자가 함께했다. 

우리가 일이 재밌는 사람들을 만난 이유

첫 질문은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인가였다. 질문이 나왔으니 취재를 통해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순조롭지 않았다.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뭔지 먼저 대답하라는 요구, 왜 일을 잘해야 하느냐는 역질문에 잠시 후퇴했다. 다시 여러 조언을 받으며 고민한 끝에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일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찾아봤다. 그제야 취재가 하나씩 풀렸다. 

그렇게 해서 만난 취재원들에게 뽑은 공통점으로 기사를 썼다. 난 세 번째 꼭지에서 내 일로 나만의 영역을 만든 사람들을 소개했다. 또한 내 일이 개인에서 사회로, 일에서 또 다른 일로 순환하고 확장하는 이야기도 다뤘다.

두 번째 꼭지에선 적성에 맞아 일이 재밌는 얼굴들로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일은 내 쓸모를 찾아가는 과정이더라. 내 일이 남에게 어떤 힘이 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재밌게 할 수 있단 모습을 발견했다. 흥미로웠다. 흔히 노동언론에서 노동을 다루는 관점 외에 언제 이렇게 일 자체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을까 싶었다. 

맞다. 우리의 질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인터뷰한 열두 명에게 비슷한 점, 공통점을 빠짐없이 발견했던 점도 신기했다. 취재하면서 흥미로웠던 지점들이 궁금하다.
 

일이 재밌다는 사람들의 얼굴

먼저 이야기하자면 행복은 우리의 직관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글 쓸 때 깜빡이는 커서를 화면 오른쪽으로 밀어내기가 유독 고통스러운 날이 있다. 이만 멈추는 것이 내 정신과 육체 건강에 분명 좋겠단 직관이 나를 지배하지만 기어코 커서를 아래까지 다 밀어내고 나면 묘한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취재한 사람들도 일이 재밌다고 말하지만 일하는 과정 자체가 순탄한 건 아니었다. 

일의 즐거움이라고 함축해서 말했지만 정말 다양한 모습이었다. 적성, 전문성, 일의 확장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일에서 괴로운 면도 분명 있었다. 일을 잘한다는 것도 사실 일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일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선택이 맞았던 것 같다. 일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더니 그 사람들은 일을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의 특성이 그런 것 같다. 일은 문제해결이라 어려운 문제 속으로 들어가 해결을 하니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 쾌감을 아니까 반복해서 문제해결을 하는 것 같고.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 혹시 있나? 

아무래도 장인을 만날 때 정말 즐겁다. 대우목형 장종일 사장님도 그랬다. 인터뷰 내용이 막 풍부하다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외길 인생을 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랄까. 그분이 직접 일이 정말 재밌다고도 했지만, 그냥 자기는 몇십 년 동안 내 일을 한 거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역시 좋았다. 

특정 인물이나 말이 인상 깊었다기보다 공통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취재해 보니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고 자기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을 엄청 즐거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공통점은 일에 대해 별 불만이 없단 거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때려치우겠다는 등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취재하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보통 불만이 생기는 상황에서 ‘별로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리곤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들을 봐서 인상 깊었다. 

우리가 되게 조심했던 지점이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이렇게 일을 즐겁게 해야 한다거나 자기 일을 돌아봐야 한다는 당위로 다가가지 말자는 거였잖나.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완순 기자처럼 나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더라. 

맞다. 나는 주묘희 씨앤엠로보틱스 대표이사의 이야기가 좋았다. 일과 나의 관계에만 신경쓰라는 말이었다. 일 외에 신경 써야 할 관계와 상황이 많은데, 주묘희 대표이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뭔가 평온해졌다. 이렇게 따로 소개하고 싶었던 말들을 메모지에 붙이는 형태로 월간지에 담았다.

우리가 취재를 꽤 많이 했지만 모든 맥락을 소개하진 못해서 아쉽다. 아까운 말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따로 정리해 온라인으로 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
 

더 많이 남은 일에 관한 이야기들

이외에 아쉬운 점은 더 다양한 직종, 더 많은 연령대를 만났다면 일이 재밌다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동시에 우리가 취재한 열두 명의 이야기를 더 쪼개볼 수 있단 생각도 들더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찾아보고, 더 취재하는 식으로. 

 그것도 좋겠다. 나는 사실 종교와 일의 관계에 대해 더 취재해보고 싶다. 우리가 취재했던 분 중에 종교가 있는 분들이 꽤 많았다. 이들에게 종교가 소명, 비전 등 자기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들었다. 종교와 일의 관계가 분명 있긴 한 것 같은데, 우리의 표본만으론 그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 이번에 짚어내진 못했다.

기독교에서 소명은 서구적인 개념이다. 소명은 어떤 한 사람한테 주어지니까 상당히 개인적인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종교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개념이나 문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어도 다시 생각했다. 지난달 노동존중사회 특집 할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느낀 게 워라밸을 지켜주면 노동존중 사회인가? 삶과 일을 분리하는 게 맞는 방향인가? 싶었다. 그럼 지금 워라밸이 아닌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워라밸의 개념이나 가치에 대해서 재정립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일과 삶은 대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니까. 

일과 삶이 분리되는 워라밸이 자주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일을 하기 싫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맞다. 일과 나에서 워라밸까지 왔다.(웃음) 취재후기는 여기서 마무리하자. 다음 2월호 커버스토리는 ‘자영업’에 관한 특집이다. 곧 기사가 나오니 기대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