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도착한 김진숙 “해고 없는 세상은 오늘이 시작이다”
청와대 도착한 김진숙 “해고 없는 세상은 오늘이 시작이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2.07 16:28
  • 수정 2021.02.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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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출발한 ‘희망뚜벅이’… 40일 여정 끝에 청와대 앞에 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단식농성 중인 정홍형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을 포옹 해주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진숙 지도위원이 단식농성 중인 정홍형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을 포옹 해주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7일 오전 11시경 희망뚜벅이가 서울 동작구 흑석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이다. 코로나19 이후 찾아보기 힘든 도심 행렬에 시민들의 눈길이 멈췄다. 행렬 앞뒤로 경찰 인력과 취재진이 따라붙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이 날의 주인공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취재진의 카메라가 자신을 향할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부채를 높이 들어 인사했다. 부채에는 ‘한진중공업 고용안정 없는 매각 반대!’ 손글씨가 적혀 있다.

행렬 속 ‘대우버스 355명 부당해고철회’ 하늘색 조끼와 ‘한국게이츠 공장폐업 철회’ 노란색 조끼가 눈에 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해고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해고자에서 복직자가 된 쌍용차 노동자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이날 행진에 함께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도 행렬 앞자리를 지켰다.

36년, 김진숙이 해고자로 살아온 시간

김진숙은 신문 배달, 버스 안내양, 봉제공장 미싱사를 거쳐 1981년 10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스물한 살 용접공 노동자 김진숙은 “내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행복을 느꼈다.

행복도 잠시, 1986년 2월 대의원으로서 대의원대회 후기를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3회에 걸쳐 고문과 회유를 당했다. 김진숙이 배포한 ‘제23차 정기 대의원 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공분실에 다녀온 뒤에는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사무직에서 직업훈련소 강사로 전환배치됐다. 두 번째 배치전환을 받은 직업훈련소는 영도조선소에서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인 데다가 조합원이 한 명도 없었다.

김진숙은 직업훈련소 전환배치가 부당하다며 영도조선소로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경찰, 회사 관리자, 어용노조 간부들은 김진숙 집 앞까지 찾아가 그의 출근을 막았다. 이후 1986년 7월 14일에는 집 대문에 해고장을 붙이기에 이른다. 회사는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을 해고 이유로 들었다. 그렇게 김진숙은 해고자가 됐다.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의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 40m 높이의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이에 힘입어 해고자들은 모두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김진숙 본인은 복직하지 못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해 회사에 복직을 권고한 바 있으며, 지난해 9월 25일에 다시 같은 권고를 내렸다.

지난해 9월 11일 부산시의회는 ‘한진중공업의 투명하고 공정한 매각과 해고노동자 김진숙 복직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김진숙과 이병모 한진중공업 대표,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출석한 가운데 특별결의안을 채택했다. 특별결의안에는 “한진중공업은 해고노동자 김진숙 씨가 조속히 회사에 복직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이 담겼지만,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에 대한 복직 및 보상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복직을 거부했다.

2020년 12월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법률 5단체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려면 회사 임직원이 주어진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쳐야 하지만, 노사 합의를 통해 해고자 복직 및 보상을 하는 것은 회사 임직원이 주어진 본연의 임무를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 노동과세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희망뚜벅이는 7일 오후 3시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40일간의 희망뚜벅이를 마무리하는 약식 집회를 열었다. ⓒ 노동과세계

해고 노동자를 대표해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릿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복직했다면 정년퇴직했을 2020년 12월 31일을 앞두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행진하는 희망뚜벅이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40일 뒤, 희망뚜벅이 34일 차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뚜벅이는 7일 오전 11시 흑석역을 출발해 오후 12시 40분경 한진중공업 서울 본사를 지났다. 그리고 목적지인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에 이르러 긴 여정을 마쳤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약식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님,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호소했다.

한 달 넘게 함께한 희망뚜벅이에게는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라며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아시아나케이오,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서진이엔지, 아사히글라스, 코레일네트웍스, 쌍용자동차 등 해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내자”고 외쳤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 12월 22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리멤버 희망버스 단식단’의 단식농성은 오늘로 마무리된다. 단식을 멈춰달라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다. 단식자들은 이날 약식 집회가 끝난 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발언문 전문)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박인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트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잘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의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잘린 김계월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네트웍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 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존중 사회에서 차헌호는, 김수억은, 변주현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잘리며 가장 많이 죽어 가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잘렸으며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 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가는가. 세월호, 스텔라스테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발 한발 천릿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보자기 덮어쓴 채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몸에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 와”라고 묻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이야”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 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먼 길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