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문턱 낮추기②] 단골약국 있으세요?
[약국 문턱 낮추기②] 단골약국 있으세요?
  • 이동희 기자,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3.12 00:40
  • 수정 2021.03.11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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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매장 출입 및 이용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해 주세요.’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과 눈을 맞추며 약국에 들어섰다. 들어선 약국은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어서 오세요.” 눈에 익은 손님을 알아본 약사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오늘의 증상은 인후통. 늘 그렇듯 오늘도 약사에게 증상을 ‘최대한 자세하게’ 전달한다. “혹시 열도 있어요?” “열은 없어요. 아침에는 괜찮았는데 오후부터 목이 따끔거려요. 잔기침도 있고, 목도 약간 쉬었어요.” “열이 없으면 목감기 약으로 드릴게요.” 약사의 처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점막이 쉽게 마를 수 있어요. 실내 습도 유지하시고, 물 많이 드셔야 해요.” 약값을 치를 때 이어지는 약사표 잔소리가 끝나면 약국 방문이 끝난다.

단골약국의 시작

증상을 상세하게 말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받는 일. 나아가 관련 식습관 및 생활습관도 함께 조언 받는 일. 약국을 이 같은 방법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이 일을 시작한 지 반년쯤 지난 입사 1년 차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원인 모를 허리통증이 심해졌다. 매일 책상에 앉아(때론 길바닥에도 앉아야 하는) 노트북만 바라봐야 하는 일인데 허리통증이 심해지니 일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병원 가기를 미루며 그때그때 진통제만 챙겨 먹고 있었을 때라 회사 맞은편 약국을 하루걸러 방문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여느 때와 같이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는데 약사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거셨다. “계속 진통제만 사가시던데 어디가 그렇게 많이 아프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약사님의 이 질문을 시작으로 후에 허리통증을 없앨 수 있게 됐다.

약국 손님 대부분은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방문한다. 또는 “○○○ 주세요”라며 원하는 약을 콕 집어 구매하기 위해 약국에 간다. 나도 그 ‘대부분’에 속했다. 원하는 약을 말하는 동시에 계산해달라며 카드 내밀기에 급급했다. 약국은 의약품 판매처. 약사는 내가 원하는 약을 건네주고 계산해 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모 제약 회사에서 만든 진통제를 달라고 한 참이었다. 그런데 약사님이 물었다. “계속 진통제만 사 가시던데 어디가 그렇게 많이 아프세요?” 최근 출석 도장을 찍듯이 약국에 오는 손님이 진통제만 찾으니 걱정됐던 모양이었다.(각 제약 회사에서 만든 일반의약품 진통제를 돌아가면서 섭렵하고 있었으니 걱정할 만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지난 몇 주간 시달렸던 허리통증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경청하던 약사는 뜻밖에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최근에 잠자리가 바뀌진 않으셨어요?”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이었다. 그랬다. 당시는 왕복 4시간 통근에 지쳐 막 서울에 집을 얻은 때였고, 인터넷에서 급하게 산 10만 원도 안 되는 매트리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한 달 가까이 진통제만 삼켰던 나날은 6개월 할부로 침대를 사면서 일단락됐다. 이 모든 게 약사님의 세심한 관찰력 덕분이었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약뿐만 아니라 생활습관, 식습관까지

그날 이후 약국에 들를 때면 사소한 것 하나도 약사와 상담하게 됐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약국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 또,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의사가 환자에게 문진(問診)하는 것처럼 약사도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묻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최근 약국 개국을 앞두고 있는 정상원 약사는 “약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맞춤 처방을 내리는 일은 약국에서 오래전부터 해왔던 서비스인데, 최근 ‘맞춤형 영양제’ 같은 서비스가 알려지면서 약사의 서비스를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산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정승민 약사는 약사라는 직업을 ‘헬스케어 코디네이터’라고 생각한다. “약국에 약을 펼쳐놓고 손님들한테 필요한 약을 고르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이때 손님에게 맞는 복용 방법을 알려주고 관련 생활습관, 식습관을 몸에 심어주는 등 건강 상담을 하는 게 약사다.”

그러나 약사의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국을 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승민 약사가 말했듯이 약사를 언제든 건강 상담을 할 수 있는 ‘헬스케어 코디네이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수원에서 1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강선옥 약사는 “아직 약국·약사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생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강선옥 약사의 약국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주택가에 있다 보니 단골 창출이 곧 약국 자산이다. 단순 약만 파는 게 아니라 약과 함께 애정 어린 ‘잔소리’를 제공한다. 단골을 만드는 강선옥 약사만의 비결이다. “약 봉투에 생활습관 하나라도 더 적어서 알려드리려고 한다. 그런 시간이 10년이 넘으니 약국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단골이 생긴 것 같다. 이제 약국도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차별성을 가져가지 않으면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이 약국에 오면 작은 거 하나라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승민 약사는 ‘약국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건강 상담 등 약사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건강 상담은)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하면 더 좋다가 아니라 약국에서 약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약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약국의 생존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약국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약국을, 약사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노력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약사들의 온·오프라인 활동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약사가 약국 문을 넘어 직접 찾아가는 방문약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치약사와 일대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모바일 복약상담 애플리케이션(App)도 등장했다. 약사와 환자는 물론, 약사와 약사 간, 환자와 환자 간 각자의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정상원 약사는 이러한 노력이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약사의 역할을 소비자들이 ‘잘 몰라서’ 약국을 피상적으로 이용하는 게 안타깝다. 다만 그렇다고 이걸 소비자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소비자들에게 보여 지는 약국과 약사의 모습이 바쁘고 불친절한 모습이니 약국을 불편한 공간으로 여기게 된 거다. 약국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곳이니 친절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불친절한 곳은 안 가면 된다. 그 선택권은 소비자들에게 있다.”

약국 문턱을 낮추고 싶은 약사들은 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약국을 경험해 봤으면’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약사와의 상담을 통해 제품을 만나고 그 제품이 몸에 맞는다고 느끼는 ‘건강한 경험’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보길 바란다. 약사와의 충분한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소비자도, 약사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

정상원 약사는 이 한 번의 경험만 있으면 다음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보통 약사들도 제품을 추천하거나 권할 때 약을 팔려는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약사가 추천한 제품으로 효과를 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약사의 추천을 이 제품을 사라는 걸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 더 궁금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승민 약사도 여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손님 입장에서 약사가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약사가 추천하는 약을 먹었더니 몸 회복에 도움이 됐다, 이런 걸 경험하면 이다음부터는 ‘이거 주세요’가 아니라 자기 몸, 건강에 대한 상담을 하기 시작한다.”

약국 문턱 낮추기

‘잃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려운 게 건강’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공복에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에 쫓겨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흡연, 음주, 폭식으로 푸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여기에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건강과 멀어질 때 우리 삶에 균열이 찾아온다. 이것이 종종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안전 같은 문제라면 무겁게 다가올 텐데, 건강이라고 하니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참여와혁신>에서도 건강보다는 흔히 ‘죽지 않을 권리’로 표현되는 안전이 더 익숙한 주제다. 하지만 안전만큼이나 건강도 중요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우리 일상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공간으로 약국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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