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민주주의 강화로 철도통합 투쟁 나선다"
"노조 민주주의 강화로 철도통합 투쟁 나선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5.04 00:00
  • 수정 2021.05.04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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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조합원 참여 위해 변화 시도하는 철도노조
[인터뷰] 박인호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 1년여를 앞두고 제29대 전국철도노동조합 집행부가 출범했다. 노동조합에게 정권 교체기는 투쟁에 몰입할 시기다. 차기 대선 후보와 정당에게 주요 의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정책협약을 기대할 수 있다. 철도노조는 ‘KTX-SRT 통합’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SRT 전라선 투입으로 철도 민영화 계획은 강고해지고 있다. 3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29대 집행부의 사업 기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큰 싸움을 하려면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고 요구를 대변해야 한다. 2021년엔 일상사업을 강화해서 조합원들의 마음을 모으고, 2022년 상반기엔 그 힘을 안고 철도통합 총력투쟁을 벌여서 10년의 경쟁체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

박인호 위원장은 1999년 청량리기관차 부기관사로 입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으로 입사 3년 6개월 만에 해직됐다. 2018년 청량리 기관사로 복직해서 1년 뒤에 청량리고속기관차승무지부 지부장에 당선됐다. 박인호 위원장은 자신이 복직할 때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신입 조합원들이 두 번째 동기처럼 느껴졌다. 동기애를 갖고자 다가가는 과정에서 지금의 청년들이 20여 년 전 투쟁을 함께한 1999년 동기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간 노동조합이 ‘투쟁’이라는 단어를 상징처럼 말해왔듯, 청년 세대는 ‘공정’을 비슷하게 쓰는 것 같다. 우리가 옳다는 걸 그들이 아니라 할 때도 있고, 청년 세대가 옳다는 걸 기성세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다. 2018년 복직 당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젊은 조합원들과 동기애를 가지려 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청년 조합원과 어떻게든 함께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늘어난 청년 조합원,
'크루플랫폼·청년할당제'로 조직 혁신

- 선거와 3월 정기대대에서 조직 혁신을 의미하는 ‘새로운 시도’를 강조했다. 위원장을 비롯해 현 집행부가 생각하는 내부 과제와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의사결정 구조 변화, 그리고 일상적인 사업 강화다.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놓쳤던 걸 다시 잘해보자는 뜻이다. 먼저 ‘아래로부터의 노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다. ‘크루플랫폼(Krwu-platform)’이라는 정책대회를 계획 중이다.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조합원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면, 온라인 투표와 토론을 거쳐서 8월 정책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해 의결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크루플랫폼을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보려고 한다.

- 일상사업은 어떤 게 있나?

말 그대로 조합원이 일상적으로 느낄만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게 ‘조합비 보고 의무화’다. 지금도 조합비 결산명세는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숫자만 나열돼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일상적으로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조합비가 어떻게 모이고 어디에 쓰이는지 친절하게 흐름을 설명하려 한다. 조합원이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매월 조합비 명세를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다.

- 지난해 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해서 선출직 간부 교육을 의무화하고 올해 최초로 시행했다.

새롭게 출발하려면 새로운 의식이 필요하다. 철도노조가 해결할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공통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당선자 의무교육은 처음에 반발이 컸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당선까지 취소시키는 강제성에 거부감이 있었다. 교육을 강제한 이유는 ‘자기 관성’에서 벗어나자는 거다. 간부라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다. 조합원 교육을 말하기 이전에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불만이 있었지만 끝난 뒤 반응이 좋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교육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는 반성이 있었고,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 대의원 청년할당제 적용으로 약 60명의 청년 대의원이 선출됐다. 올해 정기대대에 청년 대의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청년할당제는 한마디로 연대를 위한 몸부림이다. 철도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서 비교적 늦게 세대갈등이 불거졌다. 한국철도공사가 오랜 기간 신규인력을 안 뽑아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사가 정원을 5,000여 명 감축한 걸 이번 정부에서 되돌리며 지난 3년간 신규인력이 대거 채용됐다. 2030 조합원이 철도노조에서 약 30%를 차지한다. 50%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년조합원이 느는데도 갈등을 방치하면 철도노조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6~7년 지나서 기성세대가 나이 들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도 없고, 한다 해도 잘 안 될 거다. 아주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지켜내기 어려워진다. 청년조합원이 노조활동 경험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노동자와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다. 청년조합원을 끌어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 청년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낼 때 기존과 다른 가치관, 운동 방식, 방향성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은 없을까?

다른 생각을 가지고서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좋은 일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제, 입장, 의견이 최근 들어서 툭툭 튀어나온다. 앞서 말한 조합비 보고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기성세대는 ‘어련히 잘하겠지’라며 신경 쓰지 않았지만, 청년 조합원은 다르더라. 조합비 공개에 굉장히 민감하다. 다소 낯선 문제 제기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노조가 그런 문제의식을 어떻게 받아안을지가 관건이다.

크루플랫폼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 변화, 대의원 청년할당제도 같은 맥락이다. 청년 세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변화다. 할당제를 하지 않으면 각 지부 선발 대의원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으로 채워진다. 특정 세대의 이해만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 조합원이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조합원을 위한 새로운 의제는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조직문화다. 일터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작년에 노사전문가들이 함께 철도 사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여성노동자의 작업도구, 숙소, 화장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철도산업에 여성노동자가 많이 늘어났음에도 여성 친화적 환경은 찾을 수 없다. 단순한 작업환경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 전반에 문제가 있는 거다. 여성을 배제하는 문화, 상명하복 문화, 지위와 서열을 강요하는 일터 문화를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

- 공기업노조 대부분이 자회사, 비정규직 과제를 안고 있다. 철도노조도 마찬가지다. 자회사 조합원들이 투쟁했을 때 연대와 공감도 있지만, 거부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공기업노조가 다들 안고 있는 문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인데, 드러나는 양상은 세대갈등이다. 청년 세대는 링 위의 룰에 굉장히 엄격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불공정은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는 링 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링 위의 경쟁도 공정해야겠지만,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의 경쟁, 시험을 공정의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정 담론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에선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나 민주노총에서 많은 전문가와 풍부하게 논의하고 대안 담론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투쟁이나 연대 사업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최근 노동조합 전반에서 나타난다.

굉장히 안타깝다. 구의역 김군 사망 후 이어진 투쟁으로 PSD보수 업무가 정규직 업무가 됐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철도노조와 떨어진 문제로 볼 수 없다. 노동조합 이익을 위해 연대투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합원이기 전에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실현할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평소에 높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약자들이 가장 먼저 공격받는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그리고 노동자다. 사법농단 사태로 확인하기도 했다. 정권, 사법부가 판결을 좌우하면서 노동과 관련한 소송에 걸려 있던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물론 연대를 하려면 평소 조합원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허울뿐인 경쟁체제, 철도산업에 안 맞아
SRT 전라선 투입 막고 철도통합 총력 투쟁할 것

- 이번 집행부에서도 KTX-SRT 통합이란 숙원사업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철도 경쟁체제’라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철도정책 기조 아래 2016년 SRT가 도입됐다. 경쟁을 통해서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건데, 철도산업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얘기다. 초기투자 비용이 너무 방대하고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서 철도를 민영으로 운영하긴 어렵다.

백번 양보해서 국토교통부의 경쟁체제 논리를 수용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KTX와 SRT 간 경쟁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SRT가 운영하는 차량의 절반은 KTX에서 대여해 줬다. SRT 차량의 정비도, 발권도, 승객 안내도 철도공사가 하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도 철도공사 노동자가 수습한다. 경쟁하는 회사 간에 차를 빌려주고, 그 차를 정비해주고, 표를 팔아주고, 승객 안내해주고, 정비를 맡긴다. 허울뿐인 경쟁이다.

3월에 발표한 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연구용역을 보면, SRT 분리 운영으로 해마다 56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SRT와 KTX가 통합운영 될 경우, 560억 원의 추가 비용도 사라지고 10%의 운임인하 효과도 발생한다.

- 위원장 말대로 분리 운영에 단점이 많다면, 국토부가 고집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철도 경쟁체제를 고착화한 다음에 전면적인 민영화의 길을 걸으려는 거다. 민영화해서 철도를 민간자본에 매각하는 게 큰 그림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인데,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 영역을 민간에게 넘겨서 수익과 효율을 얻으려는 거다.

철도가 민영화된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코로나19 상황에서 철도는 운행을 큰 폭으로 감축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을 거다. 기업 논리대로라면 적자가 발생하는 노선을 운행할 리 만무하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엄청나게 떨어졌을 거다. 시민의 기본 경제 활동수단인 교통이 멈추면 출퇴근과 지방 이동은 요원해진다. 코로나19는 철도 공공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걸 확인시켰다.

-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철도공사 경영적자가 1조 2,000억 원에 달했다.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 공기업의 경우, 부채비율이 자산의 300% 이상이면 정부가 직접 통제한다. 통제한다는 건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다. 그럼 ‘왜 너희만 지원해야 하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이미 많은 철도선진국이 철도산업에 재정지원을 한 이유를 살펴야 한다. 적자를 이유로 국가 기간산업인 궤도산업이 운행을 멈추면 경제적 타격이 크다. 조합원 이기주의가 아니다. 철도산업이 갖는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 전국철도노동조합
4월 13일 '수서행 KTX 즉각 투입, 고속철도 하나로 통합' 촉구 기자회견 ⓒ 전국철도노동조합

- 현재 철도노조는 SRT를 전라선에 투입하는 걸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SRT 전라선 투입은 국토부의 철도 경쟁체제 고착화를 강화하는 일이다. 막아내야 한다. 또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다. SRT는 열차를 투입할 여력이 없다. 만약 SRT가 전라선에 투입되면 열차를 굉장히 빡빡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 제대로 된 열차 정비가 이뤄질 수 없다. 바로 안전 문제로 연결된다.

전라선에 기존선 구간이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무거운 열차를 안정적으로 운행하려면 선로에 관한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데, SRT는 고속선만 타고 기존선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또 기존선에는 새마을, 무궁화, 화물열차가 같이 다닌다. 관제 지시도 받아야 하고 역과 수시로 운행정보를 교류해야 한다. 상호 유기적인 운행이 필요한데 경험 없는 고속열차를 투입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또 하나, 지역 차별이 발생한다. 전라도뿐 아니라 창원, 마산 등 경전선이 다니는 지역 주민도 수서로 가고 싶어 한다. 경전선 지역 주민을 배제하는 국토부의 계획에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SRT만 수서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고집을 버리면, KTX가 수서에 들어간다면 전라선이나 경전선 지역주민들 모두 환승 없이 수서로 갈 수 있다.

- KTX 수서 운행은 바로 실행될 수 있나?

지금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혹자는 KTX 수서 투입으로 오히려 완전경쟁 체제가 굳어지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KTX가 수서까지 운행하면 왜 철도통합이 필요한지를 경험할 수 있다. 전라선과 경전선에서 환승 없이 수서로 바로 갈 수 있고, SRT보다 KTX가 차량에 여유가 있어서 더 많이 왕복할 수 있다. 궁극적 목표는 통합이지만, 당장 전라도 시민들이 수서로 가길 원해서 SRT를 투입하는 거라면 오히려 KTX가 더 합리적이다.

- 집권 초기 철도 공공성 강화 정책협약을 맺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국토부는 SRT를 확장하고 있다.

KTX-SRT 통합 약속을 각 정당과 대선 캠프로부터 받아내는 투쟁을 할 거다. 이를 통해서 내년 대선 이후에는 KTX-SRT 통합 약속을 이행하라는 총력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험했지만, 정권 초반에 못하면 개혁 의지는 실현되지 않는다. 관료들에게 잡아먹힌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을 스스로 뒤집을 경우 치러야 할 책임을 우려한다. 정권 초반에 어떻게 해서든 결론을 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