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동자’, 여유 있다면 목소리 내고 싶어”
“우리는 ‘노동자’, 여유 있다면 목소리 내고 싶어”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5.04 00:05
  • 수정 2021.05.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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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②] 가사노동자 조신자 씨 동행취재
가사노동자보호법 제정돼도 고용형태 따라 적용엔 차이

근로기준법 제11조 리포트②

어느 빈집. 조신자 씨(60)가 익숙한 듯 고무장갑을 꺼내 설거지를 시작했다. 쌓여있는 그릇을 닦고 행주를 빤다. 오늘 할 일이 많다. 쓰레기도 분리해야 하고, 아이들 방도 청소해야 한다.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다. 조신자 씨는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다. 가사노동자는 처음부터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된 채 있었다. 가사서비스는 이용자의 사생활 영역이기 때문에 노동법으로 규율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조신자 씨의 ‘바깥일’을 함께해봤다.

*가사노동자 조신자 씨 동행취재는 가사서비스 이용자의 동의하에 진행됐다.

가사노동자 조신자 씨가 테이프를 뜯고 있다.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나 두유에 붙여진 빨대 등 비닐과 플라스틱은 모두 분리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부엌 : 풍문으로 들었던 가사일

조신자 씨는 이 아파트에 2주에 한 번씩 온다. 방 세 개짜리 가정집이다. 보호자 둘과 아들 둘이 산다. 정해진 시간은 4시간이다. 설거지, 빨래, 쓰레기 버리기, 방·거실 쓸고 닦기, 화장실 청소 등을 한다. 4시간 안에 모든 일을 하려면 바짝 집중해야 한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부엌이다. 쌓인 설거지부터 한다. 요청하는 일은 집마다 다르다. 반찬과 밥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다. 찌개나 국 한 그릇에 밥, 밑반찬만 세 가지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식사 준비까지 포함하면 수당이 더 붙는다.

“4시간을 목표로 하려고 하는데 일이 의외로 많아. 쓰레기도 내가 다 정리해서 버려야 하고. 4시간이 넘을 때도 있어. 어느 날은 30분만 지나도 ‘아이고 힘들어.’ 젊은 사람들은 와서 안 할 것 같아. 그래도 내 집 아니어도 뿌듯한 거 있잖아. 다 해놓고 나면. 깨끗하게 치워놓으면 다들 그렇지 않나?”

서울 마포가 고향인 조신자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냐’던 친척의 조언을 따라 ‘시다’로 일을 시작했다. 대우그룹 하청공장에서 수출용 셔츠를 만들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작은 공장에서 미싱을 돌렸다.

 

고무장갑은 가사노동자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손이 갈라지면 신경이 쓰인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가사노동자가 된 지는 10년 정도다. 그간 약 20가구가 조신자 씨의 손을 거쳤다. 지금 관리하는 집은 총 다섯 곳이다. 보통 직업소개소는 한 달에 5만 원 정도 수수료를 떼 간다. 조신자 씨가 소속된 협동조합은 건당 5,000원이다. 조신자 씨는 조카를 돌봐주다 주변 사람들 소문을 듣고 가사관리 교육을 받게 됐다. 그때만 해도 동생네 집 한편에 살면서 조카를 돌봤다.

협동조합에서의 교육은 당시 3만 원인가, 꽤 괜찮은 가격이었다. 추운 겨울 성수동으로 수업을 들으러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선하다. 가사관리 교육은 베이비시터·산후도우미 교육과 같이 받을 수 있었다. 다림질하고 옷 개는 법도 배우고, 화장실 청소는 한 번 갈 때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가사노동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조신자 씨는 낯설기만 했던 가사관리 첫날을 가끔 떠올린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남의 집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에 가 보니 이용자는 암환자였다. 아파서 집안일을 못 하니 가사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집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만 빼고는 참 괜찮은 기억이었다. 아직도 목동 근처에 가면 그 집이 떠오른다. 다행히 이용자는 완치됐고, 가끔 연락도 한다.

 

아들 방·안방 : 매번 해고당하는 느낌

오늘은 아들들 방에 빨래가 별로 없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조신자 씨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린다. 요새 텔레비전에 트로트가 많이 나와 볼 맛이 난다. 노래를 잘하는 조신자 씨는 “내가 만약에 젊었으면 거기 출연했다”며 웃었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코로나19로 가사노동자들의 일은 많이 줄었다. 아무래도 집에 직접 방문하는 일이니 사람들이 꺼려했다. 이용자가 가사서비스를 그만둬도 가사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월급도 들쭉날쭉하다. 누가 가사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할지 모르니 수입이 예상한 것과 다른 경우가 생긴다.

 

베란다를 정리하던 조신자 씨는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그만둔다고 할 때마다 해고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계속 와주세요’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 와주세요’ 이런 거 있어. 갑자기 그냥.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할 때도 있지. 그래서 일이 많이 끊겼어. 우리는 한 달에 얼마 들어올 걸 예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만 오라고 하니까. 메울 방법이 없잖아. 손님 마음이긴 한데 마음은 답답하지. 갑자기 해고를 당한 거잖아. 내가 사실 이런 거 말하려고 선뜻 하겠다고 했어. ‘아유 힘드시겠어요’ 이런 말, 위로는 될지언정 현장에 안 오면 몰라. 그런데 나는 빨리 털어버리는 성격이라 괜찮아.”

*조신자 씨는 가사서비스 이용자를 집주인, 손님, 이용자 등으로 불렀다.

이용자의 ‘메가톤급 갑질’도 조신자 씨를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가사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사람들은 돈을 들이는 만큼 집에 신경을 안 쓰는 것만 같다. 한여름, 쓰레기 더미에서 벌레가 나오거나 썩은 음식물을 치울 때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신자 씨는 “우리를 말로만 가사관리사로 번듯하게 말하는 것 같아. 대우해주기 싫어도 괜찮지만 기분은 안 좋지”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일하는 거 좋아. 이 나이에도 아직 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 몇 년은 더 해야지. 급한 날에는 김밥 한 줄만 먹는데, 가끔 여유가 있으면 돈까스 사 먹고. ‘내가 버는데 뭐’ 이러면서 뿌듯한 거 있잖아요.” “일하는 게 왜 좋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돈을 번다”는 게 좋다고 했다. 자식에게 도움 안 받고 사는 건 조신자 씨에게 자신감이다.

 

화장실 : 4대 보험이라도 받았으면

화장실 청소는 두려운 일이다. “혹시나 변기라도 깨뜨린다면” 조신자 씨가 물어내야 한다. 일하다 다쳤을 때 조신자 씨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부담이다. 그는 “화장실 (청소)하다가 탁 넘어질 수도 있고, 생각지 않은 사고가 날 수 있잖아. 그럴 때 나는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런 권리를 못 누리는 게 좀 그래”라고 말했다.

4대 보험만이라도 좀 받았으면 좋겠다. 조신자 씨의 이런 소망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4년 전에 그의 남편이 일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도 비정규 노동자였다. 돈을 벌 사람은 조신자 씨밖에 없었다. 실업급여나 산재는 생각도 안 해본 이야기다.

화장실을 청소하던 조신자 씨는 거실에서 쓰레기를 정리했다. 일일이 테이프를 뜯고 분리수거를 한다.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조신자 씨는 “뉴스에서 다른 거는 지나가는데 우리들 이야기 나오면 눈을 부릅뜨고 봐”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동료 노동자들 상황을 지나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뉴스에서 노동자들이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조신자 씨는 “여기는 더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노동자지. 근데 우리를 프리랜서라고 해. 속상하지. 그러면서 재난지원금 같은 거나 주고.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생활이 윤택해지지는 않아도 4대 보험만 되면, 크게 우리가 욕심내는 거 뭐 있어요. 조금만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이거지. 난 진짜 간절해요.”

“아니, 으샤으샤 하는 거. 시위 있잖아. 내가 여유가 있다면 목소리 좀 내고 싶다 이거야. 그거 뒷줄에 서더라도 하고 싶다니까. 정책 같은 건 모르겠는데 불만을 토로하는 곳이 있을 거 아니야. 노동자의 권리를 달라! 이 말 하지 뭐. 그거밖에 더 있어?”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까지 마치면 4시간의 가사노동은 마무리된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법제화 이후 조신자 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가사노동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노동자보호법)’ 상황이 자주 공유된다.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이 법은 매번 된다고 했다가, 안 됐다고 했다가를 반복한다. 조신자 씨는 하소연해도 이뤄진 적 없는 상황이 싫다.

통계청은 가사노동 종사자가 15만 명이 넘는다고 2019년 집계한 바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가사노동자가 우리나라에 4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거엔 이용자의 집에 거주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집에 방문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근로기준법 제11조는 5인 미만 사업장과 함께 가사사용인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했다. 가사사용인은 가사노동자를 뜻한다. 그런데 그간 우리 사회는 가사노동을 통칭해서 불러왔다. 가사노동자라고 하면 모두 같을 것 같지만 고용형태에 따른 구분이 가능하다.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속한 경우, 직업소개소를 통해 이용자와 연결된 경우,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경우 등이 있다.

고용형태로 가사노동자를 유형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 사람이 하나의 고용형태만 채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밀한 구분은 어렵다. 조신자 씨도 그렇다. 협동조합을 통해 분배받은 집과 직업소개소에서 알선받은 집, 아는 사람 집이 혼재돼 있다.

법으로 규율하기 비교적 용이한 가사노동이라도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은 최근 힘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필수노동자TF는 가사노동자보호법을 10대 입법·정책과제에 넣었고, 21대 국회에는 정부를 포함한 3명의 국회의원이 가사노동자보호법을 발의했다.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기업’에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 등을 지키게 한다는 내용이 정부·의원 발의안의 공통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가사노동자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조신자 씨는 기존 5개의 집 중 몇 곳에서만 법의 수혜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협동조합이 조신자 씨를 직접 고용한다면 그곳에서는 특별법의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직업소개소를 통해 알선받은 집이나, 예전부터 알아 왔던 집에서의 일은 여전히 법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 제정을 미뤄오던 국회는 4월 29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사노동자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가사노동자들의 숙원이었다. 가사노동자보호법은 근로기준법에서 방치돼 있었던 가사노동자를 법 테두리 안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는 큰 진전이다. 하지만 이 특별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가사고용형태가 많다는 점은 여전히 풀어가야 할 지점이다. 영세한 기업이 정부 인증을 받아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도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