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대우버스 해고노동자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대우버스 해고노동자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5.07 00:00
  • 수정 2021.05.06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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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자일대우상용차 #대우버스 #일자리 #울산지역경제 #매각

대우버스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자일대우상용차(이하 대우버스)가 지난해 10월 4일 대우버스 울산공장 356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고 반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우버스는 ‘시민의 발’인 버스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1955년 신진공업사로 출발해 지금의 자일대우상용차까지 65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을 거치며 여러 차례 그 주인과 상호가 바뀌었지만, 오직 버스만을 만들어 버스 전문 생산기업으로서의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우리나라 버스 제조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대우버스의 국내공장 폐업 소식에 해고노동자는 물론, 울산지역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언박싱 이 주의 인물은 대우버스 해고노동자입니다. 지금도 “대우버스는 멈추지 말고 달려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이 기사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지회 인터뷰, 대우버스의 미래에 대한 금속노조의 입장과 요구, 대우버스 매각과 공장 정상화를 호소하는 울산시의원 등의 목소리를 취합해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금속노조는 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우버스 정리해고 어림없다 금속노조 투쟁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금속노조는 지난해 9월 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우버스 정리해고 어림없다 금속노조 투쟁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 해고 이후 반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해고 일자는 반년 전인 10월 4일이지만, 대우버스 울산공장 폐쇄로 노사 갈등이 발생한 건 지난해 3월부터였죠?

네, 대우버스의 대주주인 영안그룹 경영진이 지난해 3월 노조에 울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통보한 이후 노조와 갈등을 겪었고, 최종적으로 노조에 정리해고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해 8월 25일입니다. 당시 대우버스 울산공장은 휴업 중이었는데, 회사는 9월 1일 공장 가동을 앞두고 전 직원에게 해고 개별 통보를 예고했습니다. 회사가 선정한 정리해고 대상자에게 개별적으로 해고 통보를 하겠다는 내용이었죠. 이후 회사는 8월 31일 근로기준법 절차에 따라 울산노동청에 경영상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했습니다.

노조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전달했습니다. 회사가 말하는 경영상 이유에 따른 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방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요. 하지만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0월 4일 울산공장 356명의 노동자가 해고됐습니다. 10월 4일 이후에는 해고자복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천막농성 등 이후 투쟁을 이어갔고,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도 했습니다.

- 노조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는 어땠습니까?

지난해 12월 노조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울산지노위는 부당해고가 맞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어 올해 4월 중노위도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지노위 판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었죠. 노조는 지노위·중노위 부당해고 판정에 따라 해고자들을 즉각 일터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사측에 요구했습니다.

- 중노위 판정 이후 사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나요?

아직 판정서가 안 나왔습니다. 판정서가 나오면 아마 회사는 행정소송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 지금 해고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계속 투쟁하고 지내고 있지요. 생계는 현재 고용보험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 정리해고 이후에도 공장 정상화를 위해 사측과 계속 교섭을 이어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네, 여러 차례 진행했는데 전부 다 불발됐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해고기간 중 임금 전액 반납, 새로운 급여체계 운영, 공장 재가동 위한 필요 인원과 숫자 선발 회사가 결정, 버스 부품의 탈 국산화, 적자 차종 베트남 OEM 생산 등이 담긴 회사 제시안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국내 생산 차종의 해외 OEM 생산 판매는 울산공장의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고용불안과도 직결됩니다. 버스 부품의 탈 국산화 역시 품질 및 공급 차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나아가 국내 부품사의 폐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었습니다. 노조도 임금삭감, 후생 복지비 지급 중단 등 양보안을 냈지만 사측과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죠. 추가 교섭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 노조에서는 국내 일자리와 버스제조 산업을 지켜달라며 회사에 공개 매각을 요구했습니다.

앞서 2개 회사와 매각을 진행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조 입장에서는 매각 대금, 매각 절차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회사가 진정으로 매각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회사에서는 5월 말까지를 기한으로 두고 또다시 폐업과 청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회사가 버스사업을 완전히 접겠다는 게 아니라 국내 버스사업만 접겠다고 하는 겁니다. 매각이 안 되면 국내 버스사업을 청산하고 해외에서 생산하겠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뿐만 아니라 협력사 노동자들까지 일자리를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 대우버스의 청산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자생적 자동차 제조업의 역사는 대우버스와 함께합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군수용 트럭과 미군 불하 차량을 개조하는 재생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업의 시작입니다. 그 중심에 대우버스의 모태가 되는 신진공업이 있었습니다. 대우버스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버스 제조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대우버스의 65년의 역사도 함께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어 대우버스는 기술로 사회에 기여해 왔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시킨 최초의 저상버스는 대우버스의 BS120CN입니다. 대우버스는 2000년 현대자동차와 함께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저공해버스를 최초로 상업화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2006년 국내에서 플러그인 전기버스를 최초로 개발한 것도, 2009년 최초로 온라인 충전식 전기버스를 개발한 것도, 2015년 배터리 교환형 전기버스를 개발한 것도 모두 대우버스입니다.

또, 청산에 따른 사회적 손실의 규모가 막대합니다. 당장 대우버스에서만 해도 260억 원 상당의 재고차량, 60억 원 상당의 설비 등이 고철 덩어리로 변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대우버스가 청산하게 되면 대우버스에 납품하는 많은 부품사가 문을 닫게 되고 이들의 금형이나 생산설비까지 고철이 됩니다. 대우버스는 부품의 국산화율이 다른 유사한 규모의 버스회사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대우버스와 거래하는 부품사는 모두 250개에 이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우버스 청산의 파급효과는 국내 버스제조 산업 전체에 미쳐 국내 버스 생산능력이 크게 훼손될 것입니다.

생산기반의 해외 유출도 우려됩니다. 영안모자 자본은 코로나 시대 생산시설의 국내 유턴이 추진되고 있는 와중에 국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일상용차(주)가 보유하고 있는 금형과 설비뿐만 아니라 부품사가 가진 금형과 설비까지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경제의 탄력적 회생도 가로막고 국내 버스산업 생태계도 망가뜨릴 것입니다. 법원도 이러한 점을 인정해 부품의 국외 반출에 제동을 건 바 있습니다.

버스 제조산업의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제 곧 백신 접종으로 하반기부터 관광업이 조금씩 활성화될 것이고, 곧 정부의 대폐차 기간 연장 조치로 인해 줄어든 수요도 늘어날 것입니다. 경제 회생 국면에서 생길 대기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설비가 보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우버스가 청산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생산설비를 확충해야 합니다. 이는 대규모 경제위기로부터의 탄력적 회생을 가로막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자동차산업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차가 전환 국면의 중심에 있지만 몇 년 후에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모두에서 버스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버스산업의 혁신역량을 미리 발전시켜야 합니다.

 

7월 8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지회·대우버스사무지회 조합원들은 ‘대우버스 울산공장 폐쇄 철회, 베트남 이전 반대, 생존권 사수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금속노조
지난해 7월 8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지회·대우버스사무지회 조합원들은 ‘대우버스 울산공장 폐쇄 철회, 베트남 이전 반대, 생존권 사수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금속노조

- 울산지역사회에서도 대우버스의 공장 정상화 촉구에 함께 목소리 내고 있는데요.

울산 지역경제와 지역 일자리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죠. 지난달 울산광역시의회 의원연구단체 ‘노동정책연구회’에서는 대우버스의 공장 이전과 사업중단으로 울산시에 고용재난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연구회는 울산시가 △연간 1조 1,000억 원 생산유발 효과 △3,400억 원 부가가치 창출 △9,500명 고용 창출 효과 △울산시로 1만 4,000명 인구 유입 △연간 500억 원의 세수증대를 기대하고 대우버스의 울산 이전을 지원했으나, 대우버스 경영진의 결정으로 울산시의 지원과 투자가 수포가 될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회사는 지원을 받았던 울산시를 떠나 생산시설과 부품산업을 해외로 옮기려 합니다. 이런 ‘먹튀’를 막고 울산시가 의도했던 효과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대규모 실업도 큰 문제죠. 당장 작년 대우버스에서 계약직 노동자와 희망퇴직 노동자, 정리해고된 노동자 등 총 575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50개 부품사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1,000명이 넘습니다. 영안그룹이 대우버스를 폐업할 경우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은 더욱 늘어납니다.

- 6일에는 ‘대우버스 정상화 촉구 요구 서한’을 청와대 측에 전달하셨는데요, 서한에는 어떤 요구가 들어있습니까?

청산을 막기 위한 매각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대우버스의 청산을 막고 국내버스 산업을 지키는 방법은 바로 매각입니다. 생산시설이 고철이 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 전망을 가진 자본에 매각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국내 상용화를 전제로 한 대규모 R&D 지원 △미래산업 생태계 구축을 전제로 한 세제 지원과 특례보증 등 금융 지원 △안정화 기간 동안 노동시간 단축 등 조정에 대한 보호‧보상 체계 △정부의 조달행정이나 지자체의 구매 쿼터제, 적정 국산화율을 상회하는 생산품에 대한 구매보조금 등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자체인 울산시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키지 못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로만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와 울산시 등이 친환경 전기자동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에 따른 자동차부품산업 고용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에 대우버스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가운데 노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노조는 오랫동안 선제적인 미래차로의 전환을 주문해 왔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마찰적 직무 전환 등에 책임감 있게 협력할 것을 밝혀 온 바 있습니다. 이것은 보다 본격적인 전환의 시기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자구책을 제시하는 등 상생을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입니다. 노조는 앞서 공장 정상화를 위한 특별단체교섭에서 130억 원을 상회하는 구체적 자구책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정상화 기간 동안 고용유지지원금 이외에는 회사가 아무런 인건비도 부담하지 않는 수준의 자구책을 회사에 제안했고, 부당해고 이후 누적되고 있었던 체불임금도 국가에 반납할 실업급여분 외에는 모두 포기할 것까지 제안했습니다. 이는 회사가 절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건비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조는 미래지향적인 자본이 계속해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전제로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어갈 책임을 공동으로 질 예정입니다. 이런 결의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조합원의 출자를 포함합니다. 작금의 사태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모범적인 전형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대우버스는 멈추지 말고 달려야 합니다.

 

자일대우상용차 울산공장. ⓒ 자일대우상용차
자일대우상용차 울산공장 ⓒ 자일대우상용차

 

65년의 역사,
신진공업사에서 자일대우상용차까지

신진공업사(1955~1965) 1955년 2월 대우버스의 뿌리인 신진공업사가 발족하고 1957년 신진공업㈜가 창립했다. 신진공업은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 제작 및 정비 사업을 시작한 김창원, 김재원 형제가 만들었는데, 당시 신진공업은 자동차 정비와 함께 버스 재생조립을 주로 했다.

신진공업이 본격적으로 버스 제조에 뛰어든 것은 1958년 유엔 한국부흥기관(UNKRA) 계획에 따라 20만 달러를 배정받으면서부터다. 신진공업은 이 돈으로 현대식 공장 건설에 들어가, 1960년 5월 신진공업 부산공장을 완공했다.

1962년에는 25인승 마이크로버스 ‘신진스타’ 생산을 개시했다. 신진스타는 그해 덕수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상공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신진스타는 이전 버스들과 달리 규격화가 되어있고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신진스타는 1966년까지 2,000여 대나 생산됐다. 이는 신진공업이 버스 제조 능력을 인정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어서 1963년 6월에는 대형버스 ‘뉴스타’ 양산을 개시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소형승용차 ‘신성호’ 제작에 성공한다.

신진자동차공업㈜(1965~1972) 1965년 11월에는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1966년 1월 신진자동차공업㈜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때부터 종합자동차 제조공장으로 허가를 받고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다. 1966년 1월에는 토요타와 기술 및 부품도입 계약을 맺었으며, 그해 12월 신형 대형버스 ‘B-FB-50’을 출시했다. 1968년 부산공장에서는 9m급 버스 모델 ‘DB102L’을 생산해 약 4년간 4,049대를 생산했다.

지엠코리아(1972~1976) 1972년 6월에는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해 지엠코리아를 설립했다. 지엠코리아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1973년 국내 자동차산업 대표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새한자동차㈜(1976~1983) 1976년 11월 지엠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상호를 또 변경하게 된다. 1976년은 여러 모로 의미 있는 해였다. 대우버스에 전성기를 가져다준 ‘BF101’ 전신 모델인 ‘BD101’ 리어엔진 버스(Rear-engine Bus, 엔진이 차 뒤쪽에 있는 버스)를 이집트로 첫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 BD101은 도시형 버스로 국내에 시판됐다.

1977년에는 대우그룹에 편입됐다. 편입 이후에도 꾸준히 생산을 이어갔으며 그해 BF101 생산을 개시했다. BF101은 튼튼한 내구성과 우수한 연비를 자랑해 국내 대우버스 전성기를 열어준 버스기도 하다. 1991년 단종 때까지 큰 사랑을 받아 당시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BF101이 없는 지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우자동차㈜(1983~2002) 1983년 1월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바꾼다. 대우버스가 대우자동차 이름을 달았던 1980년대 후반은 국내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자동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던 시기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내수 시장 규모가 협소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늘 따라다녔었는데, 1987년 자동차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내수 판매가 자동차산업 발전을 빠르게 견인했다. 1988년에는 자동차 국내 연간생산 100만 대를 돌파하고, 자동차 보유 대수 200만 대를 돌파했다. 전체 자동차 내수 판매는 1986년 28만8,000대에서 1993년 143만6,000대로 증가해 7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25.8%를 기록했다.

버스 판매도 빠르게 증가했다. 버스 내수 판매는 1987년 5만4,100대, 1989년 7만9,066대, 1991년 10만2,919대, 1993년 14만291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대우자동차 시절 대우버스는 국내 버스시장을 석권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짧은 전성기를 뒤로해야 했다. 당시 재계 3위였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자동차는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됐다. 당시 정부는 대우자동차의 앞날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재무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에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추진하더라도 독자 회생이 어려울 것으로 보았고, 공기업화도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대로 청산을 하자니 청산가치가 너무 낮았다. 남은 방법은 해외매각뿐이었다.

정부는 곧바로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을 추진했고 GM-피아트 컨소시엄,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현대자동차 컨소시엄 등이 입찰의향서를 제출했다. 이중 포드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포드는 선정 세 달 만에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정확한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대우자동차의 경영 부실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채권단은 대우자동차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대우버스㈜(2002~2013) 2년여 동안 이어진 대우자동차 사태는 2001년 9월 21일 GM이 대우자동차, 산업은행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일단락된다. 2002년 4월 GM이 채권단과 본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GM대우가 공식 출범했다. GM대우 출범과 함께 기존의 대우자동차는 GM대우, 대우인천자동차, 대우버스, 대우상용차 등의 사업체로 분할된다. 이중 버스에 특화된 사업체가 대우버스㈜다. 2000년대 중반 국내 버스시장에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경급만 생산), 쌍용자동차(소형급만 생산), 대우버스 5사 체제가 확립됐다.

이후 대우버스는 2003년 3월 31일 영안모자㈜에 매각됐다. 대우버스는 영안모자로 편입된 후 중국 계림, 코스타리카, 파키스탄, 대만 등 해외법인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2004년에는 울산시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해 2006년 울산에 제2공장을 추가 건립했다. 이후 2010년 4월에는 부산공장의 생산 설비와 인력을 울산공장으로 완전히 통합했다. 그해 10월에는 150명의 연구 인력이 상주하는 기술연구소와 주행시험장을 울산에 추가 완공하기도 했다.

자일대우상용차(2013~현재) 대우버스 이름은 2013년 자일대우버스로 변경하기 전까지 사용했다. 이후 자일대우버스는 2018년 자일대우상용차로 또다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