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
“병원이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5.18 17:05
  • 수정 2021.05.18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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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8개월간의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 잔혹사’ 검찰 기소
서울서부지법 첫 공판에서 원청 부당노동행위 공모 인정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18일 오전 9시 30분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마침내 밝혀진 청소노동자 조직파괴 세브란스병원 규탄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그러지 마시고. (중략) 만약 하고 싶다면 자체노조를 하라는 거야. 자체노조 법으로 인정해주고. 다 있어요. 그리고 정 내가 민주노총 가겠다 하면 그건 세브란스에서 안 된다 하니까 절차를 밟으시고. (중략) 세브란스가 내가 노골적으로 이야기할게. 이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총은 안 된다는 거야 절대. 하지만 자체노조는 하라는 거야.”

2016년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용역업체 현장소장이 한 말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분회장 조종수, 이하 세브란스병원분회)는 원청인 세브란스병원과 청소용역업체인 ㈜테가비엠이 함께 노조파괴행위를 일삼아왔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노조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한국노총 공공사회산업노조 연세세브란스관리지부·상급단체 없는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이 있다.

세브란스병원분회가 주장하는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는 ▲세브란스병원의 당시 사무국장이 사무팀장과 파트장에게 노조가입을 저지하라고 지시 ▲노동조합 발대식 저지 ▲휴게실 출입문을 막고 유인물 탈취 ▲채용면접에서 특정노조 가입 종용 등이다. 원하청이 노조파괴를 위해 긴밀하게 움직여온 기록도 발견됐다.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은 세브란스병원분회의 유인물을 감시하는 등 업무일지를 통해 소통하며 협력했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업무일지와 녹취록 등을 가지고 2016년 10월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당시 고용노동부 서부지청은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노동조합의 항고도 기각됐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2017년 9월 부당노동행위를 다시 고소했고, 세브란스병원 내에 있는 ㈜태가비엠 사무실에 대해서는 2018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이 때 부당노동행위 정황이 기록된 문서가 사무실에서 발견돼 2019년 11월 서울서부지검에 사건이 송치됐다.

이렇게 세브란스병원분회가 겪은 부당노동행위 경험은 4년 8개월여 만에 힘을 얻게 됐다. 검찰은 올해 3월 12일 당시 세브란스병원의 사무국장, 사무팀장, 파트장과 용역업체인 ㈜태가비엠의 부사장, 이사, 현장소장, 반장 등 9명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은 부당노동행위를 공모한 것과 ㈜태가비엠이 세브란스병원의 지시에 따라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한 것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세브란스병원분회에 따르면, 4월 23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진행된 첫 공판에서 세브란스병원 측 변호사는 부당노동행위 공모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용역업체인 ㈜태가비엠은 부당노동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이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18일 오전 9시 30분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마침내 밝혀진 청소노동자 조직파괴 세브란스병원 규탄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가지고 원청인 세브란스병원이 책임지고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이 기자회견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세브란스병원의 직원을 징계하고, 제대로 된 용역업체를 선정해 교섭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병원이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는 한마디를 시작으로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지난 5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병원과 용역업체는 온갖 생트집을 잡으며 징계를 했다. 민주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재계약이 되지 않는다고 협박했고, 노골적으로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며 “병을 고친다는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오히려 병드는 현실을 더 이상은 그대로 둘 수 없다. 세브란스병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온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종수 세브란스병원분회장은 “노동범죄들과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민주노조 조합원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비조합원이 되자마자 생트집과 감시는 중단됐다. 병원과 용역업체가 청소노동자들을 쥐 잡듯이 잡아댔던 이유는 민주노조를 말살하기 위해서였다”며 “병원과 용역업체가 공모하여 벌인 범죄들로 현재 세브란스병원의 전 사무국장과 파트장까지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병원과 용역업체가 해왔던 악행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오는 28일에는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2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세브란스병원분회는 ▲㈜태가비엠 관리자의 유인물 탈취 ▲휴게실 출입 저지 행위 ▲신규채용 절차에서 특정노조 가입을 조건으로 하는 방법으로 개입한 점에 대해 검찰이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을 기소하지 않았다며 검찰항고한 상태다.

한편, 세브란스병원에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홍보실과 지금 통화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