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키워드 : 잊힌 청원
[언박싱] 이 주의 키워드 : 잊힌 청원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6.13 18:05
  • 수정 2021.06.1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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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전태일 #유령 #족쇄

국민청원에 동의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2019년 만들어진 국민동의청원제도는 청원에 대해 30일 동안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하면 정부의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입법안을 청원하는 경우 1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에 회부돼 논의됩니다.

지난해에도 많은 청원이 홈페이지에 오르내렸습니다. 그 중 10만 명이 동의한 입법청원도 꽤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태일3법 ▲교육공무직원과 방과후학교·돌봄교실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교육관련법 개정에 관한 청원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입니다.

이 청원들은 여전히 소관 상임위에서 계류 중입니다. 전태일3법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안만 ‘기업’자가 빠진 채로 통과됐습니다. 청원법에는 접수 후 90일 안에 청원인에게 처리결과를 통보해야 한다고 정했지만, 청원인들은 처리결과를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10만 명이 동의한 청원들을 국회가 사실상 내버려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8일 민주노총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원내대표와 각각 면담을 진행하고 청원법들을 책임 있게 처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다뤄야 할 청원도, 앞으로 다뤄지게 될 청원도 많을 텐데요.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도 진전되는 것이 없다면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각 청원이 국회에서 논의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24일 열린 ‘전태일3법 입법쟁취 사업계획 발표 전국 동시다발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전태일3법 입법쟁취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9월 24일 열린 ‘전태일3법 입법쟁취 사업계획 발표 전국 동시다발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전태일3법 입법쟁취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① 전태일2법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청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전태일3법에서 2법으로 불리게 됨. 근로기준법 제11조와 노조법 제2조 개정 필요.

*10만 명 동의 후 위원회 회부일 : 2020년 9월 21일

*담당 국회 상임위원회 : 환경노동위원회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노조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법을 적용받도록 해야 하는데 국가가 너무나 미진해요. 그래서 했던 청원운동이었죠. 처리가 늘어진다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내든 조치사항이든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일절 없어요.

10만 국민이 동의해 발의된 개정안을 무시하는 건 대단히 문제라고 느껴요. 제도의 취지도 무색할 뿐더러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죠. 국민동의청원제도 자체도 부실해요. 지금 10만 명이 동의한 청원이 한두 건이 아닐 건데요. 입법청원을 하면 국회에서 심사하고, 또 검토해서 상임위에 올라가는데 그걸 할 사람이 거의 배정이 안 돼 있어요. 입법청원을 다루는 기반이 협소하다고 봐요.

 

1일 국회 앞 학교비정규직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연희 오카리나 방과후강사가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연주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5월 1일 학교비정규직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연희 오카리나 방과후강사가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연주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② 교육공무직원과 방과후학교·돌봄교실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교육관련법 개정에 관한 청원

*이름 없이 유령처럼 존재해 왔던 학교비정규직에게 ‘교육공무직’이라는 법적 이름과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청원.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필요.

*10만 명 동의 후 위원회 회부일 : 2020년 11월 16일

*담당 국회 상임위원회 : 교육위원회

박정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책실장: 이 청원은 심사가 연장돼서 계류 중이에요. 저희가 보기에는 크게 쟁점 되는 사안은 없는데, 쟁점도 논의를 해야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논의가 시작도 안 됐어요.

입법청원으로 통과된 법이 거의 없잖아요. 지금 청원법상으로는 소위에 올라가도 심사를 제대로 못 해요. 당이나 의원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법청원제도의 취지는 좋은데 취지에 걸맞게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법안을 밀고 나갈 사람이 없는 게 문제죠. 그러면 국회가 입법청원이 된 법안은 강제성을 띠도록 해야 하는 거죠. 국회 청원법이 만들어질 때 지금보다는 논의에 대한 강제조항 같은 게 있었는데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9월 24일 오후 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관계7법’ 개정 선포 기자회견'에서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석현정 공노총 위원장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지난해 9월 24일 오후 1시 국회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관계7법’ 개정 선포 기자회견’에서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석현정 공노총 위원장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③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

*선거와 관련된 SNS 게시물에 ‘좋아요’만 눌러도 징계 받는 공무원과 교원에게 정치적 자유를 주자는 취지의 관련법 개정 청원.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 7개 관계법 개정 필요.

*10만 명 동의 후 위원회 회부일 : 2020년 11월 5일

*담당 국회 상임위원회 : 행정안전위원회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10만 입법청원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져서, 저희 공무원들과 교사들이 어렵게 10만 명의 동의를 달성했는데 우리 청원은 방치됐어요.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위원회에 회부된 청원에 대해서는 의무조항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강제로 논의를 해서 못 하면 못 한다, 하면 한다 이런 판단을 하도록요. 발의했던 단체나 청원을 올렸던 사람들에 대한 청문절차도 있어야 하고요.

사실 지금은 여당이 의원 수도 많으니, 의지만 있으면 개정이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청원이 심사도 안 되잖아요. 공무원노조는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 의제를 중심으로 계속 투쟁해 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