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택배 ‘안전배달료 법’··· 노사정 기대와 우려는?
배달·택배 ‘안전배달료 법’··· 노사정 기대와 우려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8.20 08:50
  • 수정 2021.08.24 2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일, 심상정 의원 생활물류법 개정안 발의
사업자 등록제 전환, 알고리즘 노사 협상, 안전배달료 등 배달노동자 보호 내용 담겨
ⓒ 화물연대본부
지난 18일, 국회 앞에서 택배배달 안전운임제 도입 라이더&택배노동자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 화물연대본부

배달·택배 노동자들에게 적정 소득을 보장해 위험 운행을 막기 위한 ‘안전배달료’를 포함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8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배달사업자 등록제 전환 ▲배달플랫폼 알고리즘 공개 및 노사 협상 ▲안전배달료 도입 등이 골자다. 

지난달 27일 시행된 생활물류법은 택배, 배달, 퀵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이 소비자의 손에 직접 전달되는 생활물류서비스를 정식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육성·발전시키기 위한 산업지원법이다. 아울러 명확해진 생활물류사업자의 종사자와 소비자에 대한 책임도 담고 있어 사업법적 특성도 갖고 있다. 

이렇게 법안이 여러 기능을 하는 점은 생활물류법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배경이기도 했다. 경영계는 ‘기업에 과도한 의무만을 부과해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동계는 도리어 ‘종사자 보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각각 반발했다. 

생활물류법은 노사 간 재차 조율을 거친 끝에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법안의 한계를 지적해온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종사자 보호 강화를 위한 보완을 바로 준비했고, 법 시행 한 달이 채 안 돼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개정안을 내놨다.

이번 개정안도 생활물류법 제정 과정처럼 노사 간 의견이 엇갈리고, 노동계 내에서도 입장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개정안에 대한 노사정의 기대와 우려를 들어봤다. 

① 배달사업자 ‘인증제→등록제’

개정안은 배달사업자(이륜차 이용 배송대행사업자)에게 노동자 보호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현행 ‘인증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등록 배달사업자는 라이더의 면허 확인, 안전운행을 위한 교육, 산업재해 보험 가입 등의 사항을 관리하고 준수해야 한다. 택배사업은 이미 등록제로 규율하고 있다. 

배달사업자들은 등록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법안에 운송수단의 다양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로 체결된 노사 자율협약에는 ‘배달대행업체에 대한 등록과 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긴 바 있다.

다만 배달사업자들은 생활물류법이 운송수단을 이륜차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제가 되면 사업 모델에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배달사업자들은 이륜차뿐 아니라 전동킥보드, 승용차, 도보 등의 방법으로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 배달업계 관계자는 “오토바이 외에 전동킥보드, 승용차, 도보 등 운송수단에 맞춰 배차하는 것이 배달 플랫폼 사업의 핵심”이라며 “생활물류법에서 이륜차만 운송수단으로 인정하는데, 등록제로 의무화한다면 기업에게 사업모델을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증제에선 기업이 인증 여부를 선택하거나, 이륜차만 인증을 받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등록제에서도 이륜차만 등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강제하면 소화물 배송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양성화하려는 생활물류법의 근본적인 목적이 깨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소화물 배송사업은 이륜차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국토교통부도 그렇게 유권해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생활물류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성과를 지켜본 뒤 등록제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생활물류법 시행 준비를 하는 단계다. 인증제 성과를 보며 등록제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아직 평가하긴 이르지만 현행 인증 대상을 등록 대상으로 그대로 옮긴 수준이라 앞으로 산업구조를 반영해 좀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플랫폼 배달업계뿐 아니라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우려도 있다. 퀵서비스사업 관계자는 “등록제 전환은 사업자에게 결국 보험 등 비용 부담 문제”라며 “배달대행업체도 직원이 2~3명으로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등록제 전환은 배달대행업체의 부담 강화가 핵심이다. 산재보험은 이미 업체의 의무가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이라며 “그간 배달업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라이더들이 위험부담을 떠안고 일해왔다”고 설명했다. 

ⓒ 화물연대본부
지난 18일 열린 택배배달 안전운임제 도입 라이더&택배노동자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화물연대본부

② 배달플랫폼 배차기준 노사 협상

개정안에는 배달사업자가 노동자에게 배차방식, 시간제한, 평점제도 등 운영기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필요한 경우 기준 조정을 노사가 협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가 “플랫폼사의 알고리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난 18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플랫폼 배달업계는 알고리즘이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알고리즘은 로직 설정 이후 데이터가 쌓이며 배송 효율에 최적화되도록 자기 발전을 하는 것이기에 기업이 의도적으로 기준을 만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알고리즘 정보를 노동자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라이더들이 배차방식, 평점 등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기업에 설명을 요청하고 기준 조정을 위한 협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라이더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이희종 정책실장은 “알고리즘 공개 요구는 현실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알고리즘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인데 공개를 어느 수준으로 할 건지 원칙과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조합도 산업 변화와 사회적 의식 수준 등을 고려해 현실적 주장을 풀어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③ 안전배달료 도입

또한 개정안은 배달노동자뿐만 아니라 택배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안전배달료’를 도입하도록 했다.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송수단 유지 비용, 노무비, 사회보험료 등의 비용과 휴식 및 대기시간, 유사업종 노무비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전배달료를 결정하게 했다.

이 개념은 화물업계에서 시작된 안전운임제에서 왔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과속·과로·과적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 운임을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안전운임 시행 이전(20.1.15.~30.)과 시행 이후(20.8.14.~27.) 화물노동자들을 대상(267명→392명)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 과적, 과속, 과로 경험이 모두 줄어들기도 했다. 

■ 배달

라이더유니온은 안전배달료가 라이더들의 위험 운행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방파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수도권에서는 배달료가 매초 바뀌어 라이더들이 비트코인처럼 치고 빠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예를 들어 플랫폼업체가 기본배달료를 2,500원만 주다가 4,000원 이상 기본배달료를 보장하면 라이더들이 최소한 하루 수입을 예측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계약서상 쿠팡은 기본배달료가 2,500원, 배달의민족은 3,000원인데 일시적으로 배달료를 올려서 노동자를 통제한다. 또한 쿠팡이 그랬던 것처럼 기본배달료를 임의로 내려도 상관이 없다”며 “개정안의 가장 큰 목적은 배달료가 최저임금제처럼 안전배달료 이하로는 안 내려가도록 최소한의 방파제를 만들어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전배달료가 라이더들의 안전 운행을 담보하지 않을 거란 전망도 있다. 이에 대해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들도 신호를 지키고 싶은데, 최소한의 단가가 보장되지 않아 위험 운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한 안전배달료가 보장되면 안전배달료를 줬는데도 라이더들이 신호를 안 지키네? 같은 명분으로 단속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안전배달료는 배달사업자에게 사용자로서 책임을 강화하는 만큼, 라이더들에게 기업의 지휘·감독이 더 강하게 들어갈 수도 있단 의견도 있다. 

플랫폼 배달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음식배달 앱 요기요가 라이더들에게 시급을 보장하고 오토바이 무상리스를 제공해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안전배달료에도 라이더 대기시간, 운송수단 유지비용 등이 포함된다”며 “정규직 연봉 3,800만 원을 제시해도 라이더들이 지원을 잘 안 하는 상황에서, 안전배달료를 책임지게 되는 기업이 강제배차 등을 지시하면 라이더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강화되는 사용자의 의무가 뭔지, 진짜 사용자에 대한 과도한 의무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며 “지금까지 그런 규제가 없었다는 게 더 문제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안전배달료가 도입되면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질 거란 우려에 대해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지금도 건당 8,000원씩 주는 마케팅용 배달료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플랫폼이 부담하는 것”이라며 “최소배달료를 올린다고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무리가 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교육장에서 진행된 ‘라이더 안전보장 촉구 공동기자회견’.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지난해 10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교육장에서 진행된 ‘라이더 안전보장 촉구 공동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택배

택배산업 안전배달료 도입 목적도 택배노동자에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택배노동자의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초래하는 핵심은 오르지 않는 낮은 수수료이고, 택배수수료 결정 권한은 택배사에 있기에 법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택배산업에서도 위원회 구성, 수수료 산정 방안 등을 어떻게 정할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택배사마다 인구분포·배달난이도에 따라 권역별 등급을 매겨 수수료를 다르게 책정하는 복잡한 급지표는 어떻게 바꿀지, 대리점마다 택배노동자에게 다르게 떼는 수수료율은 어떻게 통일할지, 홈쇼핑 등 대형화주가 떼가는 백마진은 어떻게 규제할지, 위원회에 화주를 구성원으로 포함할지 등 여러 쟁점이 남는다. 

강동헌 화물연대본부 전략조직국장은 “안전운임제 시행 전에도 TF를 꾸려 1년간 제도 설계를 했다”며 “안전배달료위원회 구성이 궤도에 오르게 되면, 제도를 설계하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가장 타당하게 택배운임을 산정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개정안은 배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데 의의가 있지만, 구체화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라이더유니온과 화물연대본부는 하반기 국회 일정에 맞춰 안전배달료 도입을 위한 전국민 서명운동, 공동집회, 차량행진 등 공동 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