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기관 노동자, 왜 총파업 선두에 나서나?
공공의료기관 노동자, 왜 총파업 선두에 나서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8.29 16:32
  • 수정 2021.08.3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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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기관 어려움 대부분 기재부 획일적 태도에서 비롯··· 총파업 요구안도 결국 예산 문제”
[인터뷰] 장원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료 확대,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다음 달 2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 선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두에 서겠다고 선포했다. 지난 19일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 농성에 돌입하며 이 같이 밝혔다. 

왜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왜 기획재정부 앞일까? 한국원자력의학원 출신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총파업 요구안은 결국 예산 문제와 맞닿는다. 이번 투쟁에서 기재부가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는 싸움이 필요하다”며 “특히 공공의료기관 현장의 대부분 어려움이 사업장마다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재부의 획일적 태도에서 비롯되기에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선두에 설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먼저 투쟁을 선포한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에게 더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은 총 221곳(2019, 보건복지부)으로 국립(국립재활원, 국립경찰병원 등) 30곳, 특수법인(국립중앙의료원, 적십자병원, 국립대학병원 등) 86곳, 재단법인(원자력병원) 2곳, 시·도/군립 103곳이 있다.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어쩔 수 없는 ‘공익적 적자’···
노동자들은 상시적 임금체불 위협

-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일 기획재정부 앞 농성에 돌입하며 공공의료기관에서 노동환경이 개선되기 어려운 배경으로 ‘공익적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적했다.

공공의료기관은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의료영역을 담당한다. 법률에 따라 ▲특수대상(국가유공자-보훈병원, 군인-국군수도병원, 경찰-국립경찰병원, 산업재해-산재의료관리원, 혈액관리-적십자병원 등) ▲특수질환(국립암센터,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환자들을 치료하고, 지역의료기관(지방의료원, 시립병원 등)의 역할을 해낸다. 또한 코로나19 확산 등 비상시엔 일반진료를 제쳐두고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진다.

이러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은 환자 의료비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된다. 건강보험 보장률 등을 민간병원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에 기본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16년부터 4년간 223개 종합병원 건강보험 보장률 평균을 조사한 결과 보장률 상위 10개 병원 중 8곳이 공공병원이었다. 대다수 공공의료기관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공익적 적자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가장 피부에 와닿는 위협은 임금체불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은 일반진료를 제쳐 두고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한다. 지난해에는 이렇게 발생하는 적자를 정부가 신속히 보전해주지 않아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병원이 많았다. 노동조합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야 담당 부처나 지자체가 나서서, 뒤늦게 보상이나 관련 정책이 마련됐다. 이 대책을 기다리는 동안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위협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전담병원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감염병 대응 이후 다시 일반환자를 보게 될 경우 병원이 정상적인 운영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또 부득이하게 발생할 적자를 정부가 어떻게 보전해줄 건지 걱정하기도 한다.   

비상 상황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공익적 적자로 인한 압박에 시달린다. 진주의료원이 폐쇄됐을 때처럼 특히 적자 폭이 큰 지방의료원에는 재정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력 충원은 커녕 재료비, 운영비를 수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임금체불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더 안정적인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 코로나19 이후 특히 공공병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뭔가?

적십자병원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이후 헌혈자가 많이 줄어 혈액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헌혈센터 운영시간을 늘리고, 주말에도 쉼 없이 일하다 보니 노동강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1년 넘게 이어지는 과로에 퇴사자도 늘어나고 있지만, 총액인건비제에 묶여 인력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도 총정원제 때문에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파견간호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병원 현장에선 자기 환자를 돌보면서 훈련이 안 된 파견간호사를 교육하다 보면 일이 더 힘들어진다고 호소한다. 파견간호사의 짧은 파견 기간이 끝나면, 다시 새로 온 파견간호사를 교육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게다가 파견간호사들이 기존 인력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으니 노동자들의 박탈감도 크다.

공공의료기관은 묵묵히 특수 목적 임무를 수행해오다가, 지난해부턴 감염병 대응의 최일선에서 뛰었다. 공공 영역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은 파견간호사의 1/2, 1/3 수준 급여를 받으면서도 버텨온 이유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지금까지 공공병원이 존재했던 이유를 단 한 번에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이해와 지원,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 보건의료노조
지난 19일 보건의료노조 공공의료기관지부 노동자들이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하며 9월 산별총파업 선봉에 서겠다고 밝혔다. ⓒ 보건의료노조

공공의료기관 어려움 뒤···
기재부의 폐쇄성

-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배경으로 기획재정부의 ▲총액인건비제 ▲총정원제를 꼽았다.

기재부는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공공의료기관들마다 다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총액인건비제와 총정원제라는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기재부는 총정원에 따라 발생하는 총액인건비를 통제해 그 안에서만 인건비를 집행할 수 있게 한다.

이 구조는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적자 폭이 커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 상시적 감염병 시대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 현장은 정규 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기재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현실은 앞서 언급한 파견간호사 등이 공백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 다른 어려움은?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야간간호관리료 특별수당의 경우 보훈병원, 산재의료관리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지침으로 야간간호관리료가 총액인건비 제외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총액인건비 제외 항목에 야간간호관리료를 포함하라는 노조의 계속된 면담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이런 기재부의 폐쇄성 때문에 별도 재원으로 마련된 제도조차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공병원 노사가 인력충원에 합의했는데도 코로나19 시기 경제 위기를 핑계로 기재부가 공공기관 인력 증원을 통제하고 있다. 평상시에도 공공병원 이사회에 기재부 파견 국장 등이 이사로 들어와 노사합의 사항에 거부권을 많이 행사한다. 그럼 노사합의는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특히 기타공공기관인 국립대병원은 인건비, 운영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는데도 기재부가 과도하게 통제하는 일이 빈번하다. 노사합의로 인력충원한 내용을 부결시키거나, 불승인해서 노사갈등을 부추기는 식이다. 이는 일부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이사회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보건의료노조는 총액인건비제의 과도한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공공의료기관의 모든 영역을 기관의 자율에 맡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다만 기재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위해 일하는 공공의료기관의 특수목적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야간간호수당 등 모든 병원에 적용되는 정책 대상에서 공공병원 노동자들이 빠지지 않도록 총액인건비제 적용 제외 항목을 완화해야 한다. 또한 응급상황에 따라 필요한 추가인력에 대해서도 기재부는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총정원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기재부가 어렵게 합의한 인력증원에 대한 노사합의를 존중해야 한다. 특히 정부 지원 없이 인건비 지급 능력이 있는 공공병원의 경우 필요한 인력증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개선, 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공공병원의 간호등급제 상향을 위해 필요한 추가 필수인력의 증원도 수용해야 한다.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기재부 대상 투쟁··· 
공공의료기관 노동자, 선두로 나설 수밖에”

- 공공의료 확충도 이번 투쟁의 핵심 요구안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공공병원 수가 적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병원 짓는 데 돈 쓸 마음이 없어서다. 우리나라 공공 병상수는 전체 병상수 대비 10.5%에 불과하다. OECD 평균(74.6%)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공공병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공공의료기관이 확충돼야 한다. 전체 병원 중 5~6% 수준에서 30%까진 끌어올려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과 공익적 적자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지방의료원의 경우 시설이 낙후돼 수준 높은 진료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방의료원은 300 병상 미만 규모로 인해 필수의료를 수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료기관의 양뿐 아니라 질도 담보하는 정책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런 변화를 위해선, 특히 기재부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다음 달 2일 산별총파업의 선두에 서겠다고 밝혔는데?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 인력을 확충하라는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총파업 요구안은 결국 예산 문제와 맞닿는다. 현재 진행 중인 노정교섭에서 보건복지부도 기재부의 예산편성권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이번 투쟁에서 기재부가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는 싸움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의료기관 현장의 어려움이 대부분 예산 문제에서, 사업장마다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재부의 획일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번 기재부 대상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싸움의 선두에 나설 수밖에 없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정당하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익성 문제로 인해 위축된 존재로 살아왔다. 이런 어려움이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면서 더 크게 와 닿고 있다. 우린 항상 정부가 상황에 따라 지시하는 임무를 당연히 수행하는 존재로만 여겨지고, 걸맞은 보상 없이 우리의 소중함은 등한시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지금 코로나19 대응이 가능했을까? 국민은 답을 다 알고 있다. 정부는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고,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