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강화-인력 확충, 말 아닌 행동할 때”
“공공의료 강화-인력 확충, 말 아닌 행동할 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6.04 09:10
  • 수정 2021.06.0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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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9월 총파업 예고··· “구체적 이행 계획 정부가 약속해야”
[인터뷰]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코로나19 장기화로 ‘임계점’에 달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배수진을 쳤다. 열악한 현장에서 감염병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이 탈진, 소진되는 가운데 대통령과 정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보건의료 환경 개선에 공감했다. 하지만 공공의료 강화,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 약속과 계획을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9월 1일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고 행동과 실천을 끌어내겠단 것이다.

보건의료 노동자 8만 명이 조직된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과 공공의료 강화, 적정 의료인력 확충 등을 올해 대정부·대사용자 교섭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결정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에게 총파업 결정 배경, 총파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문제 해결 수준 등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노DB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더는 참을 수 없어··· 
재정 포함한 정부의 확실한 약속받을 것”

- 왜 총파업을 예고했나?

이젠 정부가 계획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하고, 말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할 때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보건의료인력이 확충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도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2018년부터 세 차례나 발표했다. 지난해엔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호사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정부위원회나 회의체에도 참석해 많은 논의를 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조합원들은 더 소진, 탈진되면서 환자 곁을 떠나고 있다. 현장엔 투쟁 없인 바뀌는 게 없겠단 인식이 팽배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 보건의료 노동환경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노조의 마지막 무기인 총파업을 불사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특히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백신 접종으로 9월엔 어느 정도 감염 위험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 공공의료 강화 등 노조의 요구안은 모두 대정부·산별교섭과 총파업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큰 주제다. 교섭과 총파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해결 수준은?

코로나가 우리 사회 문제들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의료현장의 열악한 현실을 이번 파업을 통해 알리고자 한다. 이런 사회적 쟁점화를 통해 우리의 절박한 요구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확실한 약속을 받는 것이 목표다. 약속엔 재정도 포함돼야 한다. 정부는 발표했던 계획들을 이제 실행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5~6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감염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임시방편적 대응은 그만 해야 한다. 지역 간 의료 격차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우선 감염병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2015년 메르스 이후 법 개정으로 계획했던 중앙과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을 조속히 설립해야 한다. 현재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은 4곳밖에 지정이 안 됐는데 최소 7곳이 필요하다. 이미 법이 제대로 시행됐다면 코로나 상황에서 더 체계적인 감염병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의료 확충은 70곳의 중진료권마다 필수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300~500병상 규모 책임의료기관을 지정 혹은 설립하겠다고 정부가 2018년에 발표한 바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역 책임의료기관을 35곳 지정했는데 나머지도 빨리 지정해야 한다. 기존 지정한 곳 중 300병상 이하 병원 27곳도 300병상 이상으로 증축할 수 있도록 수익성·경제성 중심으로 평가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확장·이전을 계기로 한국 공공의료의 중심 기관으로 세우고, 41개 지방의료원은 지역 공공의료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력 충원과 예산을 대폭 투입해야 한다. 또한 지역 차원에서 완결적인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국립대병원의 주무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어떻게 복지부가 공공의료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국립대병원에 직접 지시할 수 있겠나?

보건의료인력 부족?
“근본적 전환점 만들어야”

-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근본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의대 정원 확대와 감염내과 의사 등 필수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공공의과대학 설립의 근거 법이 필요하다. 현장에선 의사가 부족해 간호사들이 의사만 할 수 있는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2002년 의약분업 당시 반대하던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의대정원을 축소하겠다고 의사협회와 합의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해마다 의대 정원이 300명씩 줄었다. 지난해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의사들이 집단 진료 거부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의료인력 수요는 증가하지만 의사들이 기득권을 챙기는 사이 불법 보조 인력,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안 그래도 간호인력이 부족한데 숙련 간호사가 PA간호사로 빠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또한 간호인력 문제를 풀기 위해선 신규 간호사(입사 1년 이내)의 반(45.4%)이 그만두고 있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제도화하고 신규간호사 교육전담제를 공공병원뿐 아니라 민간병원까지 확대해야 한다. 둘째, 이직의 핵심 요인인 밤근무 교대제를 전면 개편하고 셋째, 단계적 주4일제 도입을 통해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 병원노동자의 주4일제는 일반노동자의 주5일제와 비슷한 강도다. 이 세 가지 대책은 서로 맞물려 현장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며 환자들에게는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 보건의료노조
지난달 6일, 보건의료노조가 ‘2021년 대정부·대국회 교섭 요구와 산별총파업 계획’을 발표했다. ⓒ 보건의료노조

방역안보 중요성 실감한 코로나 위기
재원 문제는 “인식의 전환 필요”

- 열악한 공공의료 인프라, 의료인력 부족 등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 등은 구체화됐다. 결국 재원 문제가 남는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국방예산은 2017년에 40조 3,000억 원이었는데 2020년엔 48조 2,000억 원이다. 2년 반 만에 8조 원이 증가했다. 군인 월급, 급식비 인상 등을 위한 증액에 누가 반대하나? 그만큼 국방안보가 필요하단 인식이 깔려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국방만큼 방역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됐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어디에 살든 필요할 때 언제든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역격차가 너무나 심각하다. 적정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비율, 즉 치료 가능 사망률을 보면 경북 영양군이 서울 강남의 3.64배에 달한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고속도로를 까는 데 7조 3,000억 원이 든다. 이 돈이면 공공병원 30개를 지을 수 있다. 도로만큼 공공병원도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의료기관들의 편법과 사무장병원 등 누수가 많다. 특별사법경찰관제 도입으로 재정 누수를 막고 절감된 재정으로 인력에 투자해야 한다. K-방역의 완성은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으로 이뤄진다.

-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한 배경엔 산별교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간 산별교섭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산별총파업 투쟁으로 첫 산별교섭을 시작해 우리나라 산별교섭의 모델을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학병원의 불참으로 사용자단체 규모가 축소돼 공공병원과 민간중소병원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참여했다면 의료양극화, 지역양극화, 인력문제 등 더 많은 의제가 논의됐을 거다. 그렇지 못하다 보니 병원 노사관계는 갈등과 격차만 커지면서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노동조합법에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시 사용자의 참가 의무화를 명시하는 등 산별교섭이 제도화돼야 한다. 그러면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풀 수 없는 많은 사회적 의제들이 초기업 단위에서 논의돼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올해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산별교섭 제도화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점만 이야기하지 말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핵심 정책수단으로 산별교섭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8만 조합원 참가하는 위력적 투쟁 될 것”

- 총파업 조직을 위해 조합원과 현장을 어떻게 설득하고 있나?

처음엔 ‘코로나 시기에 무슨 총파업이냐?’ 이런 얘기가 많았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고생한다고 덕분에 캠페인까지 받으며 우리 모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1년 뒤 의료인력 생명안전수당이 0원으로 추경예산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투쟁으로 쟁취했지만 이런 것도 투쟁해서 따야 하나 서글펐다. 

정말 간호사들에게 감사하다면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 간호사가 부족한 근본적 원인인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니 높은 이직률은 떨어지지 않는다. 환자를 간호하면서 보람을 느끼려면 간호사 한 명당 15~20명씩 환자를 맡는 현실에서 벗어나 미국처럼 한 명당 5명씩 볼 수 있도록 간호사당 환자수를 법제화해야 한다. 적정 인력 기준은 간호사뿐 아니라 의료기사 등 다른 보건의료 직종도 마찬가지로 마련돼야 하는 문제다.

간호사들은 위험, 육체, 정신, 감정, 야간, 교대, 불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는 안 된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 노동조합 모두 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왜 해결이 안 되나? 누군가 끝까지 책임지고 밀고 나가는 세력이 없어서다. 그걸 우리가 하자.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정부와 사용자도 움직이고 그래야 뭐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현장을 설득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의 한복판을 지나 끝이 보이는 무렵이 코로나가 던진 과제를 해결할 최적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때가 9월이다. 

- 총파업 결정된다면 파업 당일은 어떤 모습을 예상하나?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1만 조합원이 참가해 14일 동안 산별총파업을 진행하면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를 쟁취했고 산별교섭 시대를 열었다. 이번엔 의제와 규모면에서 2004년을 넘어서는 역대급 산별투쟁이 될 것이다. 병원이 필수유지 사업장임을 고려해 응급실, 수술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하고 8만 조합원 모두가 참가하는 위력적인 투쟁을 예상한다. 

이번 파업은 단순히 임금과 단체협약을 위한 파업이 아니다. 감염병 위기를 극복하면서 건강 격차 해소를 위한 국민파업이자 사회적 파업이다.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남기 위해선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노정교섭을 통한 해법 모색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아직도 임기 1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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