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노사민정③부천]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다시 한번 정체성 찾을 때”
[우리 동네 노사민정③부천]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다시 한번 정체성 찾을 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0.13 00:00
  • 수정 2021.10.13 0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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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노사민정협의회를 소개합니다③]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우리 동네도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지역 노사민정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인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다. 광역 17개 시·도 전체, 기초 226개 시·군·구 중 140곳(62%) 총 157개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운영 중이다.

서로 다른 지역 노사민정이 중앙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잘 모른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치열한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걸음을 <참여와혁신>이 소개한다. 세 번째는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다.

“걸어가며 길을 찾은 시간”

경기도 부천은 지역 사회적 대화가 태동한 지역이다. 다른 지역 협의회의 단골 벤치마킹 사례가 된 부천은 꾸준히 앞서 걸으며 길을 만들어왔다.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전 부천노총 의장)은 20여 년 전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한다.

“20년 전 부천 노사정이 모여 노사정위원회를 준비할 때는 지금을 상상하지 못하고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을 준비하고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작은 조각들이 점점 큰 그림으로 변해갔다.··· 걸어가며 길을 찾은 시간이었다. 앞서 걸어간다는 부담과 백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기대감이 공존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부천노사민정협의회 20년사》 김준영 사무처장 인사말 中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1997년 IMF 이후 지역에 닥친 경제·고용 위기에 노동조합이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안하면서 출발했다. 지역의 위기에 노사정은 뜻을 모았고 1999년 1월 노사민정협의회 설립 조례가 제정됐다.

위기가 전부는 아니었다. 지역 주체들의 ‘걸어가며 길을 찾은 시간’들이 협의회를 키웠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지역 주체들이 피나게 활동한 과정이 있었다. 사무국이 없을 때도 부천은 잘했다. 주체들이 각자 일을 하면서도 협의회 사업을 몇 개씩 맡아 끌고 갔다”며 “이런 헌신이 있었기에 지난 협의회의 시간들을 존중하고, 협의회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도 일해왔다”고 말했다. 협의회 설립 후 22년이 흐른 현재 고현주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부천은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고용·노동 관련 중심 협의기구라는 점이 명확하게 인식돼 있다”고 평가한다.

ⓒ 부천시노사민정협의회 20년사 표지
ⓒ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20년사 표지

지역 주체들이 지켜온 가치는 ‘사람, 희망’이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부천은 사람이 자산일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산업도 열악하지, 땅이 넓은 것도 아니지, 우스갯소리로 보이는 것이 건물하고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면서 “그러니까 사람을 잘 케어해야 하고 지켜야 한다. 이는 협의회 주체들이 지켜온 가치”라고 전했다.

한 번의 큰 걸음으로 이루기 어려운 ‘사람, 희망’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부천은 작은 걸음의 축적을 지향했다. 지난한 대화의 과정을 포용했다. 지역 내 노동·고용 의제를 발굴해서 심의하고, 어떻게 정책의 실행력을 꾸준히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 번 정책이 만들어지면,
포기하지 않고 키워”

2006년부터 이어진 노사공동훈련사업이 꾸준한 사업의 대표적 예다. 제조업 기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부천의 경제는 1980년대 이후 중견 기업의 지방 이전으로 공업의 급격한 축소를 경험한 바 있다. 현재는 제조업체 중 50인 이하 사업장이 99%에 이를 정도로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다.

이런 산업구조는 청년 취업 미스매치 현상으로 나타났다. 경력 단절 중장년층의 경우엔 취업 의사가 있더라도 기술 부족 때문에 안정적인 고용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기업은 교육훈련이 필요했지만 여력이 안 됐고, 떨어지는 기술력은 지역 산업의 낮은 생산성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2004년 제2차 노사정협약 체결로 지역고용 및 인적자원개발 사업에 참여를 선포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중앙 정부의 재원을 활용해 ‘지역고용 및 인적자원개발사업’과 ‘지역노사공동훈련사업’ 두 축으로 진행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부천노사공동훈련사업은 부천과 협의회의 지원 아래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와 부천상공회의소가 주체가 돼 기업단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교육훈련 과제를 이끌어왔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노사공동훈련센터가 재단법인이 돼서 이젠 사각지대 교육훈련뿐 아니라 일자리 관련한 문제들까지 확장해 다루고 있다”며 “노사공동훈련사업은 15년 가까이 지역단위 노사협력 모델을 꾸준히 확장시켜온 사례가 됐다”고 했다.

이 외에도 2014년 부천은 전국 최초 노사민정 합의로 생활임금을 도입했다. 매해 부천의 생활임금을 정하는 생활임금위원회는 노사민정협의회 산하에 있다. 고현주 국장은 “부천 생활임금은 3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100% 달성이라는 10년간 정책 목표를 세운 상태”라며 “이렇게 한 번 정책이 만들어지면 포기하지 않고 잘 만들어온 것이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다시 한번 정체성 찾을 때

지역 주체 간 대화를 중시해온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 코로나19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고현주 사무국장은 ‘위기 상황’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가 사라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중앙에선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현재 많은 것들이 정부, 지자체 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 합의 과정 없이 그냥 실행되는 정책이 굉장히 많다”며 “나중엔 이런 결정들이 데미지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은 이런 과정이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상황 속 노사민정협의회에선 무엇을 논의하지?’라는 질문 뒤엔 더 큰 걱정이 있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양극화다. 고용, 정보, 학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격차가 더 심해질 텐데 이를 어떻게 지역단위에서 안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앞으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며 “분야별로 고용, 복지, 교육 등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모두 결합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지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제 속에 고현주 사무국장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예전엔 노사민정협의회처럼 고용·노동 관련 협의기구가 없었다. 부천도 협의회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다 이뤄졌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지역마다 다른 조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식이 아닌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