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의 문제, ‘독점’ 아닌 ‘경쟁’
한국 철도의 문제, ‘독점’ 아닌 ‘경쟁’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1.04 09:30
  • 수정 2022.01.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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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SRT 분리 운영, 매년 1,000억 원 이상 추가 비용 발생”
“철도 ‘독점’은 잘못된 진단...‘상하통합’ 추진해야”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철도노조, 차기 정부 중점 사업 역시 ‘철도통합’

2021년 전국철도노동조합(위원장 박인호)은 ‘전라선 SRT 투입 저지’에 주력했다. 11월 19일 국토교통부의 전라선 SRT 연내 투입 계획이 무산된 걸 확인한 뒤에야 예고했던 총파업을 유보했다. 철도노조가 전라선 SRT 투입을 막으려한 건 “국토부의 철도 민영화 전 단계”로 보기 때문이다. SRT 운행을 확장한 뒤 운영사인 SR을 민간에 매각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지금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SR 경쟁체제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민영화를 확대할 것으로 철도노조는 바라본다.

이에 국토부는 “SR의 민영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정관에 임의매각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법적 제한이 없어 정관 개정과 주주 간 동의를 통해서 언제든지 매각이 가능한 구조”라고 반박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매각을 시도해 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정관은 사내 규정에 불과해 출석 주주의 2/3 동의로 개정이 가능하며 향후 정권교체 등 환경 변화 시 주식매각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SR 출범 과정에서 KTX 운영사인 코레일은 SR 민간매각 방지 조항의 법제화를 요구했으나,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정관과 주주 간 계약으로만 규정된 바 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철도노조의 주장은 꽤 타당하다. 역대 정부가 철도 민영화를 끈질기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7~98년 외환위기 당시 IMF 요구로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철도노조와 시민사회 반대로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는 수서 고속철도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반대 여론에 무산됐다. 이후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명목으로 2013년 수서 고속철도를 출자회사 형태로 분리해 SR을 출범시켰고, 현재에 이르렀다. 당시 국토부는 2013년도 12월 SNS를 통해서 SR 설립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용산발 KTX가 일반철도 적자선을 교차보조하는 반면, ‘수서발 KTX(현 SRT)’는 서울‧용산발 KTX보다 훨씬 높은 선로사용료를 부담하며 철도의 최우선 과제인 건설 부채 상환에 사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SR을 설립했다면, 종래에는 철도 민영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철도노조가 민영화에 반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민영화가 철도노동자의 노동조건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기업 일자리는 줄고, 외주화 비율이 늘어나는 구조조정은 물론, 본업과 별개로 수익을 위한 업무를 강요당할 수도 있다. 과거 승무원은 지역특산물 영업을, 시설전기원은 정액권 판매를 강요받기도 했다.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서비스로 이어지는 공공교통의 특성으로 볼 때 조합이기주의만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철도의 공공성이 낮아질 거란 우려에서다. 민간이 철도를 운영할 경우,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의 안전과 편의, 이동권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민영화의 단초를 없애려면 철도통합, 즉 ‘코레일-SR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도통합은 현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코레일과 SR 통합을 약속했으나, 임기가 끝나가는 현시점에선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긴 ‘제4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이 나온 이후 코레일-SR 통합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지난해 내기로 한 연구 결과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2022년에도 철도노조는 철도통합을 강하게 요구할 예정이다. 대선 이후 집권 초기에 철도통합을 추진해야 성공확률도 높을 거란 전망에서다. 이미 철도노조 현 집행부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2022년 상반기에 철도통합 총력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KTX-SRT 분리 운영으로
매년 1,000억 원 이상 추가 비용 발생”

코레일과 SR의 분리 운영 관련, 가장 이목을 끌었던 대목은 추가 비용 발생이다. 고속철도 분리 운영으로 수송단가가 높아져 매년 쓰지 않아도 될 거래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태승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에 따르면, KTX-SRT 분리 운영으로 2017년 1,308억 원, 2018년 1,373억 원, 2019년에 1,779억 원의 불필요한 중복비용이 발생했다. 김태승 교수는 철도산업은 수송실적이 많아질수록 비용(수송단가)은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라며 “KTX와 SRT를 합쳐서 수송하면 단가는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승 교수의 분석은 ‘철도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열차 요금이 내려가는 등 국민 편익이 커질 것’이라며 SR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주장과 상충한다.

실질적으로 KTX와 SRT를 경쟁 구도로 보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서 SR 개통 시, 코레일은 당시 신형에 속하던 열차인 ‘KTX-산천’을 SR에 대여해줬다. 차량정비, 역 운행, 선로 유지‧보수, 관제 등도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다. 김태승 교수는 2017~2019년간 코레일과 SR의 승객 수송 분담비율이 7.5대2.5로 고정돼있다며, 단지 시장을 나눠 가진 상태일 뿐 실제 경쟁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SRT의 장점으로 꼽히는 KTX보다 10% 저렴한 운임마저 경쟁의 효과가 아니다. 국토부에서 SRT의 운임을 KTX보다 10% 내리도록 정한 결과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위원도 ‘독점’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정부가 철도 경쟁체제를 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SR 출범 이유는 철도공사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독점으로 무사안일주의에 빠졌고, 그걸 해소하는 길을 경쟁체제로 진단한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 철도는 공기업이다. 요금, 서비스, 기타 시설을 정부의 지시와 정책에 따라서 집행한다. 요컨대 지배적 시장사업자로서 독점의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SRT와 KTX 간 요금 차이는 지역·노선별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수서역과 접근성이 좋은 강남지역 주민만 10% 할인된 가격을 이용하고, KTX가 들어선 강북지역 주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SR과 통합하면 KTX 요금을 10% 인하할 수 있으며, 하루 약 45회 열차 운행이 늘어나고 연간 1,000만 석의 좌석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정부는 경쟁체제로 한국 철도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SR 출범에 따른 파생효과는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간 유기적 연결성 파괴, 지역 차별, 중복비용 낭비, 환승 불편, 차량 이용 효율성 하락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라며 “국토부가 국민편익을 기본원칙으로 삼는다면, SR-KTX 통합을 막을 이유는 하나 없다”고 주장했다.

2021년 11월 4일 세종시 국토부 앞에서 열린 철도노조 총력결의대회 ⓒ 철도노조
2021년 11월 4일 세종시 국토부 앞에서 열린 철도노조 총력결의대회 ⓒ 철도노조

‘철도 민영화의 원조’ 영국의 철도통합 회귀
“한국 철도도 ‘상하통합’ 추진해야”

철도의 공공성을 유지‧제고하려면 한국 철도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 운영과 관리 주체를 합치는 ‘상하통합’을 추진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 철도는 2005년부터 코레일이 열차 운영과 관련서비스를, 국가철도공단(구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건설 등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상하분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철도청 해산 후 철도 운영체제를 전환하면서부터다.

상하분리 체제는 1988년 스웨덴에서 최초로 도입했다. 당시 스웨덴의 철도 영업 킬로미터는 1만 2,000km로 한국 철도의 3배에 달했지만, 인구는 840만 명 수준이었다. 넓은 땅과 적은 인구라는 특성, 게다가 자동차 시대의 도래로 주력교통수단으로서 지위를 서서히 잃어가는 흐름에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점차 낮아지고 재정건정성은 악화했다. 스웨덴은 철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떻게든 줄여야 했다. 당시 스웨덴 정부가 택한 길이 바로 운영과 시설을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철도시설에 관한 운영자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스웨덴 사례를 그대로 이식받은 곳이 ‘철도 민영화의 원조’로 불리는 영국이다. 영국 정부는 철도공사라는 단일 조직으로 운영되던 철도 산업을 시설과 운영으로 나누고, 여객운행 회사 25개, 화물운송 회사 3개, 유지·보수 회사 13개 등으로 분리하며 수직‧수평분리와 경쟁체제를 완벽히 구현했다.

영국 정부는 경쟁체제를 통한 철도 서비스 향상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오히려 이용객은 여러 철도회사의 시간표과 요금체계를 비교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성수기나 하루 중 가장 철도 이용객이 많은 시간에는 비싼 요금을 지불했고, 비수기 등 수요가 적을 때에는 드문 차량 운행을 감내해야 했다. 더욱이 상하분리 체제는 철도 시설을 담당하는 회사가 열차 운영을 담당하지 않기에 시설 구축 시 안정성을 비롯한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변화를 만든 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여객 이용 감소로 수익이 악화되자 민간 철도회사는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며 프랜차이즈를 반납했다. 결국 영국 교통부는 지난 5월 철도통합 운영의 필요성을 담은 ‘Great British Railways: Williams-Shapps plan for rail’ 보고서를 발간하며 철도개혁 의지를 시사했다. 보고서는 영국 철도 민영화의 문제점을 ▲여객과 화물을 고객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역량 손실 ▲지나치게 분절된 철도망과 책임 소재의 모호 ▲철도를 총괄하는 전략의 부재 등으로 진단한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철도 공공성 강화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국토부는 출범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SR의 성과지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니 앞으로 몇 년간 더 지켜본 후 코레일과 SR 통합여부를 결정하자고 말한다”며 “현재의 구도를 고착화하는 교묘한 시간 끌기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기 전에 잘못 들어선 길을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2021년 12월 15일 열린 ‘고속철도 분할 경쟁 장막에 갇힌 한국 철도 대안은 없는가’ 토론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