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로 흔들리는 서비스노동자들··· 정책연구로 ‘큰 그림’ 그려
디지털화로 흔들리는 서비스노동자들··· 정책연구로 ‘큰 그림’ 그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2.09 00:01
  • 수정 2022.02.09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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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디지털 전환 속도 다른 업종별 연구사업 진행···
산업구조 변화 선제적으로 짚고 노동 대응방향 제시해
[인터뷰] 김성혁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 정책연구원장

서비스노동자들은 디지털 산업전환의 중심에 있다. 유통산업의 온라인화로 빠르게 증가하는 물류센터와 배송 영역 노동자들은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오프라인 매장 노동자들은 점포 축소와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강도 증가, 고용 불안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이 재편되면서 산업 질서가 흔들리는 사이 불안정 노동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홈 산업의 발달로 노동자의 손발은 자가점검 제품으로 대체되면서 방문판매노동자, 방문설치·수리노동자의 일자리도 위협받는다. 관광업체들의 예약권은 플랫폼 업체에 넘어갔다.

노동조합의 단기적인 대응으로는 풀어나가기 어려운 숙제가 쌓여갔다. 서비스노동자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은 차분히 ‘큰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은 서비스산업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짚고, 노조의 대응 방향을 제시해왔다. 2020년 <플랫폼노동 보호와 조직화 방안 연구보고서>,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을 시작으로 2021년 <플랫폼택시 현황과 노조의 대응전략>, <배송노동자 노동실태조사 연구>, <생활가전업체 방문서비스 구조조정 실태조사>, <모빌리티 산업과 노동의 변화>, <스마트홈 기술변화와 노동의 대응> 등 꾸준히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중간중간 관련 토론회도 열었다.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을 이끌어온 김성혁 정책연구원장을 만나 디지털 기술이 서비스산업과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 노동의 대응에 대해 물었다. 정책연구원의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올해 계획은 무엇인지도 함께 들어봤다. 이야기는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지난 12월 22일 들었다. 추가 서면 인터뷰는 2월 8일 진행했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온라인화의 일상화’
디지털 기술이 서비스산업에 미친 영향

- ‘디지털화’라는 기술 변화의 특징은 뭔가?

디지털화는 물질의 상태를 컴퓨터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1과 0이라는 이진법으로 구성된 데이터로 세상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이진법으로 기록되는 디지털 데이터는 빠른 속도로 생산되며, 실시간으로 전송·저장된다. 교통, 생산, 판매, 유통 등 세상의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있다. 구름처럼 어마어마한 빅데이터가 무한한 가상공간에 쌓여 있다. 이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면 원하는 최적값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다. 다양한 미래를 예측하고 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촉발하는 초지능 사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의 도래를 디지털 혁명이라고 한다.

- 디지털화는 서비스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10년 전에도 디지털화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속도나 비용 측면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런 한계가 많이 사라졌다.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서비스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화의 일상화다. 물론 키오스크 도입을 비롯한 자동화도 이전보다 더 빨리 확산하는 추세지만,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통기업은 온라인 사업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빼기도 한다. 현재 유통 전체 판매액의 40% 정도가 온라인 판매액이다. 머지않아 50%를 넘어설 것 같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서 판매하는 전통적 형태가 이젠 부차적으로 바뀌는, 그야말로 유통의 혁명으로 봐야겠다. 그러면 오프라인 매장이 지금의 반은 사라질 것이다. 장기적으론 더 줄어들 수도 있겠다.

다른 하나는 배송 영역이다. 폭발하는 온라인 주문에 대응해 이젠 배송을 얼마나 빠르고 편리하게 해주는지가 경쟁력이 됐다. 배송 영역에서 수익이 많이 나다 보니까 예전엔 유통업체들이 배송을 택배나 물류업자에게 맡겼는데 이젠 직접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물류창고를 짓고 배송에 뛰어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고 정규직 대신 지입기사, 특수고용직, 단기간 계약직 등을 사용한다. 이런 모습이 유통산업의 가장 큰 변화고, 그 근저에는 디지털 기술 변화가 있다.

관광산업도 예약 시스템부터 플랫폼화되고 있다. 익스피디아 등 플랫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는 지역과 시간에 따라 최저가 숙소뿐 아니라 항공권까지 연결해준다. 최근엔 구글까지 가세했다. 기존 관광업체들의 예약권이 플랫폼 업체에게 넘어간 것이다. 서비스업은 산업변화 속도가 빠르다. 제조업은 설비 투자 등 돈이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리는데, 서비스업은 그런 장벽이 낮다. 기술 발전에 의한 변화가 금방 이뤄진다.

- 노동의 변화는?

빅데이터를 다루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짜는 등 정보통신 분야 인력이 늘겠지만, 판매·영업 등 대면노동은 줄고 있다. 매장 인력이 감소하고, 매장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홈플러스는 온라인 부서가 따로 있고, 롯데마트는 계열사를 모은 롯데원이라는 사업부서에서 온라인 사업을 총괄한다. 이마트는 쓱닷컴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었다. 유통기업이 온라인 판매를 강화하면서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픽업하고 패킹하는 인력은 늘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면노동이 담당하던 서비스는 줄어든다. 유통뿐 아니라 관광, 음식, 숙박업 등 비슷한 추세다. 이들 산업에서 취업자 감소 폭이 가장 크다. 물론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측면도 있겠지만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로 봐야 한다.

서비스연맹의 대응,
‘비정규 노동자 조직’에 초점

- 서비스연맹엔 유통·물류, 모빌리티, 스마트홈 등 다양한 서비스업종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다. 각 업종마다 산업전환 속도와 규모는 다를 텐데, 연맹의 대응 기조가 있나?

모두 디지털화, 온라인화, 자동화의 영향을 받지만 산업별 변화 속도의 차이는 있다. 서비스연맹은 우선 플랫폼 산업 등 새로운 산업이나 신사업 영역에서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예를 들자면?

택배의 경우 지난해 과로사 투쟁에 집중했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을 제정했다. 현재 조합원이 8,000명이다. 1~2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 마트노조는 온라인 배송 영역을 조직화했다. 1년 만에 온라인배송지회는 1,000명 규모로 성장했다. 배달 영역에선 사회적 교섭을 하고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배달 영역도 약 1000명 정도 조직됐다.

- 산업전환 대응 관련해서 보완하려는 과제가 따로 있나?

유통, 물류, 운수가 합쳐지면서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관련해서 조직 재편도 검토 중이다. 예를 들면 배달의민족이 원래는 배달업체인데 B마트를 운영한다. 쿠팡이츠도 쿠팡이츠마트가 있다. 일종의 물류창고다. 편의점과 경쟁을 하겠다는 거고, 규모가 마트 만한 곳도 있다. 마트에서 파는 물품을 대부분 취급한다. 이건 유통업이다. 반면 유통업에서는 이제 물류창고와 배송을 직접 하고 있다. 유통과 물류 간 차이가 없어지는 거다.

여기에 운수도 합쳐진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대리운전, 배달까지 다 한다. 공급자와 소비자만 연결해주고 양쪽에서 수수료만 받는 식이다. 좀 더 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직접 또는 대리점을 통해서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유통, 운수, 물류를 넘나들면서 기존 업체들의 틈새를 끼어들고 신생업체도 함께 경쟁한다. 그야말로 무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질서 없는 산업 재편···
증가하는 불안정 노동

- 업체 간 무한 경쟁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피해는 뭔가?

예전엔 오프라인 사업을 중심으로 한 법이 있었고, 산업 간 경계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데 이를 규정하는 법이 없어서 업체들이 마음대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플랫폼 노동도 막 사용하는데, 규제도 안 된다. 노동안전, 수수료 문제를 비롯해 각종 불공정 거래가 만연하다.

게다가 정부는 플랫폼 산업이 신성장 동력이라며 각종 인프라, 연구개발을 지원해주고 웬만한 규제는 열어준다. 그런데 노동권엔 큰 관심이 없다.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제도가 없으니, 몇 년 전 택배노동자들과 비슷한 처지다. 택배노동자들은 그나마 생활물류법이 생기고, 과로사대책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해서 굵직한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영역, 주로 배송이나 물류창고 노동자들에겐 정확히 적용되는 법이 없다. 화물운수법, 유통산업발전법, 택시발전법 등이 있으나 모두 해당이 안 된다. 정확하게 새로운 영역이 어떤 산업이고 어떤 법에 적용된다는 게 없다. 그리고 유통산업, 물류산업 등 관련 정부부처들은 골치 아프니까 서로 떠넘긴다. 사업주는 좋다.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안전조치나 교육을 제대로 안 해도 되고, 수수료 기준도 없으니 멋대로 내리고 올린다.

- 앞서 카카오모빌리티를 언급했는데, 모빌리티 영역에서 변화는?

모빌리티는 1차적으론 택시·대리운전 등 운수 영역을 지칭하지만 현재는 택배·온라인배송 등 물류 영역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쓴다. 이런 운수와 물류산업은 플랫폼 기업의 중개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를 아울러 '모빌리티 산업'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 어느 장소를 간다면 여러 교통수단을 조합해야 한다. 이를 플랫폼에서 한 번에 예약하고, 결제도 할 수 있다. 연결 과정을 카카오가 다 아니까 운수 영역이 하나로 연결되는 거다. 연결뿐 아니라 안전한 이동, 새로운 고객체험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 이게 새로운 사업 모델이고, 이 산업을 선점하려고 대기업, 플랫폼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이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존 중소업체들이 몰락하는 문제도 있다. 예전엔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은 지역별 콜센터가 연결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젠 카카오와 대리점 몇 개가 독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에서 분사한 티맵모빌리티는 우버와 합작회사를 앞세우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구글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자율주행 분야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은 머지않아 대기업, 플랫폼 기업 중심으로 정리될 것이다. 반면 노동은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면서 건당 수수료 체계 아래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고 있다.

공정한 산업전환 위해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 필요

- 노동이 원하는 대책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300년에 걸친 투쟁으로 현재의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 산재보상법, 4대보험 등을 확보했다. 이는 모두 고용된 노동에 주어지는 사회적 보호장치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용자들이 이를 회피해 불안정 노동을 사용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스마트폰, 앱, 고객평가 등을 통해 관리자가 없이도 노동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들은 위장된 자영업을 활용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노동 기본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그런 추세다.

- 서비스연맹은 대통령 직속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각종 위원회, 거버넌스들은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는 이전 위원회들과 어떻게 다를 수 있나?

산업변화가 빠르고 고용감소가 가장 큰 산업이 서비스업이다. 정부는 공정한 산업전환을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공정한 전환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그 실천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정교섭 틀 마련이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그런 기구를 구성하게 하고, 그 안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를 이야기할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에 건설적인 제안들을 한 뒤, 안 된다면 하반기에는 투쟁으로 압박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물론 쉽진 않을 거다. 그간 여러 정부 위원회나 거버넌스 중 잘 운영된 데가 많지 않다. 서비스연맹은 사회적 대화의 성공 경험을 쌓아왔다. 우선 2021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성과가 있었다. 택배노조는 잘 투쟁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이를 통해 산업 질서를 세우고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성과를 확보했다. 배달 영역에선 2020년 '플랫폼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 1기'가 국내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로 노사 자율협약을 맺었다. 배민라이더스지회는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노정교섭 틀에서도 실효성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큰 그림’ 그리는 정책연구원
올해 사업 방향은?

-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의 지난 1년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책연구원은 서비스산업의 변화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만들고 있다. 세부적으로 전략을 짜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건 다른 부서의 영역이고, 일차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주는 데 방점을 많이 두고 있다. 이 역할은 일정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 정책연구원의 올해 계획은?

올해 주요 사업 방향은 ▲조합원 노동실태 분석해 정책수립의 기초자료 마련 ▲서비스산업 연구자 발굴해 정책네트워크 강화 ▲정책토론회, 분과별 업종산별 지원 등이다.

연구 과제로는 <서비스노동자 실태조사>, <학교비정규직노조-전교조 공동의제 연구>, <서비스노동의 특징과 가치 연구>, <플랫폼노동 정책 연구> 등이 있다.

정책 사업은 플랫폼노동 권리 찾기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금리인상과 경제위기 정책 자료를 제작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책 네트워크를 강화해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3기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연구, 칼럼 게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