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유통·물류산업 전환, 노조와 정부가 개입해야
[커버스토리⑤] 유통·물류산업 전환, 노조와 정부가 개입해야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2.07 22:05
  • 수정 2021.12.07 2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화 속도 빨라진 유통·물류산업
노동자 권익보호는 밀려··· 산별교섭·사회적 대화 등 필요

노동, 산업전환을 말하다

정부가 탄소중립·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기술을 일터에 활용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목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 미래에 노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여와혁신>도 12월과 1월에 걸쳐 탄소중립·디지털전환이 가져올 산업전환을 다뤄보기로 했다. 12월에는 노동이 바라보는 산업전환을 정리했다. 1월에는 산업전환 정책과 논의구조 속 노동자들의 참여를 다룰 예정이다.

커버스토리⑤ 유통·물류산업 전환과 노동의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유통·물류서비스 산업에서 디지털화 속도는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노동과 정부의 대응은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디지털화가 전 세계 산업의 핵심 의제다. 올해 EU가 발표한 ‘인더스트리 5.0’의 핵심도 디지털화다. 유통산업은 디지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자본과 기술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노동의 대응은 늦다”고 했다. 이어 “그간 산업전환 정책 관련해선 제조업, 금융업 등 주요 산업을 중심으로만 논의의 틀에 올랐다. 사실 유통업 취업자는 전체 산업 중 5위 안에 들고 산업전환 속도가 빨라 대응이 시급한데도 논의에 속도가 안 붙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노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비스노동자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규혁, 이하 서비스연맹)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과 올해 6월 열린 ‘유통산업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 현황 및 대안 모색 토론회’, 11월 진행된 ‘서비스연맹 20대 대선 의제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중심으로 유통·물류서비스 산업과 노동의 변화를 살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난 10월 6일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홈플러스 폐점 사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마트노조
지난 10월 6일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홈플러스 폐점 사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마트노조

유통산업, 온라인 전환 속도↑
노동자는 고용불안·노동강도↑

속도를 중시하는 소비문화와 비대면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쇼핑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 매출에서 오프라인은 3.6% 감소했으나, 온라인은 18.4% 증가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문-물류-배송’을 연결시키는 온라인 물류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업종별 종적 통합을 넘어 업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지털 전환의 특징에 따라 유통업과 물류업의 경계가 사라지는 사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오프라인 매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 내에서도 키오스크, 무인계산대, 무인매장 등 자동화가 확산하는 중이다.

노동자들도 산업의 변화에 따른 노동의 전환을 실감한다. 대형마트 3사 모두 고용인원이 줄었다. 홈플러스는 직원은 2015년 2만 8,492명에서 2020년 2만 1,700명으로 약 24%(6,792명) 줄었다. 같은 기간 이마트는 3만 85명에서 2만 592명으로 약 15%(4,489명), 롯데마트는 1만 3,611명에서 1만 2,877명으로 약 5%(734명) 감소했다. 대형마트 3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장 매각·축소에 나섰으며 이랜드리테일 등 다른 유통업체들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마트 노동자들은 일터가 사라질 수 있단 불안과 신규 채용이 없는 노동강도 증가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은 “MBK의 홈플러스에서 발생하고 있는 폐점,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마트산업 전반에서는 일상적인 구조조정이 소리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마트산업의 고용 없는 성장은 노동자에게는 해고의 위협과 더불어 정규직의 빈자리가 비정규·단시간 노동자 채용으로 채워져 나쁜 일자리 확대로 인한 노동조건의 하락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마트뿐 아니라 유통업계 판매노동자들은 오프라인 매장 축소로 인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서비스연맹이 오프라인 판매노동자(마트·백화점·면세점·교보핫트랙스) 77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72.6%)은 고용불안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백화점, 쇼핑몰 등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각 브랜드가 온라인 유통 채널 강화 전략에 속도를 높이자 고용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하인주 백화점면세점노조 비대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마케팅 전환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며 “자연 퇴사도 많은데 회사는 인력을 채우지 않는다. 빠진 자리는 남은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것이다. 정리해고가 보이면 노동조합이 싸우기라도 할 텐데, 현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리해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온라인 매출을 위한 전시, 홍보, 상담, 샘플시연, AS, 포장 등 매장 노동자들의 노동이 임금에 반영돼야 한다며 이를 올해 공동 요구안으로 내세운 바 있다.

또한 유통업체들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영역에선 노동자의 건강, 적정 수입, 안전 등이 고려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커지는 생활물류산업에는 기존 택배업체와 배달업체에서 유통업체는 물론 정보통신업체, 스타트업까지 진입해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 소비자에게 빠른 속도, 저럼한 가격의 배송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비롯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 계약직이라 법·제도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정민정 위원장은 “새로운 영역에선 노동 기본권조차 없거나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와 하청, 도급 등 외주인력을 사용하고 있다”며 “마트 온라인배송기사의 경우 대형마트 종속성이 매우 높지만 개인사업자로 구분된다. 택배노동자와 유사한 일을 하는데도 산재보험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마트 배송노동자를 비롯한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바로 점포, 음식점, 고객 등에게 배송하는 약 10만 명(고용노동부)은 유통업 노동자들로 분류돼 생활물류법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고객-자본 동맹 아래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는 뒷전

결국 디지털 전환은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고, 유통·물류기업에겐 이윤과 새로운 기회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노동자에겐 대부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국가의 압축 발전 과정에서 노동이 소외된 현상과 디지털 경제로 전환에서 노동이 뒷전이 된 상황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승윤 교수는 “한국사회가 경제성장만 압축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복지제도 틀도 압축적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복지 수혜자 간 동맹현상이 벌어졌다. 짧은 기간 안에 복지국가가 확대되면서 수혜자, 즉 유권자들의 복지서비스에 정부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노동자의 권리나 일자리 질 개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경제로 전환 과정에서는 고객과 자본의 동맹이 이뤄지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가 밀리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이 같은 유통·물류산업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한 전환은 노동과 정부가 전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달 23일 서비스연맹이 '20대 대선의제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노조, 산업과 기술변화에 개입해야

노동조합은 산업과 기술변화에 관여해야 한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제조업은 기간산업이라 자본이 철수하기 어렵지만 서비스산업은 상대적으로 쉽다”며 “만약 현대차에서 파업을 한다면 소비자는 다른 차를 사지 않고 상품을 기다린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은 대체재가 많다. 유통서비스 노동조합 조직률은 3%도 안 된다. 파업의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이런 산업적 특성을 고려해 기존과는 다른 힘의 작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과는 다른 힘의 작동 중 하나는 산업별 노사관계 강화를 뜻한다. 산별교섭은 개별 회사를 넘어 산별 차원에서 노동조건의 최소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유통산업의 온라인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전통적인 임금인상 방식의 투쟁으로 유통산업에서 이길 수 있는 노동조합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위기가 기회라고 본다. 빠른 디지털 전환은 산별노조 제도화의 촉매가 됐다. 노동조합은 단기적으로는 노동자의 이익을 양보한다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노사관계 제도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산별교섭의 약화는 노동조건의 악화로 이어진다. 표준화된 규범이 없어 기업 간 경쟁이 심해지고, 이는 곧 하향 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개별 기업에게 당장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쟁조건을 왜곡해 모든 기업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든다”며 “따라서 노동과 산업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 덤핑’을 막아야 하며, 이는 산별교섭이 강화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문호 소장은 “산업변화 과정에 산별의 관점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며 “산별노조가 건설돼 산업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산별교섭과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정책적 개입이 이뤄져야만 현재와 같은 복잡한 변화 과정에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별 노사관계 강화를 위해선 노동조합법에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시 사용자의 참가 의무화를 명시하는 등 산별교섭이 제도화돼야 하는 과제도 있다.

산별 단체교섭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됐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경우 2017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49%(SOEP·독일 사회경제 패널)가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유통산업 노동자는 39%가 단체협약에 연결된다. 독일의 서비스산별노조 베르디(ver.di)는 디지털화로 변화하는 사업장의 현실에 맞도록 기본 단체교섭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 단체와 수년간 논의를 진행 중이다.(‘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 서비스연맹, 2020)

이 보고서에서 이문호 소장은 “베르디는 새로운 보상체계에 변화하는 노동조건과 직원의 업무량을 반영할 계획”이라며 “기술은 육체적 작업을 더 쉽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작업 강도와 심리적, 정서적 요구도 증가한다. 이는 순수한 업무 활동뿐 아니라 근무 환경도 보상체계 설계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산업 내 불평등 해소 위한 여론화,
공정한 전환 보장 위한 사회적 대화도 중요

이 외에도 이승윤 교수는 서비스연맹만의 관점으로 산업 전환 관련 요구 사항을 여론화할 것도 제안했다. 이승윤 교수는 “서비스산업 내 불평등이 우리나라 노동시장 불평등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런 관점에서 서비스연맹은 저임금 서비스노동자의 노동권과 근로환경 개선에 집중해, 이 불평등 해소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 내 전체적인 불평등을 완화시켜나가겠다는 강력한 관점을 갖고 요구사항을 힘 있게 밀고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시 이해 당사자들의 공정한 전환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는 “유통·물류산업에서 플랫폼화되는 직무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기존엔 사용자를 특정해서 교섭을 했는데 이젠 사용자 특정도 어렵고, 노조 결성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용자가 사용자의 의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노사관계보다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서비스연맹도 대통령 직속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를 설치해 유통, 물류, 모빌리티, 스마트홈, 플랫폼, 관광 등 서비스 산업별 전환 이슈를 점검하고 고용·노동 관련 사회적 기준과 제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는 산업전환 시기 노동자 고용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부처별 역할을 부여하고 각종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또한 고용을 전제로 한 기업 지원책을 논의하고 집행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환 준비, 직업훈련도 필요

직업훈련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승윤 교수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직업훈련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보편적 직업교육이 상당히 필요하다”며 “서비스연맹이 직업교육의 보편화와 질 향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부에 제안하면 어떨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독일은 유통업 노동자의 80%가 직업 훈련을 이수했다”며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에 ‘종사자 고용 및 직업능력 향상 지원’ 조항을 신설하고 ‘유통산업 구조조정 과정의 고용유지와 발전’ 관련 사항을 추가(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미국 전미식품상업노동조합(UFCW)은 기술변화로 인한 직무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자체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유통판매 노동자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독일의 경우에는 공동결정제도를 통해 기술 변동으로 인한 조직 변화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갈등을 노사가 공동으로 파악해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성혁 원장은 “업종별로 지자체, 유통업체, 노조, 비영리단체와 시민의 공동 출자를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 기술변동에 따른 직무 전환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향후 전환 과정에서 적응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비스연맹은 서비스산업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전환 시기 국가책임 강화 ▲유통산업 전환에 따른 법·제도 정비 ▲투기자본 규제법안 마련 ▲플랫폼 기업 규제 방안 마련 ▲택시산업 구조혁신 등 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의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선 ▲코로나 위기 관광산업 고용보장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방안 마련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 의무화 ▲주4일제 도입 ▲최저임금 현실화 및 최고임금제 도입 ▲성별 임금격차 해소 ▲유통·배송노동자 야간노동 근절 ▲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안전권 보장 등을 서비스연맹은 내년 대선 의제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와혁신〉은 12월호에서 탄소중립 이행과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산업전환의 모습과 노동의 변화를 살펴봤다. 1월호에선 구체적인 정부의 정책과 전환 논의 과정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 과정에 노동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방법도 모색해보려 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