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산업전환은 “석탄과 함께 사라지라는 것”
[커버스토리②]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산업전환은 “석탄과 함께 사라지라는 것”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12.06 11:46
  • 수정 2021.12.0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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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할 거니까 받아들여” 산업전환은 ‘통보’
폐쇄 다가오는데···고용·임금보전대책 없이 시간 흐르는 중

노동, 산업전환을 말하다

정부가 탄소중립·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적극적으로 줄이고, 새로운 기술을 일터에 활용해 미래로 나아간다는 목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 미래에 노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여와혁신>도 12월과 1월에 걸쳐 탄소중립·디지털전환이 가져올 산업전환을 다뤄보기로 했다. 12월에는 노동이 바라보는 산업전환을 정리했다. 1월에는 산업전환 정책과 논의구조 속 노동자들의 참여를 다룰 예정이다.

커버스토리② 닫을 계획 세워진 석탄화력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검은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땅을 뒤덮은 태양광 패널이다. 기후위기를 조금이나마 늦추려면 석탄화력발전소가 없어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태양광 패널을 보고 있으면 두려워진다. 그래서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마음도 새까맣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가시화됐다. 정부는 2034년까지 우리나라 석탄화력발전소 30곳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발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지난해 삼천포 1·2호기와 보령 1·2호기가 폐쇄됐다.

노동자들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일터가 곧 없어진다는데 어디서 일해야 할지, 일자리를 알아보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이사를 가야하는 건지 알아서 고민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돼 다른 발전소로 이동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이다. 그 발전소도 어차피 나중엔 없어진다. 정부정책 때문에 일터에서 나갈 날이 정해졌는데 각자도생이다.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도 없다. 이야기를 해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말이 정확하다. 청취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대책’을 세워야 한다.

ⓒ 클립아트코리아 

정해진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전소 잃게 된 노동자들

그간 우리나라의 전기는 공공부문이 도맡아 생산해왔다. 본래 한국전력이 독점적으로 전력을 생산·공급해왔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전력산업이 구조 개편되며 쪼개졌다. 현재는 한국전력공사의 5개 발전사(한국동서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다른 도시로 송전하는 구조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석탄화력발전소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됐다. 전력부문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공급체계를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0곳 중 30곳을 폐쇄하고, 30곳 중 24곳을 LNG발전소로 바꿀 예정이었다. 하지만 10월 탄소중립위원회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당초 26.3%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여기서 40%는 평균치다. 각 부문별 감축 목표는 각각 다른데, 발전부문은 44.4%로 조정폭이 가장 크다. 더 많은 석탄화력발전소가 빨리 사라져야만 한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만 5,440명이다. 이중 정규직이 1만 3,846명, 비정규직(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설비 운전 등)이 1만 1,594명으로 추정된다. 노동계는 석탄화력발전소가 LNG발전소로 전환된다면 이들 모두가 발전소에 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LNG발전소가 석탄화력발전소보다 공정이 간단해 사람이 덜 쓰이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세 가지 공정을 거쳐 전기를 만든다. 어느 하나라도 끊어지면 전기를 생산할 수 없기에 노동자들은 ‘흐름공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만에서 석탄을 실어와 발전기에 넣는 공정, 발전기를 돌리는 공정, 연소 과정에서 나온 환경물질을 저감하는 공정이다. 이중 발전기를 돌리는 공정은 발전사 정규직이, 나머지는 비정규직이 맡는다. 연속된 공정임에도 비정규직이 맡은 부분이 많은 셈이다. 앞서 본 것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숫자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LNG발전소로 전환되면 비정규직들이 해오던 공정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LNG는 가스를 냉각시켜 액체로 만든 것이다. LNG를 연료로 사용하면 석탄을 나르고, 환경물질을 저감하는 설비를 따로 가동할 일은 없다. 남태섭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은 석탄화력발전소가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로 전환되면 일자리가 43% 정도 줄어들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탄소중립위원회가 NDC를 샹향 조정하기 전의 전망이다. 내년 발표될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NDC 목표치를 반영할 경우 일자리 감소분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라진 발전소 노동자들 대부분
사라질 발전소로 이동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후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실제로 있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보령 1·2호기 폐쇄 이후 노동자들의 고용여부를 발전사에 질의한 결과, 비정규 노동자 285명 중 16명이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사실상 해고”라 말했다. 나머지 263명은 다른 발전소로 이동재배치되고, 6명은 정년퇴직했다. 263명의 노동자들은 재배치된 발전소에서 일하기 위해 살던 지역을 떠나야 했다.

문제는 이들이 옮겨간 다른 발전소도 향후 폐쇄된다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때마다 다른 발전소로 옮기고, 또 옮기길 반복할 수는 없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 가정을 꾸린 노동자들도 많다.

2017년 폐쇄된 서천 1·2호기와 영동 1·2호기의 상황도 같다. 서천에서는 218명 중 13명, 영동에서는 10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 노동자 1,407명 중 총 39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정규직들도 불안하다. LNG발전소에 필요한 정원보다 더 많은 정규직이 발전공기업에 있다. LNG발전소로 전환됐는데 정원보다 현원이 더 많으면 임금을 나누거나 무급휴직을 할 가능성이 있다. 발전공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들은 사무직과 기술직으로 나뉜다. 현장에 투입되는 기술직은 발전기를 가동하고, 설비를 감독하는 역할 등을 한다.

송민 한국노총 공공노련 발전5개사노조통합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정규직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가 없어진다는데 고용이나 취업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나. 대통령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했고, 그 뜻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모든 피해가 이해당사자들에게만 돌아가지 않게 나누겠다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공공노련과 발전5개사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노동조합이 10월 13일 서울 탄소중립위원회 앞에서 ‘발전소 노동자 외면하고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서 송민 발전5개사노조통합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DB

발전공기업에게 신재생에너지
사업 맡겨 공공이 에너지전환 주도해야

전기 생산이 민간에 대폭 개방되는 것도 노동자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에너지 민영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발전5개사노조는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시장의 70% 이상을 민간이 점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에너지가 정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면 가격과 품질을 담보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오히려 에너지 빈곤층을 양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민간 재생에너지부문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도 안정적일 가능성이 적다. 공공노동자들은 그동안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남태섭 정책기획실장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 발전공기업에 재생에너지 사업기회를 주지 않으면 ‘너네는 석탄과 함께 사라져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전기에너지의 공공성 차원에도 문제가 된다”며 “새로 만들어지는 신재생에너지 시장에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뛰어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전기민영화랑 다를 게 없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공공성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공공이 에너지전환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전공기업에게 대규모 신재생에너지사업을 진행할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로 창출되는 일자리를 기존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안이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때문만이 아니라, 탄소중립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고 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가격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전5개사부터 통합해야 한다는 게 발전5개사노조의 생각이다. 쪼개진 채 서로 경쟁하지 말고 큰 전력공기업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전환을 함께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발전사들은 발전분야 구조개편 이후 공공기관 경영평가 점수를 두고 경쟁해왔다. 발전5개사노조는 발전사들이 경영평가 대응을 위해 불필요한 사업을 확장하는 등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공공성과도 더 멀어졌다고 말한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조합들도 공공중심의 재생에너지전환과 발전사 통합에 동의한다. 여기에 발전 비정규직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근본적인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발전사가 통합되면서 발전 비정규직들이 정규직화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단 목표부터 세웠던 탄소중립사회로의 전환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불렀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거나, 이해당사자들과의 협의는 지금도 부족하다. 남태섭 정책기획실장은 ‘선 목표치-후 대책’이 아닌 ‘선 거버넌스-후 목표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 거버넌스에서 공동의 결정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거버넌스 안에서 석탄화력발전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송민 위원장도 “간담회같이 책임이 없거나 비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고, 이해당사자를 제대로 된 회의 성원으로 부르는 게 제일 시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11월 24일 ‘공공운수노조 기후정의의 날’을 맞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그러나 또 ‘바깥’에서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

“저도 사실 두려워요. 물론 하청업체였지만 20년 넘게 발전소에서 일했고, 국민에게 전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갑자기 업종을 전환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루아침에 제가 마치 피해자가 돼 버린 느낌이에요.”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노동자들은 회의장 밖에 있다. 그래서 폐쇄를 앞둔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섰다. 이태성 간사도 기자회견과 1인 시위, 각종 언론 인터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일자리는 줄어든다고 하는데 고용에 대한 확답은 없다. 정부에 대책과 대화를 요구한 지는 한참이다. 노동자들은 또다시 목소리를 ‘밑에서 위로’ 올리고 있다. 이태성 간사는 “이대로라면 노동자들은 알아서 이직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대규모 해고도 기정사실화라고 본다”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과 정의로운에너지전환연구팀은 4월 발전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3,634명의 응답자 중 51.6%는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소 등 유사한 직종으로의 전환을 선호했다. 다른 직종이어도 상관없다는 응답자는 33.4%, 반드시 동일한 직종이어야 한다고 말한 응답자가 10.2%였다. 이태성 간사는 이 조사를 정부가 대대적으로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발생을 했고, 이런 데이터도 정부에서는 확인을 못 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등록해서 선호하는 직무분석과 추적관리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의 절반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고용은 담보되지 않고 있다. 이태성 간사는 충청남도에서 ‘고용안정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으로 풍력발전소 교육을 진행했지만, 노동자들의 호응은 적었다고 전했다. 8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도 취업과는 연계되지 않고, 설렁 취업한다더라도 그동안의 경력과 임금은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선고용-후교육’을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든 에너지전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 중이다. 신대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지부장은 “늦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노동계, 지역사회가 산업전환에 지금보다 빠르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했던 산업전환은 노동자들에게 통보로 느껴질 뿐이다.

“우리 노동자들한테는 통보식이에요. ‘2050년에 탄소 다 없앨 거야, 어떻게 생각하니?’ 이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우리 비정규 노동자들 탄소중립 하면서 어쩌면 합법적으로 밀려나가는 거예요. 하청회사 쓰는 이유가 뭐겠어요. 정리하기 쉬우니까요. 결국 제가 보니까 우리는 이러면 또 거리에서 외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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