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로 남고 싶은 비정규직 8,204명이 발전소에 남아있다
노동자로 남고 싶은 비정규직 8,204명이 발전소에 남아있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2.01 12:54
  • 수정 2023.02.01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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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연구 발표
“적극적인 전환대책은 사실상 전무···정부는 3억짜리 신규연구만 또 발주”
공공운수노조가 1월 3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경상정비를 담당하는 1차 하청업체 소속 A씨는 호남발전소가 폐쇄되자 보령으로 재배치됐다. 호남발전소와 가까운 여수발전소 배치를 희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재배치를 희망하는 사업소를 3지망까지 제출하라고 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재배치가 이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1년 전 셋째 아이가 태어났고, 첫째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라 육아 문제를 부인 혼자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보령으로 홀로 이주했지만, 코로나19 상황과 겹쳐 부인 혼자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 재배치 3개월 만에 육아휴직을 냈다.

“정확한 폐쇄 시점이 거의 한달 전에 나왔어요. 그때서야 진짜 폐쇄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가족 전체가 보령으로 이주하려면 첫째 아이의 병원,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새로운 집 등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달 전 폐쇄 통보는 이 모든 것을 불가능한 선택지로 만들었다.

A씨의 이야기는 사회공공연구원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연구’ 심층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발전소 비정규직들은 일터가 없어질 정확한 시점을 모른 채(82.2%) 고용불안을 느끼고(79.3%) 있었다. 연구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발전산업노조, 발전비정규노조 전체대표자회의가 사회공공연구원에 의뢰했다.

정부는 최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2기를 폐지하는 동시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할 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은 다른 발전소로 재배치하겠다는 게 정부가 내세우는 대안이지만, A씨의 이야기처럼 노동자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모든 노동자 재배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배치는 하청업체의 여력에 전적으로 의존해 수용 가능한 인력을 넘어선다면 향후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발전 비정규직들이
경험한 재배치는 ‘허구’였다

발전소 비정규직은 발전사 소속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연료운전과 경상정비 업무의 외주화로 인한 1차·2차 하청(KPS·KPS 하청 포함), 시설·경비·청소·소방 등 노동자가 포함된 자회사로 나뉜다. 2021년 5개 발전사의 간접고용 노동자는 1만 1,198명이었다. 여기서 LNG,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발전소를 제외하고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추리면 8,278명이다.

2022년엔 폐쇄된 발전소에서 다른 발전소로 423명의 노동자가 재배치됐다. 정년퇴직도 10명이 있었고, 58명의 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래서 보고서는 2022년 기준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을 총 8,204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앞서 보령으로 재배치된 A씨와 같이 “재배치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지금과 같은 재배치는 허구적이거나 기만적인 과정에 불과”했다. 폐쇄 시점을 갑자기 통보하거나, 이주 여건 마련을 비정규 노동자에게 온전히 부담시키는 것은 통상적이었고 재배치된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 등이 이전보다 열악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도 3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하라’ 기자회견에서 “발전소 노동자들은 에너지 정책에 상식과 정의, 공정이 없다고, 오히려 폭력적이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태성 간사는 “정부는 마치 레고 블록을 끼워 맞추듯 여기 있는 노동자들을 저기로 옮기면 된다고 한다. 그 자리가 차라리 있었으면 좋겠다”며 “어디로든지 가서 우리 가족을 지키고, 국민에게 전기를 생산하며 일하는 노동자로 남고 싶다”고 했다.

보고서는 “재배치는 개별 기업의 여유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자체 여유율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그 임계치 또한 명확하다”고 짚었다. 개별 기업의 고용은 물량 따내기의 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하고, 발전소와의 계약에 매여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지금 현재로서는 2차 하청의 계약해지만 이뤄지고 있지만 새로운 물량을 따내지 않으면 재배치는 매우 빠른 시간 안에 1차 하청 노동자에게도 선별적으로 진행되거나, 아예 집단적인 해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발전 비정규직 79.3% 고용 불안 느껴
83%, 고용 보장 책임 주체는 ‘국가’

여력이 없는 개별 협력사는 노동자에게 퇴사를 강요하기도 했다. 울산화력발전소의 자회사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본래 만 65세 정년 이후에도 5년을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회사는 폐쇄에 따른 인원감축안을 노동조합에 위임해 계약해지 대상을 노동자들에게 선별하도록 시켰고, 만 65세를 넘긴 노동자들은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동자들은 퇴사로 인한 자연감소분으로 분류됐다.

만 65세를 넘긴 노동자들을 퇴사시켜도 인력이 줄어들지 않자 자회사는 ‘잡셰어링’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끼리의 갈등을 겪어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심한 정도를 넘어섰죠. 지금은 거의 같은 직원들이 친했던 직원들도 서로 편이 나눠져 버렸고 안에서 업무가 잘 진행되지 안 될 정도까지 그런 상황까지 왔거든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네가 가야지 왜 내보고 가라’ 이런 식의... 그러면서 사측은 마치 팔짱 끼고 쳐다보듯이 알아서 결정하시라 이런 식으로 던져놔 버렸단 말이야.” (B자회사 노조간부 J)

보고서에는 5개 발전사에 속한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6월 2일부터 29일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담겨 있었다. 설문조사엔 발전 비정규 노동자 2,003명이 응답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후위기가 심각(61.7%)하다고 인식하고, 고용이 보장된다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정책을 찬성(74%)하고 있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노동자들의 불안을 없애주지 못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발전 비정규 노동자의 79.3%가 고용이 불안하다고 인식했다. 발전소의 운영이 중단되면 바로 재취업 가능하다는 의견은 1.8%에 불과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재취업 가능하다는 응답은 22.9%였다.

응답자들은 고용보장을 책임져야 할 1순위가 국가(83%)라고 생각하고, 고용을 담보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엔 회의적이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 대책을 묻는 질문에 81.7%가 고용유지 지원을 꼽았다. 직업훈련지원(4.2%), 구직활동지원(5.2%), 신산업 육성지원(7.9%) 등은 낮게 나타났다. 재교육·재취업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론 프로그램 수료 시 취업보장(62%)을 꼽았다.

기자회견을 마친 발전노동자들이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을 위한 연구결과서를 전달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정부, 연구만 할 때가 아니다
불안에 가슴 졸이는 발전노동자와 대화해야

설문조사에서 발전소 폐쇄시기를 정확히 안다고 응답한 비정규 노동자는 17.7% 정도였다. 이를 두고 임용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기자회견에서 “발전소 폐쇄시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82%라는 것은 정보 공유나 소통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윤석열 정부는 사후적이고 일시적인 지원 중심의 탈석탄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시 연구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산자부는 향후 1년 동안 전통 에너지 산업의 탄소중립 영향과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연구 용역을 진행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연구 용역엔 2억 8,500만 원 정도를 투자한다. 앞선 2021년 산자부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방안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발전소 비정규직 69.4%가 해고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게 연구의 결론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가 대화 없이 신규연구를 또 발주했다”며 정의로운 전환엔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이 선행돼야 하고, 발전노동자들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가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이태성 간사는 “피해 인원 등 모든 것이 밝혀진 상황에 다시 연구 용역이 웬 말인가. 지역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며 “더 큰 목소리로 우리는 사회적 대화를 요구한다. 공정과 상식을 요구하는 윤 정부가 답해야 할 때”라고 발언했다.

제용순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위원장도 “지구 환경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하자는 데 이미 발전노동자들은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아무런 대책 없이 급격하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정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또 다시 일자리를 잃고 죽어 나가는 발전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발전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의로운 전환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발전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가슴을 졸이며 일하고 있다”며 “정부는 발전노동자들을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인정하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논의테이블을 마련해 노동자의 고용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