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노동자와 지구는 공존할 수 있을까?
발전 노동자와 지구는 공존할 수 있을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6.07 19:24
  • 수정 2022.06.07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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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토론회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참여하는 노동참여적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

“한국의 저탄소 정책은 냉정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자회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끼리 먼저 나갈 사람을 정하라. 아니면 잡쉐어링(일자리 나누기)이 최종 답이다’라는 통보만 있었습니다. 한순간에 직장에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사업장 내에서는 고용 문제로 서로 시기하고, 언제 곧 내가 대상이 될까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지구를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는 일은 모든 인간을 위한 고귀한 일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온실가스의 주범은 자회사 노동자가 아닙니다.”

이성하 사무국장은 ‘사라져야 할’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노동조합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EWP서비스지부 사무국장이다. EWP서비스는 한국동서발전의 자회사다.

정부는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2020년 선언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도 밝혔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없어져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기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커졌다. 그리고 고용불안은 실제 위기로 닥쳤다. 동서발전의 호남화력발전소도 지난해 말일 폐쇄됐고, 환경시설위생직 노동자 13명 중 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보안 노동자 30명은 내년 1월 14명이 돼야 한다.

조합원들은 이성하 사무국장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도와주는 게 노동조합 아니냐. 지금 노조는 뭐 하는 거냐.” 이성하 사무국장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무엇을 답해줄 수 있을지 갑갑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토론회가 7일 오후 3시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가속화·대규모화 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청사진은 없어”

석탄화력발전소가 줄줄이 폐쇄를 앞둔 상황에서 발전 노동자와 지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위원장 박해철, 이하 공공노련)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이라는 이름으로 7일 오후 3시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공공노련에는 석탄화력발전소 정규직과 자회사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다.

개회사에서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석탄화력발전소에는 발전 공기업뿐만 아니라 자회사와 협력사 등 수많은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자신의 고용이 달린 정책 결정 과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공공노련은 탈석탄 정책의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발전 노동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내겠다”고 했다.

발제는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본부장과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맡았다. 공공노련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가 LNG 발전소로 전환될 경우 동일 용량의 발전소를 기준으로 투입인력은 43%가 감소될 예정이다. 이 때 발전 공기업 정규직은 20.5%의 인력이 감축되는 반면, 협력사는 39.6%가 감축될 전망이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많이 발전소에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정희 본부장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의 영향은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미치지만, 그 영향의 정도는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며 “지금까지는 자회사나 협력회사에서 (인력)감축이 나타났다. 그러나 앞으로 폐쇄가 가속화·대규모화 되면서 발전 공기업 정규직의 고용도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일자리 전환을 앞둔 노동자와 화석연료산업 인근 지역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 본부장은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은 목표만 설정되었을 뿐 이행의 로드맵과 구체적인 이행수단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여기서 이정희 본부장은 ‘청사진 없는 폐쇄’라는 표현을 썼다. 탄소중립을 실현할 에너지 산업구조와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참여적 거버넌스 만들기 위해
노조는 어떤 전략 써야 하나 


이정희 본부장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는 중층적인 구조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정희 본부장이 말하는 중층적 거버넌스는 ▲고용보장원칙을 확립하는 사회적 대화(탄소중립위원회에 설치) ▲고용보장협약을 체결하고, 전환계획과 조건을 확정하는 초기업별 단체교섭 ▲최종으로 확정계획을 마련할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이다.

중층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간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정부에 적극적인 소통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 있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의 대응전략으로는 공공성을 축으로 삼는 사회연대의 강화와 조합원을 투쟁의 주체로 삼는 내부 민주주의의 확립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공공성 투쟁의 기조는 발전 산업 통합과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립,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와 연대(공동전선)를 구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석탄화력발전소와 관련된 노동조합 간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발전 노동자들이 노동자·시민을 포괄하는 폭넓은 연대를 기획해 대국민을 상대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알려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있는 기구인 탄소중립위원회 공정전환위원회를 활용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체제(가)’를 구축하는 일도 노동조합의 과제로 꼽혔다.

더불어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조합원을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정책역량을 개발하고, 기후 관련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발전 노동자들은 발제에 공감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성하 공공산업희망노조 EWP서비스지부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의 실직이 불가피할 것으로 확인되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구제대책은 직무전환 교육, 재취업 지원과 같은 모호한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저탄소 정책의 해결책은 자회사 노동자의 생존권 희생이 아니다”며 “자회사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에 함께 연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갑희 동서발전노조 당진화력지부 위원장도 “고용에 있어 합리적인 대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산업부와 발전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이 기구를 기반으로 탄소중립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며 “우리 발전 노동자들은 탄소중립을 반대하지 않으며, 특정 계층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