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U 출범①] 제약‧바이오 노동조합들, ‘고용안정’ 위해 NPU로 뭉쳤다
[NPU 출범①] 제약‧바이오 노동조합들, ‘고용안정’ 위해 NPU로 뭉쳤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5.31 15:56
  • 수정 2022.06.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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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준비기간 거쳐 화학노련 소산별노조 ‘NPU’ 6월 출범 예정
‘노동조건 평준화’보다 ‘고용안정’ 제1목표

NPU 출범① 제약 노동조합들이 산별노조를 만든 이유

전국제약‧바이오노동조합(National Pharmaceutical & Bio Labor Union, 이하 NPU)이 오는 6월 중 출범을 앞두고 있다. NPU는 한국노총 화학노련 내 제약‧바이오 업종의 노동조합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산별노조다. 1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마무리한 후 마침내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NPU는 현재 16개 노동조합*이 결합해 있다. 이 중 9개 조직은 6월 출범까지 조직형태 전환이 가능하다. 나머지 조직도 조합원 투표를 거쳐 순차적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산별노조 출범 전 연합단체로서 안덕환 화학노련 한국노바티스노동조합 위원장이 임시로 NPU 의장을 맡고 있다. 출범 이후 정식으로 대표자를 선출할 예정이며, 16개 조직이 모두 전환될 시 NPU는 약 3,000여 명의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화학노련 내에는 제약업종 산별노조로 2012년 설립된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이 있다. 이들은 왜 NPU를 다시 설립하게 된 것일까? 산별노조로써 NPU가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지난 5월 9일 서울 중구 서울역 아렉스 회의실에서 NPU를 만났다.

NPU 산하 조직(가나다 순)
▲노보노디스크제약노조(위원장 허남진) ▲바이엘코리아노조(위원장 송진중)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노조(위원장 박영) ▲암젠코리아노조(위원장 이경환) ▲알보젠코리아노조(위원장 김정훈)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노조(위원장 이진영) ▲입센코리아노조(위원장 최창우) ▲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노조(위원장 박창규) ▲한국노바티스노조(위원장 안덕환) ▲한국머크노조(위원장 조영석) ▲한국베링거인겔하임노조(위원장 김준태) ▲한국비아트리스노조(위원장 강승욱) ▲한국아스트라제네카노조(위원장 최정환)▲한국얀센노조(위원장 황의수) ▲한국화이자제약노조(위원장 정상인) ▲현대약품노조(위원장 허성덕)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에도
영업 노동자는 감소

제약‧바이오산업은 꾸준히 성장하는 산업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4년 19조 3,704억 원에서 2020년 23조 1,722억 원으로 확대됐다. 또한 국내 바이오의약품 시장도 2016년 1조 8,308억 원에서 2020년 3조 3,029억 원으로 증가했다.*
*의약품은 크게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으로 나뉜다. 합성의약품(Chemical drug)은 화학물질을 바탕으로 개발한 의약품이며, 바이오의약품(Biologics)은 사람 혹은 생물체에서 유래한 물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의약품이다. 예컨대 아스피린은 합성의약품, 백신은 바이오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종사자 수도 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규모는 2011년 823개 업체, 종사자 수 7만 4,477명에서 2020년 1,398개 업체, 종자사 수 11만 4,126명으로 커졌다.

그런데 영업 노동자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11년 영업직 비중은 전체 32.9%(2만 4,535명)였지만, 2019년 24.9%(2만 5,580명)로 줄어들었다. 특히 2020년 영업직 노동자의 수는 2만 5,317명으로 처음으로 전년 대비 영업 노동자 수가 순감소를 보였다.

산업의 성장세와는 달리 영업 노동자의 비중은 작아지고 있다. 그 이유로 ▲법 규제로 인한 신약 도입의 어려움 ▲중점 사업(특허의약품) 위주의 투자 ▲마케팅 트렌드의 변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고용감소 등으로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요약했다.

“점점 더 슬림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영업 노동자 1명이 100~200%의 성과를 냈다면, 지금은 200~300%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개인당 성과를 더 이상 올리기 힘든 상황에 왔다. 성과를 내려면 다른 제품을 들여오는 등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동기를 회사에서 줘야 한다. 그런데 각종 법 규제 때문에 새로운 의약품을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제약‧바이오산업의 수익은 오리지널이라고 불리는 특허의약품에 달려있다. 신약 개발 시 제약사는 20~25년간 독점으로 제품을 제조‧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특허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제약사도 비슷한 약을 개발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의약품을 제네릭(Generic, 복제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갈수록 신약 개발이 어려워지고, 개발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제네릭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각국 정부는 신약 출시의 안전성 검증 절차를 강화하면서,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오리지널보다 저렴한 제네릭의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제약‧바이오업계의 입장에서 중점사업부 이외 모든 영역에서 비용절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NPU는 “중점사업부가 아닌 사업부의 슬림화라는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다만 구조조정의 규모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조합원들도 인식한
기업별노조의 한계

하지만 제약‧바이오산업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업직 고용 감소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덕환 NPU 의장(한국노바티스노동조합 위원장)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어서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니다. 단순히 경영합리화를 위해 줄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라는 형태로 정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덕환 NPU 의장(화학노련 한국노바티스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그런데 문제는 ERP를 통한 고용축소를 기업별 노동조합에서 대응하기는 힘들다는 데 있다. 영업 노동자에게 ERP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허성덕 현대약품노동조합 위원장은 “외국계 제약회사와 달리 국내 제약회사 영업부에는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이 거의 없다. 정말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덕환 의장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현시점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퇴직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이 억지로 사인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며, 개별 기업의 개별 노조가 이루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ERP를 막는 데 성공한 사례도 없었고, 노동조합이 칼자루를 쥐고 행사한 ERP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러한 선례 만드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판을 뒤집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ERP에 사인하지 않는다면 회사로써는 인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강제로 내보낼 수 없다.”

제약‧바이오업계 노동자들도 기업별 노동조합을 뛰어넘은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인식 차이를 크게 느낀다. 제약 노동자들도 뭉쳐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은 과거 산별노조 전환을 시도했다가 조합원 투표 결과 부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조합원의 인식은 당시와 사뭇 다르다는 게 강승욱 한국비아트리스노동조합 위원장의 설명이다.*

“최근 조합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한국비아트리스노동조합이 과거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일 때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붙였는데 부결된 적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자들끼리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IPA) 등으로 뭉쳐서 정보를 공유하고 노동조건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오히려 ‘(산별노조로) 갈 거면 빨리 가자’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기업별 노조가 해결할 수 있는 의제가 많지가 않다. 힘이 부친다는 것을 조합원들도 몸소 체험하기 때문에 산별노조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 같다.”
*화이자제약은 2020년 11월 화이자제약과 비아트리스로 분할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도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과 한국비아트리스노동조합으로 나누어졌다.

분할로 작아지는 노동조합
‘산별노조’ 울타리 필요해

더불어 제약‧바이오산업의 비용절감 과정에서 회사의 분할‧합병‧매각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의 필요성도 자연히 늘고 있다.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는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컨슈머헬스케어 사업부에서 일반의약품 담당 조직과 건강기능식품 담당 조직이 분할돼 2021년 10월 설립된 회사다. 분할 이전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노동조합에서 집행부를 맡았던 이진영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은 분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설립과 NPU 가입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2020년 분할 발표 이후 오펠라헬스케어 설립 과정 중에 일반의약품을 담당하는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ERP로 정리됐다.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는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이기에 동일한 근로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작아진 만큼 언제든지 매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남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크게 느끼고 있다. 더 큰 조직에 소속돼야 원활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NPU에 가입했다.”

최창우 입센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입센코리아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최창우 입센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은 “글로벌 입센 차원에서 일반의약품 사업부를 매각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구조조정도 여러 번 진행했던 전례가 있다. 또다시 그러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며 “입센코리아는 총직원이 50명이며, 노동조합 규모는 그보다 더 작다 보니 회사를 상대할 때는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별전환은 당연한 의제였다. 산별노조라는 울타리가 없다면 노동조합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도 했다”고 전했다.

차별화된 산별노조
NPU의 향후 목표는?

다만 NPU는 강력한 중앙 집행 구조, 단일한 노동조합을 강조하는 기존 산별노조와는 다소 다르다. NPU는 “기존 산별노조의 장점과 기업별 노조의 장점을 섞었다”면서 “각 지부의 역할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공동의 아젠다는 산별노조 차원에서 대응하자는 취지다. 각 노동조합의 재정적 부담도 최소화하는 방향이다. 기존 산별노조가 중앙집행부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NPU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별노조의 가장 큰 효과는 산업별‧업종별 노동조건의 평준화다. 반면 NPU의 설립 취지는 제약산업군 노동자의 실질 소득 감소 및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의 배경 속에 발생되는 고용불안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NPU는 “특히 제약 노동조합은 각 회사별로 노동조건이나 단체협약 수준의 차이가 크다. 이를 일괄적으로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위험에는 함께 힘을 합쳐서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서 NPU가 꾸려졌다”고 전했다.

NPU 출범 이후 첫 행보는 화이자제약의 비대면 영업에 대한 대응으로 전망된다. 안덕환 의장은 “현재 구체적으로 화이자에서 고용불안이 가시화된 상태다. 화이자에서 비대면 영업 확대를 빌미로 대규모 ERP을 시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NPU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막는다면 다른 회사들도 섣불리 사람을 자르는 경영합리화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