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U 출범②] “화이자의 비대면 영업 확대, 경영적 오판이다”
[NPU 출범②] “화이자의 비대면 영업 확대, 경영적 오판이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5.31 16:14
  • 수정 2022.05.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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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U 출범 이후 첫 과제, 화이자의 ‘비대면 영업’ 대응
​​​​​​​비대면 영업 빙자한 인위적 ‘구조조정’ 막아야

NPU 출범② 비대면 영업,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왼쪽부터 허남진 화학노련 노보노디스크노동조합 위원장, 정상인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 위원장, 최정환 한국아스트라제네카노동조합 위원장, 최창우 입센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글로벌 화이자는 막대한 백신 머니를 벌어들이고 있다. 글로벌 화이자의 2021년 매출액은 약 97조 원으로 2020년 대비 95% 증가했다. 한국화이자제약 역시 2021년 매출액 1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화이자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1월 12일 글로벌 화이자는 비대면 영업 확대 및 영업 노동자의 수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인 한국화이자제약노동조합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한국화이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오는 7월경 운영계획이 나오는데, 공공연히 하반기에 대대적인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화이자는 전 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화이자의 행보는 향후 전 세계 제약‧바이오산업의 표준이 된다. 현재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상식이 되어버린 ‘비즈니스 유닛 체제’* 역시 2009년 화이자에서 먼저 도입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화이자의 일은 화이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산업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출범한 NPU가 첫 과제로 화이자의 비대면 영업에 대응하기로 한 배경이다.
*비즈니스 유닛(Business Unit) 최고경영자 1인에 의해 주요 결정이 내려지는 방식이 아닌 특정 단위의 사업부의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사업 방식.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영업

비대면 영업과 대면 영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병원‧약국‧클리닉 등 제약사 고객들을 이메일‧화상회의 등 비대면 방식으로 만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대면 영업과 비대면 영업은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고 말한다.

“비대면 영업은 정보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대면 영업은 인간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대면 영업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만, 정보전달만이 영업 노동자의 일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정보전달이지만, 그 이전에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전제된 상황에서 매출이 나왔다.”

해당 대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약‧바이오산업 영업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돌이켜봐야 한다. 제약사의 주요 고객인 병원‧약국‧클리닉 등에서는 주로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이 정해져 있다.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은 의사 혹은 약사의 경험칙이나 해당 기관의 관례에 따른다.

여기서 영업 노동자들은 고객들에게 자사의 의약품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하지만 가격이 대폭 낮거나 혹은 효능이 훨씬 우월하지 않는 이상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만 성공적인 영업은 힘들다. 영업 노동자들이 ‘인간관계’라고 말하는 지점에는 ‘자사의 의약품을 한 번이라도 사용하도록 만드는’ 각종 노하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은 대면 활동 자체를 가로막았다. 영업 노동자는 물론 고객과 제약사 모두 어쩔 수 없이 지난 2년여간 비대면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안덕환 NPU 의장(한국노바티스노동조합 위원장)은 “회사가 예전부터 도입하고 싶었던 비대면 영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고객들이 비대면 영업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코로나19가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비대면 영업을 받아들이고 있다. 고객도 옛날처럼 ‘절대로 안 된다’라는 식이 아니다. 영업 노동자들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면 영업이 불러온
고용불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영업이 자리 잡으면서 현장 영업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게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비대면 영업을 하다 보니까 솔직히 옛날보다 할 일이 줄어들었다. 업무 자체가 이전에는 고객을 10번 만났다면 현재 3~4번 정도다. 고객이 사실 만나주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오는 불안감이 있다. 요컨대 예전보다 자신의 업무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대면 영업은 불가능했다. 비대면 영업은 궁여지책으로 활성화됐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제약‧바이오업계의 매출은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NPU에 따르면, 2021년 설립된 오펠라헬스케어코리아를 제외한 NPU 산하 15개 회사의 2019년 평균 매출은 2,697억 원인데 비해 2021년에는 3,318억 원으로 약 160% 상승했다.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대면 영업이 아닌 비대면 영업을 해도 매출이 늘어나는 상황이 회사로 하여금 영업 노동자를 ‘없어도 되는 인원’이라고 간주하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영업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왔는데도 매출이 줄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어? 비대면 영업해도 되네?’, ‘영업 인원이 줄더라도 매출과 상관관계는 크지 않겠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지난해 어느 회사는 영업부 노동자 15명을 감원하려 했다. 다행히도 줄이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 났지만, ‘필요 없는 인원’, ‘없어도 되는 인원’이라고 회사는 생각하는 듯하다.”

오른쪽부터 황의수 한국얀센노동조합 위원장, 최창우 입센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최정환 한국아스트라제네카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그러나 NPU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의 경험을 근거로 영업 노동자들을 줄이려는 시도는 경영적 오판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회복이 시작되는 현재 대면 엽업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NPU는 “회사의 판단과 현장 노동자의 판단이 아주 다르다.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영업상 방문 수요가 줄었다고 보는 반면, 영업 노동자는 방문을 줄이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며 “이에 대한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은 영업 노동자의 파워가 없으면 매출도 꼬꾸라지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회사는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영업의 실효성?
비용 절감의 또 다른 수단 의심

더불어 비대면 영업은 사용자 일방이 원한다고 해서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을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과 논의를 거쳐야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NPU는 “회사가 비대면 영업을 원한다고 해서 대면 영업을 줄이는 건 경영적 오판이다. 종합병원, 클리닉, 약국 등 각각 고객의 성향에 맞춰야 한다. 대면 영업이 통할 때가 있고, 반대로 비대면 영업이 통할 때가 있다. 때로는 대면‧비대면을 함께하는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고객이 있는 것”이라며 “요컨대 비대면 영업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도입할 수 없고 노동자, 회사, 고객들이 함께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라고 전했다.

더욱이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아직까지 비대면 영업의 확대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확실치 않은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이자는 비대면 영업을 확대하려 한다. 그 이유에 대해 NPU는 “화이자가 이번에 비대면 영업을 시도하는 이유는 대체 불가능한 약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시중에 경쟁약이 많은 회사가 비대면 영업으로 간다면 오히려 큰 역풍을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상인 위원장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화이자가 비대면 영업 확대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비대면 영업이 확실하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제약업계는 제약 시장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두고 보는 상태다.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이자는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비대면 영업을 30~50%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어마어마한 백신 머니를 벌어들였기 때문에 혹여 비대면 영업 확대로 인해 한두 해 정도 어려움을 겪더라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화이자의 행위가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에 인원 감축이라는 흐름을 불러올 여지가 상당히 크다.”

“인위적인 고용 축소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앞선 기사에서 지적했듯 제약‧바이오산업의 트렌드 변화 및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영업 노동자의 규모가 감소하는 추세는 사실이다. 이를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수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줄어왔다. 한국얀센은 영업사원이 많을 때는 350~40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50명이 안 된다. 어느 회사나 할 것 없이 트렌드는 영업사원 감축이다. 여기서 비대면 영업이 감소폭을 늘릴 것인가? 거시적인 흐름을 봤을 때 비대면 영업으로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입사 당시 몸으로 뛰면서 영업하다가 그다음에 브로슈어를 돌렸다. 그다음에는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태블릿 PC를 들고 다닌다. 이런 식으로 변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강승욱 화학노련 한국비아트리스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하지만 비대면 영업은 대면 영업을 통해 쌓은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 비대면 영업 확대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NPU 산하 노동조합 위원장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대면 영업에서 비대면 영업으로 넘어가는 전환이 메일이나 카톡 하나 보낸다고 되지 않는다. 요컨대 비대면 영업을 위한 대면 영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업 노동자들이 알고 보면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내 자리를 스스로 지우는 행위를 하는 격이다. 조합원들이 더욱 고용불안을 느끼고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산업 구조상 세일즈 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용이 줄어드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고용 감소 추세에 기름을 붓는 화이자 같은 사례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