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지역운동 발판 마련··· ‘공공의료 전국 순회 캠페인’
보건의료노조 지역운동 발판 마련··· ‘공공의료 전국 순회 캠페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6.13 00:00
  • 수정 2022.06.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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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지역 시민사회와 순회 운동 함께해
“ 공공의료 확충 운동, 전국적인 생활운동으로 확산시킬 것”
16일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가 서울도심에서 서울공공의료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종착지인 서울시청광장에서 구호를 다시 한번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br>
지난 5월 16일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본부장 최희선)가 서울도심에서 서울공공의료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종착지인 서울시청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6.1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지역 곳곳 거리 위에 섰다. 손엔 ‘내 곁에 든든한 모두의 공공의료’ 피켓을 들고, ‘공공의료 UP’ 문구가 적힌 반짝이 머리띠도 썼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 ‘9.2 노정합의’ 이행을 지역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22일간 전국을 누빈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공공의료 확충 전국 캠페인의 배경부터 과정, 평가, 남은 과제까지 짚어봤다.

# 2011년 ‘러브플러스 캠페인’

2011년, 보건의료노조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없도록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실현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5월 23일부터 20여 일간 진행된 ‘러브플러스 캠페인’ 전국 투어로 전면화됐다. 다음 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기에 보건의료노조는 전국을 돌며 왜 의료비를 낮추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당시 LED 트럭을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캠페인을 홍보했다. 시민들의 호응도 좋았다”며 “이 캠페인을 통해 시민단체와 함께 보호자 없는 병원 지역 시범사업 추진,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 박근혜 정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 문재인 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등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 2022년 ‘내 곁에 든든한 모두의 공공의료 캠페인’

2022년, 보건의료노조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전국 순회 캠페인에 나섰다. 이번엔 ‘내 곁에 든든한 모두의 공공의료’를 슬로건으로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펼쳐나갔다. 나순자 위원장은 “누구나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의료비 부담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어디에 살든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전자는 2011년 러브캠페인 운동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면, 후자는 2022년 공공의료 확충 운동으로 이뤄나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산별중앙교섭 합의문에 서명했다. ⓒ 보건의료노조
지난해 9월 15일 보건의료산업 노사가 산별중앙교섭 합의문에 서명했다. ⓒ 보건의료노조

‘9.2 노정합의’는 또 다른 시작

왜 지금 공공의료일까? 우리 사회엔 코로나19를 겪으며 주먹구구식 감염병 대응체계, 열악한 공공의료, 부족한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보건의료노조는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70% 이상을 담당했다. 코로나19는 공공의료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냈다”며 “코로나 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 의사인력과 훈련된 간호인력이 부족했고, 음압시설·공공병원 등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장비도 부실했다. 지역주민을 위한 응급의료, 심·뇌혈관 환자 치료, 산모·어린이·장애인을 위한 진료에도 공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산별총파업을 결단했고, 파업 직전 보건의료인력·공공의료 확충 약속이 담긴 ‘9.2 노정합의’를 보건복지부와 체결했다.

9.2 노정합의는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지난해 노정합의 이후 이행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산정국에서 노정합의 이행을 위한 예산을 챙기는 국회의원이 없더라”며 “기가 막혔다. 결국 10일간 국회 앞 천막 단식농성투쟁을 했고 울산, 광주 공공병원 신규 설립 등 공공의료 확충 이행 예산을 그나마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공공병원 확충·강화와 관련해 ‘2025년까지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 책임의료기관을 조속히 지정 운영한다’는 노정합의는 70개 중진료권 중 22곳 빼고는 책임의료기관이 지정됐다. 남은 22곳 중에선 △신축 3곳(대전, 서부산, 서부경남) △이전 신축 6곳(영월, 거창·상주·통영 적십자병원, 삼척, 의정부) △우선 추진 6곳(광주, 울산, 인천, 대구, 동부산, 제천) 등으로 추진 중이다.

다만 9.2 노정합의의 또 다른 축인 보건의료인력 확충에 비해 공공의료 강화는 이행 속도가 더디다. 공공병원 신축·증축을 위해선 지자체의 의지라는 변수가 있어서다. 나순자 위원장은 “인력에 관해선 월 1회 보건복지부와 이행점검 회의를 하면서 차근차근 점검이 되고 있지만, 공공병원은 중앙정부 예산이 반영됐는데도 진행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며 “공공병원을 설립하려면 중앙 대 지방정부 예산이 5 대 5로 매칭돼야 한다. 또한 입지 선정, 타당성 조사 등 설립 절차를 지자체가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병원 신축·증축을 위해 광주, 울산 등 열심히 하는 지역도 있지만 손 놓고 있는 지역도 많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새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 기조는 9.2 노정합의와 결이 다르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병원 확충보다는 공공정책수가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통해 기존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전북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전북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노정합의 지역 확산 위해
‘전국 캠페인 대장정’ 돌입

보건의료노동자들은 러브캠페인 이후 다시 전국 캠페인 대장정 준비를 시작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전국 캠페인 대장정은 노정합의 합의를 지역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이를 통해 지역운동의 주체를 세워내고, 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이 노정합의를 핵심공약으로 채택하고,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방정부의 정책과제에 이 내용들이 포함되도록 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밝혔다.

준비를 마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17일까지 ‘공공의료·의료인력 확충!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전국 캠페인’을 진행했다. 캠페인은 전북·광주·대전충남·부산·대구·충북·경남·경기·강원·서울·경기·인천·충남 등 총 11개 지역에서 이뤄졌다.

이번 전국 캠페인에서 제시한 지역별 의제는 지난해 4월부터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보건의료노조는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를 책임연구원으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을 재정연구원으로 ‘2022년 지방선거 보건의료공약 및 의제 연구’ 용역을 맡겼고, 결과물은 1년 뒤인 지난 4월 233쪽 분량의 보고서로 발행됐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준비 과정에 지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순자 위원장은 “지역마다 정책 역량 강화를 위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있다. 지원단에서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해서 올해 초부터 워크숍을 함께했다”며 “지역별로 워크숍에서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공공의료 관련 의제를 개발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만든 지역별 의제를 토대로 보건의료노조는 전국을 돌며 각 지역에서 정책토론회·지방선거 후보 정책협약식·선전전·기자회견 등의 방식으로 캠페인을 펼쳤다.

강원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강원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공공의료 현실 토대로
지역별 ‘구체적인 과제’ 제시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각 지역의 공공의료 현실을 드러내고,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별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최종진 보건의료노조 강원지역본부장은 “강원도에서 캠페인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인구가 적은 곳은 그에 비례해서 생명의 가치도 작다는 것”이었다며 “강원도 18개 시군 중 15개 시군은 응급의료취약지다. 강원도는 머물기엔 좋지만 병이 생겼을 때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이 도민들에게 가장 불안한 지점”이라고 전했다.

양승준 보건의료노조 충북지역본부장은 “충북은 전국에서 치료가능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며 “비슷한 병상 규모인 서울의료원의 전문의가 약 230명인데 청주의료원은 43명에 불과하다. 충주권에는 충주의료원과 건국대충주병원이 있지만 인력, 시설 부족으로 필수 의료 제공이 어려워 특히 산모의 80%가 충주권을 떠나 ‘원정 출산’을 다니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의료 자원이 풍부해 보이는 수도권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경기도는 수도권인데도 인구 10만 명당 급성기 병상 수가 전국 최하위다. 남양주, 안양, 의정부 등 경기 동북부 의료 취약지 문제도 심각하다”면서 “또한 민간병원이 많은 서울의 경우 4개 중진료권마다 민간의료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공공병원 설립 문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지역별 정책토론회를 하면서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한 주민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알게돼서 좋았다”며 “또한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나, 인구가 과밀·증가하는 수도권이나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모두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같이 지역에서 드러난 공공의료 현실을 토대로 보건의료노조는 지역별 공공의료 의제*를 제시했다.

충북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충북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운동 지속하기 위한 지역운동 발판 마련

아울러 보건의료노조는 향후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기 위한 지역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공공병원 설립이 본격적인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지역주민의 요구를 모아내야 하고, 그 요구가 강력히 표출될 때 지역정치 과제로 부각될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해 캠페인 진행 과정에서 지역마다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고 활동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행사를 공동주최했다”고 밝혔다.

나순자 위원장은 “차근차근 지역의 운동 동력을 만들었다”며 “보통 지역 시민단체들이 정책 역량 등은 뛰어나지만 운동을 벌일 정도로 조직된 형태는 아니다. 이번 계기로 시민단체들이 보건의료노조를 만나서 좋다고 전했다. 또한 지역 전문가들도 정책 개발은 할 수 있지만 정책을 실현하려면 운동이 돼야 한다며 노조에 고맙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지역에선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지자체 공무원이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의 노정합의로 지역 공공의료 확충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캠페인 과정에서 충북 지역에선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위한 새로운 조직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역운동의 동력뿐 아니라 보건의료노조 내부 동력도 강화했다. 김정은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서남병원 지부장은 “이번 순회 투쟁을 통해서 공공병원 직원들도 잘 몰랐던 공공의료에 대해 조합원들과 함께 배우며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한 번 더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며 “순회 투쟁이 끝이 아니라 점점 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많이 알릴 수 있는 투쟁을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인천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인천 캠페인 ⓒ 보건의료노조

“오래 걸리는 싸움 될 것”
장기간 시간·운동 역량 필요

과제도 남았다. 나백주 교수는 “보건의료노조가 노정합의의 불씨를 지역에서 구체화하면서 진일보한 움직임을 보여줬다”면서도 “노조가 여론화한 의제들이 6.1 지방선거 결과가 드러난 이후 어느 정도 현실화될지 예상했을 때 전망이 밝진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공공의료 강화는 하루아침에 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운동은 그간 수익성 위주 체질이 돼버린 의료체계를 뒤바꾸는 싸움이다. 상당히 길고도 오래 걸리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긴 시간과 이 시간을 함께할 운동 역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아낸 지역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연대의 폭을 넓혀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금연운동 같은 전국적인 생활운동으로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우선 공공의료 확충을 지자체 핵심과제로 만들기 위해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자체장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간담회’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지자체 전체 예산 대비 평균 1.75% 수준인 보건의료 예산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보건분야 예산 증액운동’과 ‘공공보건의료특별회계 신설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경기도 등 정책협약식을 맺은 지자체와는 협약이행을 위한 보다 구체적 정책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

장원석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보건의료노조는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보건의료 공약 실천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지역의 공공의료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지역 아카데미를 시민단체들과 함께 만들 것”이라며 “또한 각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정책 방향을 바꿔나가는 데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장원석 수석부위원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공의료가 부족해 많은 희생자가 따랐고, 정상적인 진료체계가 붕괴됐다. 우리가 지난해 총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노정합의를 이룬 이유는 이런 사실이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며 “우리의 운동은 오랜 싸움이 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선 많은 이들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별 공공의료 의제

① 전북 △군산·남원의료원 강화 △정읍권 공공병원 신축
② 광주 서남권 원자력의학원이 아닌 광주의료원 설립
③ 대전·충남 △대전의료원 400병상 이상 조속한 설립 △논산권 거점 공공병원 설립 △충남 4개 의료원(천안·공주·서산·홍성) 병상확대·필수, 응급의료 역량 강화
④ 부산 △(예타 면제된) 서부산의료원 조속한 설립 △침례병원 공공병원 전환(동부산의료원) △부산의료원 기능 강화
⑤ 대구 △동북부 500병상 규모 제2대구의료원 설립 △대구의료원 기능 강화
⑥ 충북 △제천·단양권 거점 공공병원 설립 △충주·청주의료원 기능 강화
⑦ 경남 △(예타 면제된) 서부경남 공공병원 조속한 설립 △거창·통영적십자병원 기능 강화 △마산의료원 증축
⑧ 경기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의정부·포천·파주·이천·수원·안성) 신·증축 통해 400병상 이상으로 기능 강화 △남양주권 거점 공공병원 설립 △새로운 경기도립정신병원 이전 신축, 성남시의료원 기능 강화
⑨ 강원 △강원도 5개 의료원(강릉·삼척·속초·영월·원주) 300병상 이상으로 기능 강화 △춘천권 공공병원 설립 △지역책임의료기관 접근성 제고
⑩ 서울 △서북·동남권 공공병원 신축 △기존 서울시립병원 기능 강화 △시립 재활병원, 어린이병원 등 신축 통한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 △시민건강 부시장 제도 도입 △공공병원 의료인력 기준·감염병 대응 보건의료인력 조례 제정
⑪ 인천 △800병상 규모 제2·3 인천의료원 조속한 설립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인천의료원·인천적십자병원 기능 강화 △인천대 공공의대 설립

 * 이 기사는 지난 5월 23일 열린 ‘공공의료·의료인력 확충, 지역 의료격차 해소 전국 캠페인 보고 기자 간담회’를 바탕으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추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