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병원 노동자 교섭 추진··· 산별운동 역사 만들어갈 것”
“작은병원 노동자 교섭 추진··· 산별운동 역사 만들어갈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6.16 13:35
  • 수정 2022.06.16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병협·의협 상대 5인 미만 병·의원 노동자 위한 교섭 계획
11월 산별 정책대회 통해 ‘산별 질적 도약’ 모색도
[인터뷰]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1998년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산별노조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의약분업 투쟁, 산별총파업으로 주5일제와 첫 산별교섭 시작, 무상의료 운동,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아름다운 산별합의’,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9.2 노정합의까지. 보건의료노조 투쟁의 역사는 산별노조운동의 이정표가 돼왔다고 평가받는다. 

2022년 산별노조 출범 25주년을 앞두고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로서 미래전략 준비와 함께 질적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노조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기본 노동권 확보를 위한 교섭 추진, 산별교섭 정상화·제도화 투쟁, 산별노조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11월 산별 정책대회 등 여러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만나 산별노조 건설 25주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야기는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지난 4월 28일 들었다. 추가 서면 인터뷰는 6월 10일 진행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2022년 산별교섭 정상화 운동
1단계. 중앙교섭에 민간중소병원 등 빠진 사용자 참여
2단계. 국·사립대, 특성교섭+정책논의 틀 추진

- 올해 정기대대에서 나온 사업계획 중 ‘산별교섭 정상화와 제도화 운동’은 어떤 뜻인가?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첫 산별교섭을 시작했다. 2007년엔 사용자단체(보건의료사용자협의회)가 공식적으로 구성됐다. 그러다 2009년 사용자협의회 해산, 산별중앙교섭 파행을 겪었다. 2009년 이전까진 국립대·사립대병원을 비롯해 민간중소병원, 지방의료원 등 100여 개 의료기관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해서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한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다시 산별교섭 복원 투쟁을 벌여 2012년부터 산별중앙교섭을 재개했지만, 교섭 참가 사업장 수는 40여 개로 줄었다.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도 빠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산별교섭 정상화 투쟁을 해왔다. 산별교섭의 완전한 정상화란 보건의료노조 산하 200여 개 지부 사용자가 사용자단체를 구성해 모두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 올해 산별교섭 정상화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

올해 산별교섭 정상화 운동은 우선 기존 산별중앙교섭단 의료기관 형태별* 구성 내에서 사업장 참여를 최대한 확대할 것이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는 70개 의료기관*으로 구성된 사측 교섭대표단과 교섭을 진행했다. 2009년 이후 최대 규모 대표단이었다. 이는 노조가 산별교섭에 불참하는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면담하고 설득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였는데, 올해는 1단계로 국립대·사립대병원을 제외한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등에서 남은 10여 개 지부 사용자들을 모두 산별중앙교섭으로 모을 것이다. 2단계로 국립대·사립대병원 전체가 참여하는 완성체로서 산별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보건의료산업은 설립 형태를 기준으로 사립대병원, 국립대병원, 민간중소병원, 지방의료원, 특수목적 공공병원, 대한적십자사, 재활요양병원 등 7개 특성으로 구분된다.

*지방의료원 24곳, 민간중소병원 15곳, 적십자병원 및 적십자혈액원 25곳, 특수목적 공공병원(국립중앙의료원·국립암센터·한국원자력의학원·서울시동부병원·서울시북부병원·서울시서남병원) 6곳

- 그럼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은?

당장 산별중앙교섭 참여가 어려운 국립대·사립대병원은 단계를 밟아나갈 예정이다.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인데다 노동조건이 비슷한 국립대병원 7개 지부는 공동요구안을 만들어서 특성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립대병원은 공동요구안을 요구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의료노조에 36개 지부가 있는데 노동조건 편차가 심하고, 병원 규모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사립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9.2 노정합의 이행을 위한 정책 논의 틀을 우선 만들려고 한다. 노정합의에는 정부가 ‘사립대 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적극 독려하고, 이에 따른 지원방안을 마련해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년여간 사립대병원은 진료역량이 되는 만큼 코로나19 중증환자들을 많이 치료했다. 이후로도 공공적 역할을 확대해나가야 하지만, 이 역할을 사용자가 거부한다면 풀기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관련 논의 틀을 만들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노사간담회와 더불어 각 병원장, 지부장 면담을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국립대·사립대 병원이 아닌 지부는 모두 산별중앙교섭으로 묶어낼 것이다. 남은 국립대병원은 특성교섭을 진행하고, 사립대병원은 정책 논의 틀을 만들어서 올해를 산별교섭 정상화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원년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산별교섭 제도화 투쟁’도 전면화

- 산별교섭 제도화 투쟁은? 

민주노총, 총연맹 산하 주요 산별들과 대국회 산별교섭 제도화 투쟁을 전면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노동의제 중 핵심쟁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내부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는 기업별 노사관계를 초기업 노사관계로 전면 전환하는 것이다. 

기업별 노사관계에 갇혀있는 노조는 기업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올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차원의 산별교섭 제도화 투쟁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우리 노조만 필요한 투쟁이 아니다. 금속노조는 산업전환을 위한 초기업교섭을 강조하고 있고, 올해 화학섬유연맹이 화섬식품노조로 조직을 변경했다. 사무금융노조연맹은 올해 말 산별노조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 내 산별노조 비중은 커지는데, 산별교섭은 사용자가 안 나와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법 30조 3항에 따른 초기업 단체교섭 활성화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시 사용자의 참가 의무화를 명시하는 등 산별교섭이 제도화돼야 한다. 

산별교섭 제도화는 무조건적이고 획일적인 산별교섭 강제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법적·행정적 방식을 통해 현재 기업별 교섭체계를 초기업교섭이 가능하도록 다양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반기 새롭게 구성되는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과 본격적인 법 제도화 투쟁을 진행할 것이다.

올해 산별교섭 핵심 의제
의료체계 회복 과정에서 필요한 현장 변화

- 올해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핵심 의제는?

의료기관은 일상의료체계 회복국면으로 가고 있는데 여전히 코로나19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체계 회복과 코로나19 이전의 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올해 산별교섭에선 의료체계 회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운영, 의료인력 감염에 따른 치료기간과 회복기간에 대한 휴가 보장, 코로나 3년간 헌신한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에 대한 보상 확대 등을 핵심 의제로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9.2 노정합의의 실질적 이행과도 관련된 인력충원과 노동조건 개선은 올해도 핵심 요구다. 요구안으로 의사와 약사 부족으로 인한 부당한 업무 전가와 이로 인한 불법의료행위 근절, 야간간호료 정상 지급, 야간근무에 대한 유급수면휴가 보장, 교대근무자의 휴일근무에 대한 보상, 유해·위험업무와 야간업무에 1인 근무 금지, 임금 인상(총액 7.6% 인상) 등이 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병원협회·의사협회 상대로
모든 보건의료노동자 위한 교섭 추진

 
-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한 ‘노동기본권 교섭’ 추진 배경도 궁금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을 하고 있지만, 현실을 보면 노조에 조직된 사업장과 교섭에 집중해왔다. 올해는 보건의료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를 대변하는 교섭도 추진하려고 한다.

특히 5인 미만 의료기관 노동자는 지난해 1분기 기준 25만 명 2,953명으로, 전체 보건산업 종사자(95만 3,000명) 중 약 27%를 차지한다. 이들 중 최저임금과 모성보호 등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30%에 가깝다. 

의사들은 돈을 그렇게 벌면서,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도 안 주는 거다. 작은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법·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5인 미만 의료기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를 대상으로 노동기본권 교섭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 5인 미만 의료기관 노동자 약 4,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서 기자회견, 토론회를 준비해 5인 미만 의료기관 노동자들의 노동권 이슈를 공론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는 병원, 의원 사용자들을 상대로 제대로 투쟁해보려 한다.

11월 정책대회로
산별노조 질적 도약 준비

- 내년은 보건의료노조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 초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 질적 도약’이 핵심 슬로건이기도 했는데. 산별노조 질적 도약을 위한 다른 계획이 있나?

내년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를 건설한 지 사반세기인 25주년이다. 우리는 늘 산별노조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문한다. 이 고민 속에서 산별노조로서 내실을 다지고 질적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올해 11월 29일부터 3일간 정책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책대회에선 3대 발전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산별조직강화 전략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체계는 1998년 산별노조를 건설할 때와 같다. 이 조직체계가 여전히 적절한지, 그리고 산별조직활동이 본조와 지역·현장 차원에서 잘 소통되고 있는지 점검해보려고 한다. 또한 청년세대 조직 관련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노조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조직 확대 전략이다.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노동기본권을 확보하려면 노조 가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큰 병원은 대부분 노조가 있다. 노조가 없는 큰 병원은 삼성병원 정도다. 작은 사업장만 남았는데, 그곳이 더 열악하다. 그래서 올해 모든 보건의료노동자 기본권 확보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보건의료를 넘어 돌봄까지 어떻게 조직 범위를 확대해나갈 것인지 방향과 체계 관련 전략을 짤 예정이다.

세 번째는 산별 초기업교섭 발전 전략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이라는 하나의 틀만 고수하지 않는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 노정교섭도 초기업교섭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산별교섭을 정상화·제도화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해 대정부 노정교섭과 대국회 법제도 예산 대응, 각종 정부위원회 참여, 대국민 의료공공성 강화 캠페인 등 초기업교섭의 폭을 넓혀가기 위한 종합전략도 세울 계획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런 발전 전략을 세우고, 질적 전환을 모색하는 밑바탕엔 보건의료노조 내부 역량에 대한 믿음이 있다. 지난해 9월 2일 노정합의 타결 전 우리는 전국적으로 총파업을 조직했다. 당시 지부별 교섭이 진행 중이었는데 노정교섭 타결 전까지 지부별 타결은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노사 간 의견이 접근돼도 노정교섭이 안 되면, 지부별 파업을 준비하라는 거였다. 몇몇 지부에선 항의도 했다. 이미 합의를 이룬 상황에서 파업 이후 합의안이 후퇴하는 걸 우려한 거다. 그래도 설득하면서 나아갔다. 9월 2일 당일 새벽 1시 반경 노정교섭을 타결했는데, 한 곳도 교섭 타결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그런 투쟁을 하다 보니 조직 내부 단결의 기풍과 역량이 많이 올라와 있고, 조합원들이 산별적 투쟁기조와 방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올해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9.2 노정합의 – 2022년 3.9 대선 투쟁 – 6.1 지방선거를 통해 9.2 노정합의 지역별 확산 – 2022 산별교섭 정상화·제도화 투쟁 – 산별운동 질적 도약을 준비하는 11월 산별 정책대회 개최’라는 큰 흐름을 만들면서 산별운동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근본적, 종합적인 
노동운동의 미래 전략을 고민할 때”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역사적인 9.2 노정합의가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아울러 만약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 개악이 추진된다면 전체 노동계 차원의 공동투쟁을 하고,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 추진에는 강력한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는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는 물론 우리 노동조합에도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산업 전환, 저출생·고령사회, 지방소멸, 불평등 양극화 심화 속에서 촛불혁명 이후 출범한 정부가 5년 단명에 그치고 보수정부가 등장했다. 최근 변화하는 정세는 어떻게 노동이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노동운동의 미래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