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장 60% 휴게실 없어··· “현실적 대책 필요”
작은 사업장 60% 휴게실 없어··· “현실적 대책 필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6.21 04:38
  • 수정 2022.06.21 0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노총, 산업단지 노동자 4,443명 설문조사
20인 미만 사업장 58.2% 휴게실 없어
공동휴게시설 생기면 86% “이용하겠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20일 민주노총이 ‘전국 산업단지 노동자 휴게여건 및 복지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산업단지 내 20인 미만 사업장 10곳 중 6곳은 휴게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비용 문제보다 공간이 부족해서 휴게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노사정이 운영하는 ‘공동휴게실’을 설치하는 것이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단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노총은 20일 ‘전국 산업단지 노동자 휴게여건 및 복지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 3월 21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국 13개 지역 4,443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민주노총은 오는 8월 18일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이번 실태 조사를 기획했다.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선 휴게시설 의무 설치 대상에 20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1년 유예됐다.

20인 미만 사업장 58.2%
“휴게실 없어”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4,021명 중 43.8%가 휴게실이 없다고 답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따졌을 때 작은 사업장에 휴게실이 더 없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 23.6% △50인 미만 사업장 40.6% △20인 미만 사업장 58.2% 순으로 휴게실이 없다고 했다.

응답자 1,351(제조업·생산직)은 “휴게실이라고 할 만한 게 따로 없다”며 “일하는 곳에서 쉬는 건 눈치 보이고 해서 옥상, 야외, 나무 그늘 같은 데서 쉰다. 일하는 공간과 분리된 휴게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작은 사업장, 저임금 노동자가 
더 자주 휴게실 이용해

일단 휴게실이 있으면 대기업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가, 고임금보다 저임금 노동자가 더 자주 휴게실을 이용했다. ‘휴게실을 매일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는 40.6%인데, 2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61.2%였다. 또한 고임금 노동자의 매일 이용 비중은 48.8%인데, 저임금 노동자는 62.4%였다. 

민주노총은 “식비를 아끼기 위해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노동자나, 밖에서 쉴 곳이 마땅치 않은 노동자들 모두 작은 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며 “휴게실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 고임금 노동자들은 외부공간, 카페 등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공간에서 대기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설적으로 휴게실 의무화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휴게실 활용도가 높고, 휴게실이 더 필요한 저임금·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평공단 내 열악한 휴게실 실태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휴게실에 사장·이사도 있어 
노동자들 이용 못 해”

휴게실이 있어도 편히 쉬기엔 부족했다. 휴게실을 이용하는 응답자의 55.5%는 인원 대비 공간이 좁다고 했으며, 49.4%가 규모 대비 휴게실 개수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지회장은 “부평공단 내 모 업체는 120명이 넘는 사업장인데 탈의실이 없고, 휴게실이 사장과 이사가 쉴 수 있게 돼있어서 노동자들이 못 올라간다”고 전했다.  

또한 이재영 지회장은 “아파트형 공장은 휴게시설이 회사별로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대규모 휴게공간이 있긴 한데 문이 잠겨 있거나, 그 안에 제품이 쌓여 있어 대부분 노동자들이 사용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전북 완주일반산업단지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A씨는 “산업단지 시설 자체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곰팡이가 핀 공간도 많이 있다. 휴게실이 지하에 있거나 실외기와 가까이 붙어 있어서 여름에 너무 더워 쉬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서다윗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은 “서울디지털단지는 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가 12~13명”이라며 “서울디지털단지 제조업체들은 휴게공간을 따로 마련하기보다 일하는 공간에서 쉬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탈의장을 휴게실로 간주하는 곳도 허다하다. IT업종 노동자들의 경우 따로 휴게실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왜 휴게실이 없을까? 비용이 먼저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은 공간 부족을 우선 꼽았다. 사업장에 휴게실이 왜 없냐는 질문에 좁은 공간 때문이라고 답한 비중이 3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사업주의 무관심 28.8% △의무가 아니라서 17.5% △비용 13.7% 순이었다. 

부평공단 전경, 빌딩처럼 보이는 건물은 사실 모두 아파트형 공장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부평공단 전경, 빌딩처럼 보이는 건물은 사실 아파트형 공장이다. ⓒ 참여와혁신 DB

공동휴게실? 
86% “이용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휴게실이 생기면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86%를 차지했다. 민주노총은 “공동휴게실에 대한 높은 호응은 휴게실 부족, 부족한 시설 등 설문으로 확인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며 “휴게실이 있는 노동자나 없는 노동자나 모두 공동휴게실에 관심을 보였다. 공동휴게실은 공간이 부족한 작은 사업장의 휴게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내 휴게실이 부족한 사업장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응답자 3,859(제조업·생산직)는 “공장 주변에 편의점이 없다. 좀 나가야 한다. 커피 한 잔 먹으려 해도 점심시간밖에 못 나간다”며 “공동휴게실과 편의점, 커피숍이 같이 있고 벤치도 있으면 좋겠다. 밥 먹고 쉴 때도 더 편하게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응답자 2,039(정보통신·전문직)는 “지식산업센터의 층마다 공동휴게실이 있으면 한다”며 “여기는 건물이 높다. 바람 한번 쐬려면 1층까지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 엘리베이터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휴게실 의무화와 함께 진행될 정부의 휴게실 지원 사업은 작은 사업장을 위한 공동휴게실을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실질화하기 위해선 (기존 공동휴게실 사례를 고려해) 노사정이 공동으로 운영·관리·개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산업단지 식당 주변, 공원 주변 등을 선정해 지자체와 산업단지관리공단, 사용자 단체, 노동조합이 공동휴게실을 설립할 수 있도록 논의를 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정우 민주노총 전략조직국장은 “공동휴게시설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지어져야 한다”며 “교통이 불편한 안산은 환승 정류장 등에 공동휴게실을 마련할 수 있다. 서울디지털단지는 남녀 구분, 누울 수 있는 공간 등이 필요하다. 지방은 산업단지 공간이 넓어서 공동휴게실을 복합시설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이번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하반기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법이 시행되면 사업장별 법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투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모든 일터에 휴게실 설치 의무화 △시행령 입법안 철회 및 법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시행령 제정 △산업단지 공동휴게실 설치 대책 마련 △노사가 합의로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실 설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