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장 빠진 ‘모든 사업장’ 휴게실 의무화법
작은 사업장 빠진 ‘모든 사업장’ 휴게실 의무화법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8.19 18:09
  • 수정 2022.08.19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사업장 권리찾기 “설치 의무 면제법”
“작은 사업장 노동자, 창고·계단 밑·화장실에서 쉬고 있어...정부가 배제와 차별을 앞장서서 조장하는 것”
5월 12일 열린 '20인 미만 사업장 배제한 휴게시설 설치 시행령 규탄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5월 12일 열린 '20인 미만 사업장 배제한 휴게시설 설치 시행령 규탄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정부가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시행했으나, 실효성 없는 법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과태료 부과 대상을 ‘20명 이상 사업장’ 등으로 한정한 탓에, 정작 휴게 시설이 열악한 작은 사업장에 설치 의무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이하 작은사업장 권리찾기)’은 19일 공동성명을 내고 “개정 산안법은 시행됐지만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일하다 한숨 돌릴 한 줌의 공간조차 여전히 갖고 있지 못하다. 1년 만에 휴게시설 설치 의무법이 아닌, ‘설치 의무 면제법’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으로 18일부터 모든 사업장은 휴게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다만 휴게 시설을 마련하지 않거나 설치·관리 기준을 위반할 때 과태료를 부과받는 대상은 제한적이다. 과태료 부과 대상은 △상시노동자 수 20명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총 공사금액 20억 원 이상 현장) △‘취약 직종’ 노동자가 2명 이상으로 상시노동자 10명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다. 취약 직종은 전화상담원, 돌봄서비스 종사자, 텔레마케터, 배달원, 청소원과 환경미화원, 아파트 경비원, 건물 경비원 등이다. 이 같은 기준은 산안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난해 7월부터 1년여간 검토한 끝에 마련됐다.

작은사업장 권리찾기는 “20인 이상 사업장 수는 15만 9,246개로 전체 사업장 268만 874개소 중 5.9%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산재 발생률이 높고 그만큼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 절실한데도 정부는 오히려 작은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사실상 면제해줬다”고 비판했다.

휴게시설 설치 기준도 문제로 지적했다. 작은사업장 권리찾기는 그간 휴게실 최소 면적을 ‘1인당’ 2㎡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시행령은 최소면적을 6㎡로 규정했다. 권리찾기사업단은 “세계 최장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수만 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비좁고 열악한 휴게실 실태의 문제는 이제 건강권의 문제를 넘어 인권의 문제이며,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절박한 사회적 문제”라며 “하지만 이번에도 한국 사회 절대다수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여전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창고나 계단 밑, 화장실 한쪽에서 눈치 보며 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작은사업장 권리찾기는 서명서 전달, 전국 노동지청 앞 1인 시위, 증언대회,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지만 정부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이들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오히려 배제와 차별을 앞장서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모든 노동자의 휴식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용 규모, 사업장 면적, 특정 업종 등 어떤 기준도 배제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작은사업장 권리찾기는 “정부가 할 일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배제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법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제대로 된 휴게시설 설치, 휴게권 보장 사업, 노정 협의 추진 등 모든 노동자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쉴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양대 노총도 각각 성명을 내고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관련 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