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노동자들, 단체교섭권 침해한 대한민국 정부 ILO에 제소
공공노동자들, 단체교섭권 침해한 대한민국 정부 ILO에 제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7.21 17:04
  • 수정 2022.07.21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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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각종 행정지침으로 단체교섭 무력화···ILO 핵심협약 제98호 위반
“ILO 협약 뿐 아니라 헌법도 부정” 공공노동자 10만 명 서명지 헌법재판소에 제출도
한공노협이 20일 오전 10시 30분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및 ILO 제소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한국노총과 한공노협이 대한민국 정부를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했다. 정부가 각종 행정지침으로 공공기관 노사의 단체교섭을 무력화하는 등 ILO 협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를 위반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협의회(이하 한공노협)는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박해철, 이하 공공노련),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박홍배, 이하 금융노조),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위원장 류기섭, 이하 공공연맹)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 협의회다. 이들은 앞선 2월 기획재정부의 예산운용지침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기재부의 예산운용지침이 총인건비와 복리후생비 등을 정해 헌법에 보장된 공공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게 한공노협의 해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ILO 협약 제98호가 4월 20일 국내에 발효됐다. 지난해 4월 정부는 ILO 협약 제98호를 비준·기탁한 바 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났기 때문에 ILO 협약 제98호는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됐다. “필요한 경우에는 단체협약으로 고용조건을 규제하기 위하여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와 근로자단체 사이에 자발적 교섭을 위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이용하도록 장려·촉진하기 위하여 국내 사정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협약이다.

한공노협은 20일 오전 10시 30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말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ILO 핵심협약 제98호는 명백히 국내법과 같이 준수돼야 하는데도 아직까지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정부는 각종 행정지침을 공공기관으로 내려 총인건비와 복리후생, 사내근로복지기금 등 노사가 교섭을 통해 결정해야 할 세부적인 노동조건을 통제해 왔다. 지침의 준수 여부는 경영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이를 어기기 어렵다. 경영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결정되고, 기관장에 대한 해임건의와 경고조치 등의 조치도 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행정지침은 공공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해 헌법에도 반할뿐더러, ILO 협약 제98호의 위반이기도 하다는 게 한공노협의 지적이다. 한공노협은 ILO 협약 제98호가 국내에서 발효된 만큼, 공공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위해 정부가 필요한 후속 조치를 다 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매년 12월이 되면 기재부에서는 예산운용지침을 발표하고 다음해 임금인상률과 복지기금 등 모든 것을 통제한다. 그러면 노동조합은 이 지침에 갇혀야 한다. 지침을 어길 경우 경영평가에서 더 큰 피해를 보게 되고, 위반 사항이 다음 예산에 반영되기 때문”이라며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분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단적인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다. 금융노조는 오랜 기간 산별중앙교섭을 하고 있는데, 금융노조에 조직된 9개 금융공공기관은 교섭이 타결돼도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며 “지난해 산별중앙교섭에서 2.4% 임금 인상을 결정했는데, 9개 금융공공기관 중 8개는 0.9%, 1개는 0.4% 임금이 인상됐다.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금융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노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도 “지난해 공공기관 임금인상률은 0.9%였다. 그간 많은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동강도를 높여가며 일했고, (적은 임금에 대한) 고통도 감내했다”며 “그런데 그 국면이 지나가자 새 정부가 ‘파티는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헌신과 노력의 대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ILO에 정부를 제소하는 것이 우리는 국가폭력에 대한 정당한 제소라고 생각한다”고 공감했다.

류기섭 공공연맹 위원장은 “우리 공공노동자들은 그간 단체교섭권을 온전히 보장받기 위한 투쟁을 해왔지만 정부는 다양한 사유로 우리를 통제해왔다. 이제 ILO 협약의 효력이 발휘되는 만큼 빼앗겼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라며 “ILO에 대한민국 정부를 제소함으로 우리의 권리가 박탈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함께 제소장을 제출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기재부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ILO 협약이 발효됐지만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며 “오늘 함께한 금융노조, 공공노련, 공공연맹과 함께 기재부에 맞서는 정당한 투쟁에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정부의 ILO 협약 위반을 ILO가 심각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노력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공노협은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기획재정부의 지침 폐기와 ILO 협약 제98호 준수를 요구하는 공공노동자들의 서명지를 헌법재판소에 전달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한공노협이 지난 5월부터 진행한 ‘노동기본권 사수를 위한 공공노동자 서명운동’에는 약 10만 명의 공공기관 노동자와 국민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