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논란으로 산업은행 미화·시설·경비노동자에게 다시 찾아온 고용불안
이전 논란으로 산업은행 미화·시설·경비노동자에게 다시 찾아온 고용불안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9.29 16:56
  • 수정 2022.09.29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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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본점 매각 후 지방 이전하면 KDB비즈 소속 노동자들 일자리 불투명
지방 이전 관련 명확한 정보 공유되고 논의에 모든 당사자 참여해야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nbsp;한국산업은행지부가 13일 서울시 영등포구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산업은행 지방이전 저지투쟁 결의대회 사전행진을 출발하기 전 요구가 담긴 리본을 묶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br><br>
산업은행 직원들이 산업은행 앞에 설치된 줄에 지방 이전 반대 요구를 담은 리본을 묶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으로 ‘노동자-사용자’ 갈등과 ‘노동자-정부’ 갈등이 길어지고 있다.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언부터 당선 이후의 발언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옮기겠다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지난 8월 말에 부산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산업은행 부산 조속 이전’을 주문했고, 자리에 참석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신속 이전 추진’으로 답했다.

산업은행 직원들의 반대 의지도 크다. 100일을 이미 훌쩍 넘긴 직원들의 아침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로비에서 진행하던 아침 집회는 회장실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매일 아침 수백여 명이 모인다. 2차 직원 설명회에 모인 산업은행 직원들은 제대로 된 소통을 요구하며 집단 퇴장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부산 이전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금융네트워크가 형성된 서울을 떠나게 되면 산업은행이 역할을 하지 못해 국가 경제에 손실이라는 점이다. 산업은행의 역할에 근거한 이유이다. 두 번째는 직원들이 삶의 터전을 급작스럽게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산업은행 청년노동자는 ‘강제 이주’라며 ‘폭력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을 청소하고 관리하고 지키는 노동자들
지방 이전하면 일자리 잃는 셈

산업은행 직원들 말고도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구성원들이 있다. 산업은행 자회사인 KDB비즈에 속한 미화노동자들, 시설관리노동자들, 경비노동자들이다. 산업은행 본점이라는 공간이 운영되게끔 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산으로 이전을 반대하는 셈이다.

KDB비즈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2019년 초 설립된 회사이다. 산업은행 100% 출자 자회사이다. 이전까지 산업은행 건물(본점과 지점 등 전국에서)의 미화, 시설관리, 경비 업무는 산업은행 행우회에서 만든 회사인 두레비즈가 산업은행과의 용역 계약을 통해 맡았다. 두레비즈에 소속됐던 용역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KDB비즈에 옮겨왔다. 현재 KDB비즈 소속 노동자는 570여 명이고, 그중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KDB비즈 노동자는 200명 가까이 된다.

자회사 노동자로 전환되면서 이전과 달리 고용불안에서 벗어났는데, 만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고용불안이라는 게 산업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KDB비즈 노동자들의 목소리이다.

저임금-고령노동자에게
삶의 터전을 바꾸라는 것은 더 가혹해

장경호 한국노총 공공연맹 한울타리공공노동조합 KDB비즈지부 위원장은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가족이 있는 노동자들은 주말마다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이미 서울에 터를 잡고 있는 가족 모두와 부산으로 내려가기도 어렵고, 새로 집을 얻는 것도 부담이다”라며 “만약 부산을 왔다 갔다 한다면 적어도 한 달에 50~60만 원 정도 비용이 들고, 저임금 노동자인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큰 타격”이라고 이야기했다.

미화노동자들의 경우 임금 수준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이다. 시설관리노동자와 경비노동자의 경우는 당직 수당을 포함하면 300만 원 정도이다. 여기에 50~60만 원 정도 빠진다고 생각하면 생계 부담이 커진다. 남용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KDB산업은행 분회장은 “요즘 들어 만나는 조합원들마다 여의도 다른 곳에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냐고 묻는 일이 많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조합원들도 꽤 있다”고 했다. 커질 생계 부담 걱정에 다른 직장을 미리 찾아나서는 것이다.

더구나 미화노동자들은 고령노동자이기도 해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이 더 부담스럽다. 장경호 위원장은 “주로 미화노동자들의 경우 60세에 가깝거나 60세를 넘으신 분들이다. 한 곳에서 오래 사신 분들이니 주거 이전도 더 힘들다”고 했다. 고령에 삶의 터전을 바꾸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다른 일을 찾더라도 나이 때문에 구직 어려움이 있다. 동종업계로 옮기더라도 나이로 인한 채용 경쟁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밀린다. 찾더라도 다시 이전처럼 용역업체에 갈 확률이 높고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불안한 상태에 놓인다. 현재 KDB비즈 미화노동자의 정년은 만 65세, 정년 이후에도 촉탁직으로 3년을 더 일할 수 있다.

이미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됐을까?

이러한 문제는 이전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서도 당시 해당 공공기관에서 미화, 시설관리, 경비 업무를 맡았던 노동자들의 거취 문제가 발생했었다. 2014년 1월에 한국전력 본사 용역노동자들은 전남 나주로 본사가 이전하며 발생한 고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파업에 들어갔었다. 당시 용역노동자들은 한국전력 소속 직원들과 달리 지방 이전에 따른 지원 등을 받을 수 없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이전 대상 기관에서 비슷하게 벌어졌다. 다만 문제가 진행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랐다. 크게 3가지 양상을 보였다. 첫 번째는 서울 본점을 매각하고 이전 지역에 신사옥을 짓는 경우이다. 본점에서 일하던 용역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이전 지역 신사옥에서 미화, 시설관리, 경비 등을 맡을 노동자는 해당 지역에서 찾았다. 두 번째는 서울에 소재할 때도 임대 건물에 있었다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신사옥을 짓는 경우다. 이 상황에서는 임대 건물이 있으니 용역노동자들의 고용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서울 본점을 서울 사무소 형태로 남겨두고 이전 지역에 신사옥을 짓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서울 본점이 서울 사무소로 남으니 본점에서 일하던 용역노동자의 일자리는 보장됐고, 이전 지역 신사옥에 근무할 용역노동자를 지역에서 찾았다.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는
문제 논의할 창구 필요해

산업은행의 경우는 어떤 경로를 따를까.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기관 혁신을 이야기하며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을 주문하고 있다. 명확한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한다면 여의도 본점을 매각하고 부산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본점에서 근무하는 KDB비즈 소속 노동자들은 반강제적 해고 수순을 밟을 가능성 앞에 놓인다. 이는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산업은행을 필두로 국책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KDB비즈를 사업장으로 두고 있는 두 노조는 무엇보다도 현재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장경호 위원장은 “정확히 어떻게 될 것인지 듣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남용진 분회장도 “명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다들 불안해한다. 심지어 조합원 중에는 부산으로 이전하면 일 못하니 다른 데 가야지라며 체념한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논의 창구의 부재와 소통의 부재는 산업은행 소속 직원들이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산업은행 본점 이전을 두고 문제에 직면할 모든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논의 틀 속에서 앞으로의 계획과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남용진 분회장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KDB비즈 소속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다면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