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책임 분명히 하는 게 진정한 애도”
“국가책임 분명히 하는 게 진정한 애도”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11.03 15:22
  • 수정 2022.11.03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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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들
함께 기자회견 열고 “이태원 참사 정부 대응, 이대로는 안 돼” 한목소리
3일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참여연대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와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이태원 참사’ 정부 대응과 관련해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는 게 진정한 애도”라고 강조했다.

3일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기자회견에는 25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단체, 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참여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가습기살균제참사 범단체 빅팀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민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다.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 종교단체들도 함께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비통하고 슬퍼서 말을 아꼈다”면서도, “이 애도의 기간에 쏟아내는 정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희생양을 만드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우리의 애도는 피해자를 존중해 함께하는 것이고, 참사의 원인을 파악해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애도하고자, 침묵 대신 말하기를 선택한다”고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명했다.

주최자 없었다면
더더욱 국가에 책임 있어

이들은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는 과정에 ▲책임 회피 ▲잘못된 수사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에도 동일한 오류 반복 ▲참사를 정권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봤다.

먼저 단체들은 “이 참사의 책임은 위험에 대한 상황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안전관리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했다. 헌법 제34조에는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도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다. 때문에 “정부의 말대로 매뉴얼도 없고 주최자도 없었다면 더더욱 정부와 경찰과 지자체에 안전 관리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상황에서 맞이한 첫 번째 핼러윈 축제였고, 1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의 군집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사고 전날인 금요일 저녁부터 유사한 참사 조짐이 나타났고, 특히 토요일 저녁의 참사 4시간 전쯤부터 11건의 112신고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공적인 참사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 방치한 결과가 이번 참사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故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도 “그 행사에 주체가 따로 없다면 현 정부가 책임자다. 적절한 경찰 인원만 투입됐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인재다. 11번의 위험신호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살아있을 자식들”이라며 “정부가 시급히 할 일은 진심으로 유족 앞에 사죄하고,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며 거짓 없는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하고, 다시는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故 김수진 학생의 아버지인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싸워왔다. 그럼에도 비극적 참사가 발생한 것에 큰 자괴감과 비통함이 든다”며 “고통스럽고 참담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요청한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국민이 억울한 유가족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이 501명을 투입한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했지만, “수사의 방향도 우려된다”는 것이 단체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경찰은 사고현장 폐쇄 회로를 확보하고 목격자를 조사하며 SNS의 영상물을 들여다 본다고 한다. 핼러윈 참여자의 행위를 문제 삼아 희생양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며 “112 신고 대응 미비를 이유로 일선 경찰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근 경찰청 정보국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시민단체 동향 등을 담은 대외비 문건을 작성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여전히 참사를 정권 안보의 관점에서 관리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며 “우리에게는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는 목소리를 ‘반정부 세력’으로 몰아 정부가 탄압했던 과거 참사의 기억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다”고 우려했다.

피해자가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귀 기울여 달라

기자회견에서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피해자들을 존중하고 피해자들과 충분히 상의하는 가운데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언론에 알리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듣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장례비와 위로금 지급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고 위로금의 액수까지 거론하고 있다”며 “이전 참사에 비춰볼 때 위로금을 언급하면 피해자를 폄훼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들은 앞으로 ▲정부의 진정을 담은 사과 ▲독립적이고 공정한 피해자 중심의 진상규명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이 말하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피해자 중심의 진상규명’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수사·조사가 진행되며, 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과정에 피해자와 시민의 요구가 반영된 모습이다.

인도적 지원은 피해자들이 정부에 의견을 전달할 절차를 수립하고, 사고 원인과 지원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피해자들에게 우선 알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에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고, 폄훼와 혐오 발언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점도 주문했다.

최희천 생명안전시민넷 집행위원은 “피해자분들이 위축되지 않고 필요한 말을 할 수 있게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희생자, 가족, 친구 등 피해자분들은 누구보다도 이번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특히, 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지닌 다른 가족과 의견을 나누고 참사의 원인 조사, 지원, 제도 개선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 범단체 빅팀스 위원장도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사고 수습부터 피해자와 가족들이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정확하고 신중하게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에는 “두 번 다시 이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힘내서 함께 위로하고 함께 의지하시기 바란다”고 발언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실종자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어머니 이영문 씨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갑작스레 자식을 잃은 엄마 아빠들이 저처럼 될까봐 무서웠다. 우리 가족처럼 그분들도 아이들이 왜 죽음을 맞았는지 대답을 듣지 못하실까 봐 걱정이 됐다”며 “우리 같이 손잡고 국가에 대답을 요구해보자. 왜 우리가 자식을 다시는 품에 안아볼 수 없게 되었는지 이번엔 반드시 같이 대답을 들어 보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비상식적 태도를 지속한다면 시민, 피해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모을 것이며, 함께할 수 있는 행동계획도 밝힐 것”이라고 알렸다.

한편,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에도 책임을 당부했다. 신미희 사무처장은 “이번 참사가 일어난 후부터 언론은 지금까지도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반복해 올리고,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내용을 속보 경쟁하고 있다”며 “민언련은 이번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언론인들은 스스로 약속한 재난보도준칙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