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강사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아이들도 예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한다”
“예술강사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아이들도 예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한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2.11.03 18:23
  • 수정 2022.11.03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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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강사들, 월 59시간 제한 단시간 노동으로 건강보험 적용 못 받아
“학교 내 갑질 등으로 모욕감 느껴...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아”
[인터뷰] 이현주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위원장
이현주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hjim@laborplus.co.kr
이현주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hjim@laborplus.co.kr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은 2013년 설립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의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따라 진흥원과 계약을 맺고 학교·복지관 등으로 파견 나가는 강사들로 구성돼 있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인성·창의력 향상과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복지기관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적은 지역·소외계층 대상으로 문화예술의 접근성을 높여 줄 목적으로 시행됐다.

올해 노조는 학교 예술강사의 노동실태에 주목했다.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차별 없는 학교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8월 2일부터 9월 5일까지 학교 예술강사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또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대전 유성 이음아트홀에서 학교 내에서 예술강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룬 ‘안녕! 나의 호치키스’ 연극을 진행했다. 

이현주 예술강사노조 위원장은 이를 두고 “편 가르기를 하거나 갈등을 부각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 예술강사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예술강사와 학교의 관계가 향후 발전적으로 변화할 것을 목표로 둔 것”이라며 “학교에 있는 구성원 누구나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예술강사들은 방과후학교와 달리 정규 교과과정 내 창의적 체험 활동, 동아리 활동 등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기준 학교 예술강사는 5,040명으로 수업을 나간 학교는 초·중·고등학교 8,300여 개다. 수업 분야는 국악, 연극,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디자인, 영화, 사진 등 총 8개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예술강사노조 사무실에서 이현주 위원장을 만나 예술강사들의 처우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10개월 단기계약, 건강보험 미적용…
예술강사 경력 인정 제대로 못 받고
수업시수 제한으로 질 높은 수업 어려워”

- 대부분의 예술강사들이 1주간 노동시간이 15시간 정도인 단시간 노동자라고 들었다. 계약 방식이 어떤가?

진흥원에서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통해 강사 모집 공고를 내면 저희 강사들이 시험도 보고 모의수업, 면접 등도 봐서 계약을 맺고 일한다. 주로 10개월 단기계약을 맺고 있다. 기존 강사를 우선 선발하고 그다음에 신규 강사를 뽑는 편으로 해마다 계약 갱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경력이 긴 선생님들은 20년 넘은 분들도 있고, 나도 2007년부터 강사를 해오고 있다.

단기 계약직이니까 경력이 짧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대부분 지속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계약서상 주 15시간, 연 476시간을 넘을 수 없는 제약을 받고 있다. 최근 노조의 항의로 주 15시간 경우 계약서에는 남아있지만 실제로 이를 강제하진 않는 상황이다.

- 왜 그런 노동조건을 체결하고 있다고 보나?

현재 월 59시간 수업시수도 제한받고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4대 보험 중 건강보험은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진흥원이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강사들이 예술 활동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단시간 노동조건을 적용한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월 60시간이 넘으면 건강보험을 적용해 줘야 하기 때문에 월 59시간을 강제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예산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지방교육재정, 각 지자체별 지방비 명목의 예산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체부나 진흥원에 문의해 봐도 갑자기 5,000명의 예술강사들을 건강보험에 어떻게 가입시켜 주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애초에 정부에서 추진하는 교육사업인데 처음부터 건강보험을 생각하지 않고 사업을 설계했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 수업시수 제한이나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인해 예술강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연 476시간을 한 학교에서 다 하는 게 아니라 여러 학교에 나가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지난해 학교 세 군데를 나갔는데 시간표를 딱딱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다. 한 학교는 ‘우리 학교 수업시간 몇 개 빼달라’고 하고 다른 학교는 ‘우리가 왜 수업시간을 줄여야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 활동이라는 게 단기간에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몰입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1시간 정도 수업하면서 연극 작품을 만들고 공연까지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석 달 정도 집중해서 질 높은 작품을 만들기를 원하는 학교도 많다. 그러나 예술강사들의 수업시수가 정해진 탓에 같은 수업 도중에 선생님이 바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인해 예술강사들이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점도 있다. 요즘 4대 보험 기준으로 경력을 인정하는 사업장이 많은데 예술강사 10년을 했어도 어디 가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대출받기도 어렵다. 이렇게 생계적인 어려움도 발생하고 당당한 노동자임에도 궁색하게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2017년 3,000원 임금인상 딱 한 번
계약 갱신 보장 안 되는 문제도

- 고용불안이나 임금 관련 문제도 있나?

있다. 보통 10개월 단기계약이다 보니 갱신할 때마다 자기소개서, 수업 방향이나 목표 등을 작성·제출하고 심사를 받는다. 진흥원은 이런 절차가 내년에도 예술강사를 할지 안 할지 의사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해왔다. 심지어 주민등록등본을 올리는 과정에서 오류 한 번 발생했다고 탈락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노조가 항의하자 지난해 재계약을 하는 시점부터 3년간 기존 예술강사가 지원 신청을 하면 다음 해에도 그대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걸로 진흥원과 합의했다. 올해로 2년째인데 다음 해 계약 갱신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지 않아 예술강사 선생님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현재 노조는 예술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임금 관련해서는 이전까지 계속 4만 원이었다가(2007~2016년) 2017년 4만 3,000원으로 딱 한 번 인상됐다. 내가 처음 예술강사를 할 때만 해도 대학교 시간강사랑 임금이 비슷한 수준이었고 두 개를 동시에 하는 분들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 국·공립 대학 강사 시급은 8만 8,200원(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결과)이다. 그렇게 대학 강사 시급이 오를 동안 예술강사는 딱 3,000원 올랐다. 물가도 올랐는데 우리 임금만 안 오르고 있다. 

이현주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현주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학교 내에서 갑질 당해도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안 돼

- 이번에 예술강사노조가 실시한 실태조사는 예술강사들이 학교 내에서 갑질·괴롭힘 등을 당한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됐고 연극에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들었거나 경험한 적이 있나?

내 이야기니까 말하는데, 난 미술실에서 일할 때가 많다. 만약 수업이 1·2 교시, 5·6 교시면 가운데 시간이 비고 그럼 어디선가 쉬어야 되는데 예술강사는 교무실에 자리도 없고 있을 곳이 없다. 미술실 의자로는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밖에 없어 몇 시간 동안 그 의자에 앉아 있으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한테 학교에 등받이 있는 의자 남는 게 없냐고 물었지만 없다고 해서 집에서 남는 의자를 갖고 와 미술실에 둔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수업 때 미술실을 갔더니 한쪽 벽에 의자가 붙어 있었다. 다시 옮기려고 했는데 학교 선생님이 왔다갔다 하기 불편하니까 저쪽에서 쉬라고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다니는데 되게 수치감이 느껴졌다. 책상이 앞에 있어야 일도 하고 뭐라도 할 텐데…. 차라리 화장실에서 아무도 안 보는 데 앉아 있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아니면 주차장에 가서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수업하러 온다거나 그런 경우도 많았다.

만약 학교에 쉴 공간에 대한 요구 등을 한다면 다음에는 예술강사 수업을 하지 않는다거나 강사를 교체해 달라고 한다거나 그런 갑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또 한 번은 학생들이 ‘선생님, 이건 어떻게 해요?’ 물어보면 학교 선생님이 ‘이분은 강사님이야’ 이렇게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자다가도 벌떡 깰 정도로 모욕감을 느낀 상황은 되게 많다.

실태조사를 하면서 이 사실을 우리만 알고 진흥원에 이야기하면 이게 개선이 될까 싶었다. 그래서 실태조사에서 수집된 사례들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었다. 지금 실태조사 보고서를 쓰고 있고 연극이 끝나고 약 2주 후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 진흥원이나 교육청과 갑질 등 사안에 대해 면담을 요청하거나 논의를 해 본 적 있나?

노조 차원에서 갑질 피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몇 번 했는데 그때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도 적용을 못 받는 문제에 부딪혔다. 괴롭힘이 성립되려면 같은 사용자에게 고용돼 있어야 하는데 예술강사는 진흥원과 계약을 맺고 있고 교사는 교육청 소속으로 해당 법을 적용받을 수 없다. 따라서 예술강사가 학교 교사 등으로부터 모욕이나 갑질 등 괴롭힘을 당해도 이들을 징계를 하거나 사과문을 받게 하는 등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교육청도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다 보니 자신들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교육청도 어떤 역할이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그런 제도적 장치가 없어 답답하다.

“예술강사는 학교에서 최초로 만나는 예술인,
정당하게 대우받는 모습 보여 줘야”

- 그럼에도 예술강사를 계속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예술강사를 하는 선생님들마다 자기가 가진 철학이나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느끼는 보람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 또는 지역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공공영역, 즉 학교 내 의무교육 안에서 누구나 예술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장 보람을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술강사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최초로 만나는 예술인이다. 아이들은 예술강사 수업을 통해 자기 적성도 탐구해 보고, 굳이 예술 전공을 하지 않아도 성숙한 문화예술 향유자로서 창의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동시에 아이들은 예술강사를 통해 예술가가 모욕당하거나 차별받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된다. 제가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예술 교육만 열심히 연구해서 가르친다고 좋은 예술강사라고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사는 게 힘든데 어떻게 아이들한테 예술이 좋은 거라고 가르칠 수 있겠나.

이 상태로 예술을 가르칠 수 없어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노조에 있는 예술강사 선생님들은 다 그럴 거다. 예술인이 정당하게 대우받고 자기 의무를 다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봐야 자기도 예술을 직업으로 선택하려 하지 않을까. 또 예술인이 안 돼도 예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예술강사라고 하면 방과후강사 아니냐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 내 수업을 하고 있다는 설명만 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심지어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예술강사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예술강사는 2000년 국악강사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우리나라 문화예술 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 왔다. 진흥원과 문체부는 예술강사를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같이 수행하고 학생들을 같이 키워나가는 파트너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또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나태하게 살았을 것이다’는 인식이 있어 그에 따른 차별도 발생하는 것 같다. 저희 예술강사들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내 기술과 자원을 계속 갈고 닦아온 사람들이다. 그런 점을 사회가 인정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