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책임자 처벌받는 김용균 재판’ 바라는 마음 9,470개 모였다
‘진짜 책임자 처벌받는 김용균 재판’ 바라는 마음 9,470개 모였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12.08 20:41
  • 수정 2022.12.08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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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재판’ 항소심 결심 공판 진행
9,470개 탄원서 법원에 전달돼···김미숙 씨, “또 다른 용균이 살리는 일 멈추지 않는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가 8일 오후 1시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재판부에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관련된 이들의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

“사고 3일차에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 넓고 어두운 현장에서 분진 가루가 눈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볼 때 밤새도록 탄가루를 덮어쓰면서 낙탄을 꺼내느라 혼자서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추운 겨울 일하느라 끼니도 놓치고 차가운 밥을 먹다 죽어갔을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숨 쉬고 살고 있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죄인 같습니다. 조금만 실수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현장이었습니다. 그런 현장을 만들어놓고 노동자 스스로 조심해서 안전하게 일하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안전하게 뛰어가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김용균 재판’ 항소심 결심 변론 중)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한국발전기술 전 대표 등 14명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이 8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 선고를 앞두고 서로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변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는 시민 9,470명이 참여한 ‘김용균재판 엄정 처벌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은 공판이 열리기 전인 오후 1시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에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관련된 이들의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백남호 한국발전기술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김용균 노동자는 한국발전기술에 고용된 발전 비정규직으로, 원청은 한국서부발전이다.

하지만 1심 선고에서 실형은 없었다. 지난 2월 진행된 1심에서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재판부는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에게는 무죄를, 백남호 한국발전기술 대표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집행유예와 벌금형 등이 선고됐다. 

기자회견에서 추모위원회는 “김용균의 4주기가 된 지금까지 김용균 죽음의 책임자는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1년에 2,400여 명이 죽어 나가는 노동현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진짜 책임자를 엄벌해 일하다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행렬이 멈출 수 있도록 할 것을 재판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율현 민주노총 대전본부 본부장은 “솜방망이 처벌로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이야기해왔던, 반복되는 사망 사고를 막을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재판부의 엄정한 법 적용”이라며 “1심 재판부는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많은 시민과 노동자를 배신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2심 재판부에 엄정한 판결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고 발언했다.

문성호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대전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하루에도 6명, 7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죽고 있다”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진짜 사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1,000만 원만 주면 노동자들을 죽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결과를 법원이 내놓는다면 오늘도 내일도 노동자들은 죽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박다혜 김용균 재판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도 “누군가를 어떤 무게로 벌하느냐는 한 사회가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금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불행히도 법원은 쉽게 범죄자에게 이입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기업에게 온정을 베푼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며 “부디 법원이 재판에서 노동자의 일터를 제대로 직면하고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항소심 재판이 1심에서 잘못된 판결을 뒤집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엔 김하순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부장도 참석했다.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김하순 부장에 따르면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는 저품질 석탄 수입과 관련한 비리를 알고도 묵인해 왔다. 저품질 석탄이 더 위험한 일터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하순 부장은 “서부발전 직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은 저질 석탄 공급으로 인해 파손된 설비를 열심히 고치고 치우는 일을 반복한 잘못밖에 없는데 처벌을 받았다”며 “김병숙의 안전불감증이 김용균 노동자를 사망하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김병숙 사장이 용균이의 죽음의 원인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숨겨왔음을 김하순 부장을 통해 알게 됐다”며 “아들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은 이전 죽음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회사가 은폐하고 축소하고 덮어 산재 사망 사고가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법정에서 용균이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용균이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항소심 결심 선고일은 내년 2월 9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