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균이 잘못 아니’라는 것 재판서 꼭 인정받고 싶어
‘용균이 잘못 아니’라는 것 재판서 꼭 인정받고 싶어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2.23 10:38
  • 수정 2023.03.06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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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이 낸 안전 구멍 드러내야 더 많은 죽음 막는다
[인터뷰]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그렇게 안전하다면 다른 귀한 자식 죽이지 말고 당신이 가서 일해라”라고 말했다 털어놨다. “협착사고가 나서 죽더라도 혼자 일하는 게 맞다”, “컨베이어 벨트에 손을 대봤는데 빨려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튕겨지더라” 등 가해자들의 “얼토당토 않은” 변론을 들은 후였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외침은 가해자에도, 항소심 재판부에도 닿지 않았다. ‘김용균 재판’ 항소심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에 무죄 선고를 유지하고, 원·하청 법인과 임직원의 형량을 유죄에서 무죄로 바꾸거나 감형했다. 징역 1년, 집유 2년이었던 권유환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에 무죄를 선고하고, 벌금형이었던 김제형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석탄설비부 계전과 차장이 무죄를 선고받는 등 기존 유죄였던 원심이 다수 뒤집혔다. 한국서부발전 주식회사에도 원심 벌금 1,000만 원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하청업체 관계자들의 형량도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에 원심 선고였던 징역 1년 6개월, 집유 2년을 파기하고 금고 1년, 집유 2년을 선고했다. 한국발전기술 주식회사는 작업중지 등 안전조치 미이행 및 작업중지명령 위반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관련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미숙 이사장은 “이렇게 재판하면 산업재해 줄일 수 있습니까?”라고 다시 소리쳤다.

남은 건 대법원이다. 김미숙 이사장은 “최후 결론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용균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고 재차 힘내어 말했다.

16일 김용균재단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만났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비상식적인 김용균 재판 2심 
그간 우리나라 산재 판결 보여줘

- 항소심 선고를 어떻게 지켜봤나.

이게 뭐지, 싶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한 시간을 끌더니 원청 쪽 사람들에게 혐의가 없다고 하더라. 1심보다 후퇴된 안이라 놀랐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1심에서 원청 사장이 무혐의로 풀려났다. 2심에선 이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유지될 줄 알았다. 생각하지도 못한 판결이라 다른 생각이 안 들었다.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이전처럼 꼬리 자르기 식으로 하청이 다 잘못했다고 몰빵하는 것 아닌가.

- 1심과 항소심까지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을 돌아본다면?

우리나라가 그동안 산재를 어떻게 대했는지 투명하게 봤다. 위험하고 컴컴하고 빠르고 힘 센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뭐라도 끼면 바로 딸려갈 텐데. 위험한 곳에 머리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고, 분진이 많이 날리니까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어 보고해야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놓은 기업이 잘못이다. 그런데도 기업하다가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거라는 흐름이 그동안 있었다. ‘너네가 조심하지 그랬냐’는 식의 판결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거다.

용균이 재판은 사회적으로 알려졌고, 검사는 그래도 높은 형량을 구형했다. 유족이 바라는 것에는 못 미치지만 이전 산재 형량에 비해선 높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판사도 처음부터 원청도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해놓고 위험성을 몰랐다는 이유로 유죄가 아니라고 판결하니 앞뒤가 안 맞는 말 같고, 비상식적이라 느꼈다.

- 재판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나?

재판장 안에서 검사가 가해자들한테 누군가 용균이처럼 혼자 일하다가 사고가 나면 살릴 수 있냐고 물어봤다. ‘협착사고가 나서 죽더라도 혼자 일하는 게 맞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저렇게 이야기했다. 말하고 그냥 자리에 돌아가 앉더라. 인건비 아껴야 하니까 혼자 일하는 게 맞다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선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맥락과 같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가족이다.

‘컨베이어 벨트에 손을 대봤는데 빨려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튕겨지더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빨려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협착사고가 나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가해자들은 누가 들어도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들을 계속 했다.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가 공항 캐리어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안전하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의 말할 권리가 남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피의자를 변론하는 태평양 법무법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아주 악의적이었다. 오로지 승소하기 위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교육의 한 켠에 둬야 했다. 그렇지 않으니 괴물 같은 변론을 하는 것 아닌가. 괴물 같았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구산안법 적용받지만
최대한의 처벌 바란다 

- 사건은 대법으로 넘어가게 됐다. 김용균 재판의 ‘정의로운 판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다.

이전의 산재 판결들은 거의 노동자의 잘못이거나, 아주 말단 직원들을 잘라내는 식으로 나왔다. 원청과 하청을 나눠놓고 아무도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구조 때문이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니까 노동자한테 잘못을 떠넘긴다.

이제는 산안법도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물론 용균이는 구 산안법을 적용받는 재판이다. 그럼에도 용균이 이후 사회적 공분이 크게 있었기에 구 산안법의 최고 높은 처벌을 나는 바란다. 재판장들이 주저하는 게 판례를 깨는 일이라 들었다. 이 점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제대로 된 처벌이 나오지 않으면 기업은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안전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큰 코 다친다, 진짜 감옥 간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사장들이 없다고 본다.

- 항소심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 “재판장이 사람들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방금 말과 이어지는 듯하다.

용균이는 돌아올 수 없다. 원청과 하청이 안전에 구멍을 내서 죽음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인정돼야 더 많은 죽음을 막을 수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

헌법 11조에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다고 적혀 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법원의 일이다. 누군가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면 잘못된 것이다. 재판이 최후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용균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유족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대법원이 분명한 판결을 해줬으면 한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원하청·비정규직과 산재에
지속적인 관심 가져줬으면

-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용균이 사고로 나는 사회의 어두움을 보게 됐다. 아직도 하청에 재하청이 만연하다. 일시키기 편하니 힘 있는 자들은 이런 구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고, 하청이나 비정규직들은 억울하게 당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계속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깊숙하고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만 일터에서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용균이 싸움을 하면서 국민의 힘을 봤다. 합의도, 산안법 개정도, 중대재해처벌법도 국민들로 인해 만들어진 거다. 그 힘을 믿는다. 시선을 주시는 만큼 바뀐다고 생각한다.

-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과정에 김용균재단은 어떤 공간이 될 것인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대변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유족이 있다면 그분들의 말을 잘 듣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 지금은 우리가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양산을 막고도 싶다. 용균이가 ‘노동악법은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는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게 용균이가 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