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고 김용균 사망 사건’ 원청·원청 대표에 무죄
대법원, ‘고 김용균 사망 사건’ 원청·원청 대표에 무죄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12.07 18:22
  • 수정 2023.12.07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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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된 14명 중 실형 선고 받은 이 없어
김용균재단 “노동 현장 실체 보지 못한 법원의 실패”
김용균재단이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산업재해 사고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대법원이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이사에 무죄를 확정했다. 김용균 씨 사망사건으로 기소된 원청과 하청(한국발전기술) 관계자 14명 중 10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이들 모두 집행유예 등에 그쳐 김용균 사고로 실형 선고를 받은 이는 없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일 오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대표이사 등 사고 관계자들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국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일하던 김용균 노동자는 2018년 12월 10일 석탄 이송용 벨트컨베이어 밀폐함 점검구에서 컨베이어 설비 상태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협착해 사망했다.

지난 2월 9일 열렸던 항소심에서 대전지법은 “운전원들의 작업 방식의 위험성에 관해 (원청 대표이사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병숙 전 대표이사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지 않았다”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병숙 대표이사는 1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사고 당시 한국서부발전에서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를 맡았던 권유환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도 무죄가 확정됐다. 권유환 전 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전지법은 “태안발전본부의 조직과 규모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권유환 본부장)이 석탄취급설비 및 위탁용역관리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정황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서부발전도 1심에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선 무죄로 형이 바뀌었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확정됐다. 하청 한국발전기술은 벌금 1,200만 원을 선고받은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한국발전기술에서 사고 당시 대표이사와 태안사업소장을 맡았던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와 이근천 전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도 각각 금고 1년  2년, 징역 1년 2월 및 집행유예 2년이라는 2심 판결이 확정됐다.

이 외에도 한국서부발전 관계자 6명,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3명의 형이 확정됐다. 이 중 7명은 집행유예, 1명은 무죄, 1명은 벌금형을 받았다. 실형 판결을 받은 이는 없다.

선고 직후 법정에 있던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판사석을 향해 “사람이 죽었는데 왜 아무도 처벌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외쳤다. 이어 “왜 법정이 힘없는 약자를 보호해 주지 않습니까”라고도 했다. 이후 비틀거리며 법정을 나가던 김미숙 대표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가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기도 했다.

판결 직후 기자회견 연 김용균재단
“역사는 원청의 잘못을 제대로 판단해 줄 것”

판결 이후 김용균재단은 대법원 앞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특조위를 통해 안전 책임이 어떻게 외주화됐는지 확인했다”며 “원청 한국서부발전은 모든 설비에 대한 권리를 다 가지고 있었지만, 하청 노동자들에겐 (설비를) 위험하게 운전·점검할 수 있는 의무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원청의 책임이 명백한데도 법원은 원청에 무죄를 선고했다”며 대법원을 규탄했다.

김용균 사건의 법률 대리인 중 한 명인 박다혜 변호사는 “오늘 대법원판결은 원·하청 구조로 만들어지는 노동 현장의 실체를 보지 못한 대법원의 실패”라고 강조했다. 김미숙 대표는 “지금은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우리가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한국서부발전의 잘못을 제대로 판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도 대법원 규탄

양대 노총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한국노총은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은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결과였다”며 “노동자의 죽음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이번 판결에 한국노총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은 이번 판결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갑질이 산업 현장에 만연할 수 있도록 조장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죽음의 책임을 져야 할 한국서부발전이 무죄라면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라며 대법원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현장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며 “하청은 권한이 없었고 원청은 들은 체하지 않았다. 2인 1조 작업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고 비상정지 장치는 불량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에 원청 책임이 없다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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