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고 출근해 별 보며 퇴근하는 선원의 삶을 바꾸기 위해
달 보고 출근해 별 보며 퇴근하는 선원의 삶을 바꾸기 위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1.26 05:59
  • 수정 2023.01.26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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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지부 ‘부당해고 철회 투쟁’ 해 넘기고, 선원법 개정 전국 순회 투쟁 이어가
[인터뷰] 박성모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장

강원 삼척 장호항에서 나고 자라며 뱃일은 천직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선주였고 아버지는 통발 어업을 했다. 어머니는 해녀다. 중학생 때부터 배 운전석에 앉곤 했다. 부모님은 늘 ‘바다는 열심히 한 만큼 보답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박성모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지부장이 주문진수상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대학에선 항해과를 거쳐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배를 탔다. 4년간 원양어선에서 일하다 돌아와 국내선을 몰았다. 배를 몬 경력만 18년이다. 부모님 말씀이 맞았다. 형은 대게잡이 배를 운영하면서 바다가 보답하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선장 박성모 지부장의 삶도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 박성모 지부장은 집안의 골칫거리가 됐다.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전국 곳곳을 다니며 투쟁 중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은 2021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다. 조합원들과 전국 여객터미널을 돌며 선원법 개정과 부당해고 철회 투쟁을 하고 있는 박성모 지부장을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7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났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선원법 개정을 위한 전국 순회 투쟁 중인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달 비추는 출·퇴근길···
코로나로 악화된 선원 생활

- 피케팅 중인 어느 조합원이 “달 보고 출근해서 달 보고 퇴근하는 삶”이었다고 말하더라. 

장시간노동이 일상이었다. 씨스포빌은 ‘강릉-울릉-독도’ 항로 여객선을 운항하는데, 강릉에서 오전 8시에 출항하기 때문에 새벽 6시 30분까지 출근한다. 오전 8시에 출항한 배는 3시간 30분 뒤에 울릉도에 도착한다. 울릉도에서 다시 승객을 태워서 1시간 만에 출발한다. 독도까진 1시간 30분 걸린다. 이후에 다시 강릉으로 돌아간다. 그럼 저녁 8시 30분경 도착한다. 승객들의 하선을 돕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10시가 다 된다. 하루 평균 14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임금,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건 둘째치더라도 여객선을 운항하는 같은 업종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임금 수준이 낮다. 나는 배의 선장으로서 열심히 일해봤자 다른 회사 항해사보다 월급이 적으니 자괴감이 들곤 했다. 게다가 회사가 2011년 만들어진 이후로 점점 규모가 커지며 성장했지만 직원수도 늘어난다는 이유로 임금, 복지 등이 계속 축소됐다. 

- 여객선이라 코로나19 영향도 받았겠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에 강릉에 KTX가 2017년 개통됐다. 그때부터 시스포빌이 호황을 누렸다. 2019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엔 승객을 연간 42만 명 정도 받았다. 매출로 따지면 연 250~300억 원가량 번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회사가 경영 사정이 어렵다며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2019년 관리자(선장·기관사)는 20%, 그 외는 10%씩 임금을 줄였다. 워낙 힘들었던 시기라서 노동자들도 ‘괜찮다, 버틸 수 있다’며 협조했다. 그런데 회사가 2020년부터는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니 임금을 50% 깎자고 통보를 했다. 그렇게 되면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니까 아예 이직하는 선원 수가 크게 늘었다. 선원이 원래 30명 정도였는데, 14명 빼고 다 그만뒀다. 

- 남은 인원은 어떻게 일했나?

이런 상황 속에서 2020년 7월경 관광업계가 너무 힘드니까 정부가 제한했던 운항 횟수를 잠시 풀어도 된다고 했다. 이미 직원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14명이 배 4척(정원 400명 이상)을 다 운항해야 하니까 문제가 발생했다. 정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직급에 상관없이 급한 대로 선장이어도 배 밑에 가서 줄 잡고 했다. 무엇보다 위험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 경우 선원들이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겠나? 

이제 운항 재개도 했으니 회사에 인원을 정상적으로 뽑아 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랬더니 회사 대표가 인원을 늘리지 않을 거고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우리가 힘이 없으니 민주노총의 힘이라도 얻어서 싸워보자는 마음으로 2021년 5월 14명의 직원 모두 민주연합노조에 가입했다. 

- 50% 삭감됐던 임금은 유지하고 있는 건가?

내부적으로 관련 논란이 계속 불거지니까 2020년 8월에 회사에선 운항하는 배에 한해서만 임금을 이전 수준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 노동과세계
박성모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장이 지난해 10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선원노동자 집단해고·선원법 위반·국회 무시 씨스포빌·정도산업 박정학 사장 엄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노조 세우고 교섭했지만
돌아온 건 부당 인사·정직·해고

- 2021년 5월 노조 설립 이후는? 

노조를 만들고 바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의 부당한 인사발령, 해고, 정직이 이어졌다. 내가 2018년에 건강검진을 하던 중 위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추적검사를 받고 있는데 노조가 없을 땐 하루 정도는 회사에서 쉴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노조를 만든 이후론 물론 직원이 줄긴 했지만, 있는 연차 휴가조차 쓸 수 없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병원 예약을 다시 잡기가 어려워 꼭 가야 한다고 했더니, 회사에서 정년을 넘긴 선장 한 분을 모셔 왔다. 그러면서 3일 만에 인수인계를 마치라고 하더라. 여객선 선장은 보통 한 달간 트레이닝 받는다. 씨스포빌 배를 처음 탄 분을 3일 만에 선장으로서 일하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랬다간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말한 2021년 7월 당일에 회사는 ‘묵호-울릉-독도’ 노선을 운항하는 정도산업으로 가라고 했다. 씨스포빌과 정도산업은 법인은 별개지만 대표자가 같고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된다. 정도산업의 여객선(씨스타 1호, 3호)은 당시 코로나19로 아예 운항을 안 했다. 다음날 씨스포빌에서 새로운 선장이 출항을 하려니까 항해사들이 그러면 위험해서 배에 못 타겠다고 하니까 지시 거부를 이유로 들며 정도산업에 전보를 보냈다. 그렇게 총 5명이 운항하지 않는 배로 쫓겨난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선원 최저임금을 줬다. 선원들의 임금구조는 기본급에 배가 나갈 때마다 수당을 받는 형태다. 운항하지 않는 배로 보내 돈으로 피를 말리겠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동해 선원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발령 구제 신청을 했다. 이에 선원노동위원회뿐 아니라 중앙노동위원회도 회사의 부당인사발령을 인정했다. 

- 부당인사발령뿐 아니라 부당해고와 부당정직 구제신청도 했는데? 

부당인사발령 관련해서 동해 선원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이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근무기록표를 제출하라고 해서 배에서 가져다가 줬다. 기록표를 본 근로감독관이 초과노동으로 인한 체불임금 등 법적 문제가 더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선원노동위원회가 열린 거다. 

그런데 우리가 근무기록표를 배에서 가져간 걸 두고 회사가 사문서 유출로 해경에 고발을 했다. 그리고 결론이 나기도 전에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관련 노동자 7명(해고 5명·징계 2명)을 해고했다. 이후 해경에서 혐의 없다는 판단이 나왔는데도 회사는 다시 제소했다. 우리가 부당하게 해고와 정직을 당했으므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건도 동해 선원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회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선원법 개정을 위한 전국 순회 투쟁 중인 해운지부 ⓒ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선원 없는 선원법 개정 위해
전국 순회 투쟁 나서

- 왜 선원법 개정 투쟁도 같이 하는 건가?  

회사가 선원들을 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내몰 수 있었던 배경엔 오랜 시간 바뀌지 않은 선원법이 있다. 선원들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에 적용을 받는다. 해상노동자들은 육상노동자들과 노동환경이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먹고 자면서 수시로 일해야 하는 원양어선 등 특수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특별법(선원법)의 적용을 받아온 것이다. 그런데 선원법은 1962년 제정된 이후로 상선, 어선, 여객선 등 다양한 선박에서 일하는 선원노동자들의 다양한 노동조건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원법에 따르면 선원은 1주일에 16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그런데 내항 여객선 선원들은 육지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출퇴근이 명확하고 출항시간과 입항시간이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선원법이 포괄적인 초과노동를 허용하고 있어 선원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또 최소 승무 정원 문제가 있다. 선원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여객 정원에 따라 여객안전관리선원을 승무시켜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여객 정원 100~500명에 안전관리선원 1명 이상, 500~1,000명에 2명 이상, 1,000~1,500명 3명 이상, 1,500명 초과 4명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승객 500명이 탄 배에 선원이 총 4명만 타도 문제 없이 배를 운항할 수 있다. 안전점검을 제대로 할 여력도 없는데, 회사에선 회사에선 선원 4명으로 계속 500명 정원 여객선을 돌릴 수 있다. 예비인원도 없이 선원이 이렇게 배를 운영하다 보면 정말 사람 잡는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의 경우 승객 50명당 승무원 한 명이 서비스를 해야 한다.  노동환경이 이렇다 보니 연안여객선 선원으로 일하려는 젊은 사람도 없다. 노인들밖에 안 남은 거다. 

- 선원법 개정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쟁하고 있는데. 

우리는 노동위원회에서 인용 판정을 받아 어차피 이겼지만, 투쟁 과정에서 선원법 개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우리나라 선원들이 힘이 약하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 선원을 위한 선원법 개정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싸움을 시작했으니 선원법 개정을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해 전국 선원들을 만나러 다니는 거다. 

- 선원들의 반응은?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온다. ‘여기도 힘든 부분이 있으니 도와 달라’, ‘같이 싸우자’라는 식으로 완도, 목포 등 곳곳 선원들이 우리에게 이야길 한다. 대신 싸워줘서 고맙다며 밥값을 주는 분들도 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단 마음이 든다. 분명히 우릴 지켜보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윤미향 의원도 우릴 많이 도와주고 있다. 

- 생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민주연합노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가 회사에서 체불임금, 부당해고 기간 임금  등을 받으면 다시 노조에 돌려줘야 한다. 무엇보다 가족이 고생이다. 각 가정에선 맞벌이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제주도, 마라도 등 전국 어디든지 갈 거다. 마라도 선원들도 우리에게 상황이 안 좋다며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기왕 시작한 싸움이다. 선원법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전국 선원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지키자고 호소할 것이다.